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백지영을 알았다. 그녀가 달리 보인다.
- <싱어게인 3>을 보고
내게 가수 백지영은 그냥 가수였다. 그녀가 노래한 곡들은 굉장한 인기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내게는 '좋아하는 가수'의 축에 들지 않았다. 유명 가수가 아니었다는 거다. 훌륭한 가수가 아니었다는 거다. 솔직히 말하건대 그냥 노래를 잘하는 가수. 일반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축에 드는 여자 가수였다.
요즈음 JTBC에서 방송하는 음악 오디션 '싱어게인 3'이 있다. 마침 지난주에 불렀던 일곱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이번 경연에서 처음 알게 된 소수빈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아, 아름다운 노래이다. 최종전 1회에서의 소수빈의 노래는 '머물러 주오') 그곳에 그녀, 가수 백지영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한다.
'엥, 심사위원 좀 제발 제대로 앉혔으면!'
경연이 진행될 때마다 심사위원 한둘을 보고 하는 나의 찡얼거림이다. 단지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겠지만 지나치게 리듬을 자를 듯한 생뚱맞은 액션이나 괴성에 속한다 싶은 소리로 가수의 노래를 끊는다고 느껴지면 편집일지라도 싫다. 그들은 꼭 심사의 말도 가볍다. 표현도 내용도 빈한하다. 이번 경연에서도 그렇다. 진심으로 바라는 내 소견이다.
프로듀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작곡으로(내 추측으로는) 노래하는 가수도 아닌데 왜 심사위원 자리에 앉히는지 알 수 없는 심사위원들이 몇 있다는 거다. 그녀, 백지영도 그랬다. 그녀, 가수 백지영도 그다지 격에 맞게 앉은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이제야 알았다네. 백지영은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었단다. 내가 통 텔레비전을 안 보는 관계로~)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곳곳, 내가 좋아하는 오디션에서도 한두 명은 꼭 있었듯이 말이다.
"그래? 그럼 니가 해!"
몇 년 전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심사위원으로 나왔을 때 내가 내던진 칭얼거림에 남자가 했던 말이었다.
'그래, 거기서 거기겠지, 뭐.'
시큰둥하면서 넘기는 남자는 사실 텔레비전도 안 보며 경연 프로그램은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괜히 중얼거린 것을 듣고 한 답일 뿐이다.
이래저래(정작 이 프로그램에 흥미를 못 느끼고 있는 이유는 글 아래에 적겠다.) 실망스러워하고 있던 이 경연에, 내가 얻은 뜻밖의 결과가 있다. 가수 백지영에 관련한 생각이 변했다. 그녀를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이 문제였을까. '코드 쿤스트'의 숨은 덕후 팬인 나는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주장하는 그가 역시 '내 사람'이라는 생각에 뿌듯해하느라 바빴다. 한데 이에 못지않게 확실하게 생긴 또 하나의 생각은 가수 백지영에 관련한 입장이다. 록 음악과 클래식을 주로 듣는 나. 어쩌다가 접하곤 했던 백지영의 무대, 대부분 뉴스화되는 몇 '스캔들(뚜렷이 기억나는 것도 없지만 어쨌든)'로만 내게 남아있는 그녀. 그녀가 이 프로그램의 심사를 하여 내게 백지영의 노래를 새삼 들어보게 하고 있다. 이 경연에서 심사하는 그녀 백지영, 그녀의 언어, 그녀의 행동도 함께, 내게 참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대여섯 무대에서 심사의 말로 내놓은 그녀의 문장 속에 진심이 가득 배어 있다. 그녀가 하는 말마다 진정 어린 자기 심정을 효과적으로 담고 있다. 가수로서, 어머니로서, 여러 입장에서 자기 생각을 알뜰하게 내놓는다. 비록 매우 엉성한 무대를 선보였을지라도 부디 큰 가수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잊지 않도록 다독거린다. 이번 무대를 기회로, 가수 백지영이 해 준 위로와 조언을 꼭꼭 되새겨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돌봐준다.
애니메이션 <얼음공주>의 우리말 OST를 부른 가수의 무대가 있었다. 그녀가 실수하고 말았다. 백지영은 자기 딸을 떠올리며 열심히 듣고 있다가 가수의 실수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흘린 눈물에 나도 따라 훌쩍거렸다. 그 무대에서 했던 그녀 백지영의 심사 말을 들어보자. 둘이서 한 팀이 되어 노래하는 무대였다. 성우이자 무명 가수인 가수 19호는 딸 같은 가수 61호와 '전생 모녀'라는 팀으로 노래했더랬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순수의 소리를 타고난 19호, 그녀는 그만 격해진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는 실수하고 말았다. 노랫말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말았다. 백지영이 말했다. 결코 울컥했던 실수로 인해 노래의 격이 낮아진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그 무대를 본 모든 이들의 생각이었으리라. 백지영이 참 고마웠다. 19호는 또다시 예쁜 애니의 OST를 고운 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주리라.
"무명 가수들이 지닌 고유의 색을 바꾸려 들지 않겠어요. 각 가수는 각자 자기 색깔이 있어요. 그 색깔들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도울게요."
새로운 심사위원으로 합류하면서 했던 백지영의 말이었다. 참 곱다. 우아한 문장이면서 고상한 표현이다. 문장 가득, 듬뿍 진정한 음악인이 지녀야 할 미의 가치를 담고 있다.
