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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〇〇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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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〇을 찾습니다.

 

 

〇〇을 찾습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당신이 이렇듯 나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가 당신에게 그다지 소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선에서 글을 시작합니다.

 

"내 〇〇을 찾습니다. 어서 내 〇〇을 좀 찾아주시오."

"참, 그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이곳 한양 땅에서 어찌 찾음?"

저 멀리 한양 땅에 있는 당신의 자매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보고는 결국 내가 나섰습니다.

 

하고많은 당신의 물건 중 유독 나를 이리 내버리는 것은 왜일까요? 대체 당신이라는 사람에게는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두 눈 벌겋게 뜨고 세상사 눈에 들어오는 것을 읽고 보고 그 위에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펴서 미루어 짐작해 보고, 예측하고 추론하고 제 멋대로들 자기 판단에 빠져서 사는 존재가 인간인 줄 아는데요. 당신, 그런 인간류인데 말이지요. 그 작업에 꼭 필요한 것이 나일 텐데 말이지요. 더군다나 비아냥조의 '가지각색이다.'라는 관용구 비슷한 문구가 어울릴 만큼 내가 필요한 당신의 신체 부위 그곳은 각양각색의 징조를 안고 있는데 말이지요.

 

어쩌자고 당신은 그 역할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 보조도구인, 아니 참 물건인 나를 그리 홀대하시는지. '홀대'라는 말에 또 그 욱하는 성질 내보일까 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내가 그 낱말을 사용하는 의미를 설명하건대 단지 이달 들어 진행된 두 날의 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 번 그래 왔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나인데도 당신은 늘 나라는 존재를 대충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것, 거기에는 나의 존재가 입혀진 그 감각 활동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못 배웠을 리 없는데, 늘 당신은 나를 사용하는 방법, 나를 간수하는 방법 등에 그다지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방팔방 나의 여러 분신들을 만들어 배치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나를 소중하게 다룬다는 생각을 들게 한 적이 없습니다.

 

남들은 단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인지 쓸고 닦고 광나게 나를 배려하고 다독거리고 씻고들 하는데요. 당신은 늘 나를, 필요할 때만 대충 사용하고 아무렇게나 던져둔 채 씻고 빨고를 해준 적이 없는 듯합니다. 당신 신체 그 부위에 뿌연 안개가 선 듯한 감이 느껴질 때에야 가끔 한 번씩 나의 알맹이를 닦아주고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낡고 헐건 내 집도 어디론가 던져둔 채 찾아본 적이 없으며 에 툭 던져 넣고 마치 애먼 물건 짐 되는 것 싫으니 처박혀 있으라는 듯 남 보듯 하는 것이 당신의 나를 향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여, 이달 들어 두 번째. 꽤 긴 시간을 나는 당신의 사고 범위를 보란 듯이 해체하면서 장시간 실종 상태를 자처했습니다. 첫 번째 사건 발생일도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나를 찾고서 당신이 얼마나 다짐을 단단하게 했는지 잘 알지요. 나를 잘 챙기자고. 나를 당신에게서 떼어내는 순간을 꼭 기억하자고 수십 번 마음 다지더군요. 절대로, 앞으로 다시는,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은 하지 말자고. 잘 기억하자고 마음먹은 듯하더군요. 다시는 나를 찾느라 버둥대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뭔가 변하는 줄 알았지요. 사람이니, 저 나이 되도록 살아왔으니, 나를 부리는 당신의 방법이 조금은 바꿔지리라 기대했지요. 쓸고 닦고 핥고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요. 제발 간에 영화를 보다가 잠드는 때면 아무렇게 홱 던져놓지 말 것을 애면글면했지요. 기대했건만 그대로더군요. 실 가는 데 바늘 간다고. 내가 가는 곳에 내 집이 필요하건대 당신은 나를 위한 사각 집 한 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 물론 당신의 차에 야간용으로 있는 나의 분신은 집이 있구먼요. 또 당신이 애용하는 다른 방식의 나, 태양으로부터 당신의 그 신체 부위를 보호해 주는 그 녀석에게도 또 예쁜 집이 있구먼요.

