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이불은 계절을 구분하지 않는다. 1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일까. 어떤 이가 쓴 글일까. 일터 컴퓨터 앞 정리를 하다 보니 메모지에 이런 글귀가 써져 있다. 아마 책을 읽거나 유튜브 강의를 듣다가 귀가 솔깃해져서 적어놓았을 것이다.
'가난의 이불은 계절을 구분하지 않는다.'
음력 섣달그믐 즈음이 생각난다. 우리 집의 연례행사가 꼭 있었다. 온 집안 한 해 털이 침구류 빨래를 하던 날. 거의 모든 이불을 빨기 위해 이불은 한두 개만 남겨뒀다. 그날 밤 우리 집은 커다란 싸움이 꼭 벌어졌다. 특히 내 남동생, 짓궂기가 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지닌 사내아이. 녀석은 결국 이겨서 아침에 눈을 떠 보면 녀석 혼자 이불을 돨돨 싸안고 있었다. 밤새 온 식구가 극과 극의 온도를 체험하면서 혼돈의 수면 시간을 경험한 것이다. 요즈음 내 저녁 잠자리처럼.
내 저녁 잠자리는 얇디얇은 원피스 한 장! 팔도 거의 없는, 나는 언제부터인가 몸에 무엇인가를 걸치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어졌다. 그 '언제'는 하룻밤 새 무려 6~8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빠졌던 날(구체적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언급했으므로 패스~). 이후 나는 내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는 옷감의 표면 장력과, 즉 질과, 즉 소재와, 즉 감각의 자극도에 무지 민감한 인간이 되었다. 특히 이불속에 누울 때는 거의 나신으로 누워야만 잠에 들 수 있게 되었다.
하여 옷감에, 옷의 무게에, 옷의 재료에, 어느 생산물인가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불도 마찬가지이다. 이불솜의 수준 높은 질은 꼭 체크를 하고 순면 일백 퍼센트에 최대한 가까운 이불 커버도 귀히 만나는 천으로 택하게 되었다. 그런 이불은 비싸다. 그래서 가성비가 있는 이불이 호텔식 하이얀 색 침구. 주로 그런 이불을 선택해서 구매하고 사용하게 되는데.
와우, 이불을 좀 교체할까 싶어서 알아보는데 비싸더라. 겨울은 어쩔 수 없잖아. 솜이불이 필요하잖아. 솜이불이라. 우리 엄마, 나 시집올 때 부쳐오셨던 솜. 무명 솜이불이 사실은 제일인데.
값 앞에서 이불 교체를 머뭇거리면서 깊이 박혀오는 문장이다.'가난의 이불은 계절을 구분하지 않는다.'하긴 새하얀 여름 이불도 무지 비싸더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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