'TEN 10' 결정전에서 25호에 대한 심사의 말도 떠올려본다. 25호는 출연 가수 중 아마 가장 연장자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내가 엄마이기도 하고 아직은 엄마가 필요한, 그런데 이제 저희 나이대가 되면~, 25호 님을 너무 잘 알겠어요(눈물).(사이), 이 언니도 어떡해. 노래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너무 잘하셨고요. 가끔은 이, 그, 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 가사를 살짝 흘려보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정말 정성스럽게, 그 단어가, 그 멜로디가, 그 가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꼭꼭 씹어서,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어, 먹이를(씹어서) 계속 먹여주듯이, 그렇게 저희에게 그 의미를 전달해 주시는 것 같아서, 굉장히 그 점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고요. 사실 그런 마음으로 불러주시지 않았으면 저희에게도 그런 울림이 없었을 것 같아요. 잘 들었습니다."
그날 무대는 유독 25호가 무명 가수의 티를 많이 흘리고 말았다. 자기 생을 돌아보매 오십에 가까운 나이. 그 나이, 그 세월이 힘들어하던 무대였음을 떠올릴 때 아프게 기억되었으리라. 이제 최종전을 앞둔 출연 가수 그녀, 25호는 강성희. 내가 좋아하는 그룹 '시나위'의 보컬이(었)다. 그녀, 오십이 다 되어가는 연배에 오죽했을까 싶은 세월들. 이름 없는 가수로 지새웠던 날들이 얼마나 한스러웠겠는가.
25호의 그 날 이 무대에 대한 내 가수, 나의 가수 '코드 쿤스트'도 그랬다. 후후후(지나쳤나?).
"음악이 음악으로 느껴지지 않게, 어이구, 음악이네 하고 느껴지게 하는 것보다 음악 그 이상의 느낌이 있는 무대. 25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런 무대를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5호의 노래는 항상 그랬어요. 분석의 의미조차 불필요하지요. 사람 냄새나고 삶이 묻어있는 음악, 그런 음악을 저도 하고 싶어요."
이는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고마운 코드 쿤스트. 얼마나 진정 어린, 진솔한 심사의 말인가.
어쿠스틱 기타 부문에서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추승엽의 TOP 10’ 무대에서도 백지영의 심사 말은 참 괜찮았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불렀을 거다. 59호 님의 목 상태가 지금 좋지 않은 것 같다. 그게 아쉽다. 그러나 59호 님은 노래하실 때 듣는 사람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뭔가가 있다. 굉장히 화려한 디테일을 보인다. 목 상태 때문에 떨어졌다. 그러나, 사실 놀란 게 59호 님 정도의 경력을 가진 가수면 자기 목 상태에 따라 디테일을 바꿔도 되는데, '나는 그냥 하던 대로 할 거야'라는 것이 느껴져서 사실 조금 소름 돋았다. 완벽한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타협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퍼포먼스 부분에서 너무 훌륭했다고 얘기했다. 내가 잘 알고 있으며, 그의 기타며, 그의 음악이며, 그의 음악을 위한 노력을 참 좋아하는 내게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추승엽은 참 열심히 노래한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는 우선 나이가 많아서, 독특한 목소리로 인해서 호불호가 갈린다. 안타깝다.)
내가 잘 알고 있는 12호 가수의 'TOP 10' 결정전에서 했던 가수 백지영의 심사 말도 들춰보자. 그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무대, 즉 빗나가버린 무대에서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자기 경험을 곁들여서 효과적인 심사를 해줬다. 더 나은 음악인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겸손하면서도 친절한 언어로 안내한다. 12호는 실력 있는 가수다. 내가 알고 있기에.
"도입부에서 이미 삐그덕거렸잖아요. 저도 무대에서 그런 경험이 없지 않거든요. 그럴 때는 동선 무시하고 집중에 집중하셔야 해요. 그래야지만 그나마 리듬을 찾아갈 수 있는데요. 지금 사실은 삐걱거리는 상태에서 할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그 어떤 것도 지금 처리하지 못한 상황이 된 것이거든요.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그 순간적인 판단을 얼른 빨리하셔야 좋은 프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 백지영의 노래를 좀 들어보리라. 그녀의 무대에서 그녀의 냄새를, 그녀의 노래를 통하여 좀 진하게 맡고 싶다. 이번 '싱어게인 3'에서 얻은 결과이다. 가수 백지영이 달리 보인다. 가수 백지영을 제대로 알게 되어 기쁘다.
사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싱어게인 3>는 <싱어게인 1>이나 <싱어게인 2>에 비해 크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무명 가수 전'이라는 부제목이 있는데 왜 타 경연에서, 하나의 경연도 아니고 여러 경연에서 그리고 본격적인 가수 경연 프로그램에서 자기 무대를 선 사람이 무대를 지배하는가. 왜 시청자들도 그 사실을 그냥 넘기는가. 이미 어느 정도 팬심을 가진 가수인데 말이다. 그 가수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 가수는 묻혀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룹 활동의 한 멤버로 잠깐 얼굴을 비춘 가수도 아니다. 솔로로 본격적인 가수들의 본격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한두 차례가 아니다. 한데 무명 가수라니. 하여, 이번 싱어게인 3은 별 재미가 없다. 이미 얻은 힘이 분명 영상으로, 사람들의 뇌리 안에 각이 잡혀 자리하고 있는데 무명 가수라니! 혹 '싱어게인 4'도 이어진다면 부디 이런 경우를 참고하라는 의견을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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