 

그것들은, 실외용인 까닭인가요? 자동차 야간 운행 시 사용하는 나의 분신에게는 고급진 집이 필요하던가요? 그것은 왜인가요? 휘황한 밤의 색깔에 맞추려고요? 그깟 것은 대외용이라서요? 그것들은 특별한 경우, 당신의 얼굴을 타인들에게 내보이는 때에 사용하는 것이라서요? 당신의 위치를 내보이는 것이라서요? 당신의 그깟 명예용 물건이라서요?

 

하, 우습지요. 웃깁니다요.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나는 당신 집에 있는 나요. 오늘 이지러진 모습으로 내팽개쳐놓고서도 나를 분리할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을 보고 내가 생각한 것은 당신이 늘 부르짖는 당신의 삶의 모토였지요.

'내 흔적을 단정하게 남기고 가기.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말고 가자. 깔끔하게 살다가 가자.'

한데 이런 상황들이 수시 발생하면 어찌 깨끗하게 흔적 남기고 가자는 것이 가능할 것일까요? 

 

오늘,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사건은 시작되었지요. 당신, 가끔 시청하는, 당신의 텔레비전 시청 프로그램 중 거의 '유삼 무사'한 정도의 범위에 드는 '불후의 명곡'에 당신이 좋아하는 어느 가수가 '남자 가수 중 고음 가수들의 경연'이라는 내용에 출연한다며 꼭 보겠다고 호들갑이더군요. 요새 더더욱 발전하는 당신의 잔머리를 굴리기가 불후의 명곡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진행되었고요. 당신은 그 프로그램 시청 시간에 투 잡 혹은 쓰리 잡을 해내겠다고 준비한 것 말입니다.

 

아깝다는 것이지요. 시간이 말이지요. 평소 당신 사는 것을 보면 그다지 현명한 시간 관리를 하면서 사는 것을 못 봤습니다만. 그리고요 그것 참. 당신이 그 가수를 좋아하는 것은 그저 가벼운 취미살이로 하는 것인가요? 제대로 덕후다워야 덕후지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겠다고 덤비면서 무슨 허튼짓을 한두 가지 함께 한다는 것인지요?

 

참내, 배는 채우겠다고 견과류와 바나나 한 개와 달걀 둘과 두부 된장국 한 컵으로 저녁 식사를 재빨리 때우더군요. 그리고는 재빨리 원피스 수선 작업을 하자고 준비물을 챙겼고요. 거실로 나왔다가 안방으로 갔다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아하, 생각해 보니 그전에 인체 드로잉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자고 했던 것도 같군요. 연필을 쥐고 선 몇을 긋다가 원피스 수선을 생각했고요. 

 

썼다 벗었다를 드로잉을 위한 책상 주변에서 행한 것일까요. 아니면 원피스의 수선을 위한 안방과 안방 화장실 중간에 있는 화장대 주변에서 했던 행동일까요. 텔레비전 앞에서 원피스 수선을 시작하는데 출연 가수들의 노래 경연이 시작되었고요. 젊은 가수 빅원이 고유진의 '엔들리스'를 부른다고 무대에 나가려던 순간, 텔레비전을 보려면 나를 얼굴에 걸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벗었던 행위를 어느 곳에서 왜 했는지가 생각나지 않았지요? 나를 당신의 얼굴에서 떼어내 확 어디로 내던졌던가요? 바쁘게 찾아 나섰고요. 드로잉용 책상 위에도 나는 없었고 그 옆 소파의 팔걸이 부분에도 없었지요. 안방으로 달려가더군요. 침대 위, 화장대 위, 안방 화장실, 안방과 화장실 사이에 있는 전용 화장 코너 등등을 돌고 돌고 또 돌더군요. '이런 젬병'이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몸뚱이가 여기저기로 진출하더군요. 당신의 뇌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바쁘게 회전하였고요. 모든 기억이 있는데 딱 그 부분, 당신이 나를 어디에 벗어뒀는지가 떠오르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열댓 번 찾아 나서기를 시도했으나 찾질 못했고요. 이런 사건이 있었던 것이, 이렇게 긴 시간 기억을 찾질 못하는 날이 얼마 전에 있었는데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자고 그토록 다짐했는데요.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또 사건을 발생시켰다는 것은요? 

