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9도 낮음'의 일기 예보에 정신이 먼저 팽 가버렸다.
무료 사진 사이트 'Unsplash'에서 가져옴 - 가끔 이런 폭설의 세상을 만나고도 싶다.
연말이다. 일터 내 공간을 정리할 시각에 도달해 있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꿈틀꿈틀, 하늘의 찬 기운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내가 입은 의상이 증명한다.
오늘은 그야말로 배 꽉 찬 오리가 되어 뒤뚱뒤뚱 걸어야 했던 출근길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복을 차려입으면서 확인한 일기예보는 '어제보다 9도 낮음'을 표기하고 있었다.
"워매, 진짜 추위가 오나 보다."
얼마 전 급 추위가 온대서 꺼내 입었던 내복(진하게 아날로그 냄새가 나는 어휘네, 쓰고 보니~) 바지를 하루 입고서 빨아 넣어뒀다가 오늘 다시 꺼내 입었다. 상의는 초겨울 상태 그대로~
외투에 한양 멋쟁이 언니가 하사해 주신 털 부숭부숭한 머플러까지, 겹겹이 몸에 두르고 출근하다 보니 땀이 날 지경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기를 하니 체온 상승은 당연한 것이려니 하면서도 일기 예보를 그 따위(?)로 한 기상청이 미웠다. 그래, 돌변하는 것을 재미 삼아하는 듯싶은 자연 앞에 기상청이 무슨 죄인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제보다 무려 9도나 낮다는 예보는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내, 어제 사용했던 그대로의 기계가 그리 측정해 내는데 어찌 함? 우 씨~"
라고 예상되는 우둘투둘 위아래 입술 마주치면서 내놓을 항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참내, 으짠다고 기온과 달리 내 육신은 이리 당당함?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보다 두세 배는 추위를 느끼던 몸뚱이가 올해 왜 이리 변덕이람?"
읊어대면서 한편 다행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그래, 혹 내 육신이 돌변해서 한겨울에도 반 팔에 반 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젊은이들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털북숭이 차림새의 내 출근복에 대해 일터를 같이 사는 이들이 말했다.
"우와, 우아해요."
"우와, 재벌집 사모님 같아요."
"와우, 멋져요. 좀, 그렇게 좀 입으세요."
"와우, 오늘 선생님과 고급 레스토랑에 가고 싶네요. 최고급 음식도 가볍게 결재해 주실 것 같아요.ㅋㅋㅋㅋ"
위 언어들의 발생 후 바로 외투를 벗었다. 문제는 외투를 벗은 다음! 가을부터 시작되는 내 육신이 부리는 정전기의 힘이라니, 복슬복슬 외투며 머플러의 털들이 모직 주름치마에 희뿌연 안개를 만들고 있었으니. 스카치테이프로 터럭 제거하기 작업을 하다가 말았다. 그냥 종일 털부숭이 차림새로 있기로 했다. 다음 일은 어찌 됐든 퇴근 후로!
오늘의 교훈! 멋도 부리던 사람이 부리는 것이다. 하늘이 점점 흐릿해지긴 한다. 지금 한양에는 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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