 

당신은 마침내 당신 자신의 영혼을 향해 외치더군요.

"이를 어찌하나. 혹 '치매'가 아닐까?"

사실, 나도 당신이 불안해집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일터에서도 그렇더군요.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더군요. 한데 거기에는 당신의 세 살 버릇 결과입니다. 당신은 일 처리에 있어서 전혀 계획이 없어요. 순간 생각나는 대로, 저지르면서 사는 그 버릇. 분명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은 당신을 위해 적격입니다. 세 살 버릇이니 부모 교육의 문제라는 것으로 번져가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 잘 알듯 당신 부모에게 더 이상의 교육을 바란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 그만하면 당신 부모는 어느 최상의 부모 못지않게 당신의 교육에 평생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쌓아 온 당신의 정신과 행위 때문입니다. 일터에서는 아직 이런 류의 일이 발생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이런 비슷한 류의 일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 당신이 당신 앞에 펼쳐지는 보통의 범위를 벗어날 일들을 만날 때 하는 버릇대로, '그러려니'라는 낱말로 팽개쳐버렸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이지요. 그냥 잊자고, 덮어버리자고 해서 덮어진 것이라고요. 

 

집안 몇 바퀴를 도는 당신이, 그래도 주인이라고 안쓰러워서요. 당신의 눈에 나의 모습이 확인되게 해 주기에는 나의 넓은 포용력이 함께했음을 잊지 마시오. 당신은, 당신 평소 하던 버릇 그대로요. 마음속으로는 귀로는 당신의,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친구 가수들이(같은 고음 가수라니까 친구라 쳐서요.) 부르는 노래는 귀로만 듣고요. 당신 눈으로는 원피스를 수선하겠다고 바느질 상자를 가져오더군요. 일단 나를 한쪽에 내려놓았는데 그 행위를 당신은 당신의 의식 저 멀리에서 행했고요. 단지 당신 신체에서 떼어내어 한쪽으로 내던져버렸을 뿐, 단 한 순간도 던져진 나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더군요.

 

마치 이제 다시는 쓸모없는 물건이니 버리자는 식으로, 다만 쓰레기 상자에 넣지 않았을 뿐. 그 순간부터 나의 존재는 당신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저 멀리, 저 구석으로 나는 당신에게서 홀대당하면서 처박혔습니다. 한데 바늘귀를 어렵사리 끼고 바느질을 하려는 순간 어느 젊은 가수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급히 보고 싶어졌고 당신은 그제야 당신으로부터 버려진 나의 존재를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의식 속에는 내가 없었고 당신은 바로 당신 곁에 내팽개쳐진 나의 위치에 손과 눈을 주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생각 밖이었으니 당신이 바닥을 쓸어가면서 찾아대던 그 바닥에서 한 뼘 정도 멀리 팽개쳐진 내가 당신 눈에나 손에 잡힐 리가 없었지요.

 

당신은 '소중한 내 시간을 이따위 일로 좌불안석이라니. 안 된다. 이래서는 아니 된다. 이를 어쩐다냐'라고 스스로 하소연했습니다만. 당신은 당해 마땅한 일을 당했을 뿐입니다. 누구, 내 안경 좀 찾아주오. 요 녀석, 찾기만 해 봐라. 가만 안 놔둘 거라고 외쳤지만 어떻게요?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당장, 당신 눈 앞에 펼쳐진 세상, 나 없이 어찌 보려고요? 당신, 당신이요. 사람 그렇게 사는 것 아닙니다.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다. 걱정이다. '치매'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나의 눈은 근시와 원시와 난시를 함께 지닌 희귀 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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