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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음악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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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에는

Mahler SYMPHONY No.5 말러 교향곡 제5번 올림 다단조

 

 

구스타프 말러. 오랜만이다. 내 얼마나 좋아하는 음악가인데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나는 이제야 말러를 찾는가. 참 내 생은 고달프나 보다라고 나는 나 자신을 달랜다.

 

음악이 고프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나는 갑작스레 살이 쪄서 몸무게가 불었다 생각되면 다른 쪽의 허함으로 못 견뎌한다. 이번에는 음악이다. 며칠 전 일터 동료들과 함께 저녁 회식 끝에 노래방을 갔다. 늙은 나는 젊은이들의 선곡 메뉴를 따라갈 수 없는 거의 자리에 앉아 듣는 편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젊은이들은 꼭꼭 순서를 짚어가면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차례가 되면 나도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상 야릇한 시력을 지닌 나는 노래를 부를라치면 자리에서 꼭꼭 일어서야 한다. 악보가 눈에 선명하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내 사는 방식대로 노래만 알지 정확한 노래를 몰라서이기도 하다. 노랫말을 아는데도 노랫말을 외우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하여 꼭 노래방 최전방 무대에 서야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회식일은 하필 월요일이었다. 월요 회식은, 월요일부터 취해버렸으니 한 주일을 다른 주보다 재빨리 지나갈 수 있다고 했던 젊은이도 포함된 회식이었다. 우리는 몽고인이 직접 운영하는 양꼬치 집에 앉아 엄청난 양의 양코치를 먹고 노래방으로 갔다. 아, 내 노래 순서를 맞이하고서야 퍼뜩 생각났다. 나는 목이 아팠다. 월요일부터 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 캑캑거리면서 아침을 맞았고 목이 거의 쉰 상태에서 노래방이었다.

 

키리에. 나는 키리에를 즐겨 듣는다. 정식 키리에. 성가 키리에. 천주교의 성가로 알고 있다. 키리에.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아다지에토에는 미칠 것 같은 결락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용기와 마음 속에서 요동치고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키리에' 또는 '퀴리에'라고도 불린다. 의미는 '주님'이다. 그리스어 '키리오스(κύριος)'의 호격이라고 알고 있다. m.남성 рел. 여호와((Jehovah: 야훼 Yahweh: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을 일컫는다. 모세에게 4개의 히브리어 자음(YHWH)으로 계시 되었던, 그리고 그리스 번역본에서 ‘키리오스’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사실은 잘 모른다. 어쨌든 ‘키리에’는 ‘키리오스’의 호격이란다. 자비송(가톨릭)과 기리에(성공회)로도 연결된다고 알고 있다. 아울러 Kyrie Eleison은 유일하게 라틴어로 되어 있지 않고 그리스어로 된 미사곡이라는 것.

그리스에서는 "주님"이란 뜻 이외에도 평범한 호칭으로도 쓰인다는! 누구~씨, 거기 누구~님, 저, ~선생처럼 그런 호칭. 그리스 복음서에서는 백인대장이 부하를 살려달라고 예수를 부를 때 키리에!(주님!)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미사곡 ‘키리에’는 이런 속뜻을 담고 있는 음악이다. 정말로, 참 좋아한다. 내게 내 생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 단 하나의 곡을 고르라고 하면 나는 ‘키리에’를 말한다. 좋아, 어떤 키리에? 너무 많다. 유독 ‘키리에’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음악들은 어느 것 하나 대충 부르는 노래가 없었다. 이 세상 곳곳에 여러 가수가 제각각 자기 고향과 자기 민족과 자기 특성과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의 갈래에 맞게 ‘키리에’를 부르는데 모두 좋다.

 

우리 대중가요에도 ‘키리에’가 있다. 자우림 김윤아의 ‘키리에’이다. 사실 이번 회식에서는 꼭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었다. 불러보고 싶었다. 외치고 싶었다. 나 좀 살게 해달라는 의미로 부르고 싶었다는 거다. 한데 부르질 못했다. 목소리가 잠겨서이기도 하지만 우선 고음이 안 될 것 같아서 키를 내린다는 것이 그만 첫 음을 잡지 못했다. 이어 부를 수 없었다.

 

하여 음악에 배가 고팠다. 많이 음악적으로 고팠다. 아주 많이 배가 고팠다. 찾아낸 음악이 말러이다. 물론 내가 애써 찾은 것이 아니다. 문득 유튜브 여기저기 서너 번 손 움직임 끝에 내 눈을 유혹한 글자가 있었으니 ‘구스타프 말러’였다. 그리고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연결되었는데 연이어 나를 붙잡은 문구가 있었으니 다음이다.

‘아다지에토에는 미칠 것 같은 결락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용기와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어느 인터넷 플랫폼에서 그저, 아무런 걸림이나 의도나 목적이 없이 ‘아다지에토’라는 낱말로 검색했다. 창에는 딱 위의 한 줄 문장이 모니터 맨 위쪽에 누워 있었다. 글(아마 ‘브런치’였을 거다.)을 읽고 나는 하염없이 울었던가. ‘말러리안들(구스타프 말러의 만년 팬들을 지칭한 것이리라)’을 위한 글 속,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쓰신 글이었던 듯싶다. 정말이지 아프게 울었다.

 

아다지에토. 이런, 이런이런. 아다지에토는 이탈리아어 adagietto. ‘음악 악보에서, 아다지오보다 조금 빠르게 연주하라는 말.’ 싫다, 너무 싫다. 왜 고작, 고작 이렇게나 간단하담. 이 신비의 음악, 이 고혹적인 음악, 이렇게나 사람을 참담하게 짓이기고 마는 이 음악이 고작 이런 한 줄 뜻풀이이람. 나는 사전 아다지에토와 연결된 사전을 떠올릴 때마다 싫었다. 사전이 싫고 사전의 편집자들이 싫었다. 이렇게밖에 소개할 수 없었을까.

 

구스타프 말러는 어느 출판사의 현대예술 대가로 책 속에 소개되었다. ‘구스타프 말러, 위대한 세기말의 거장’ 그는 사후 50년이 지나 재조명이 되었다. 마치 미술 쪽 전설적인 화가 ‘고흐’처럼 말이다.

 

책 속 말러는 그의 아내의 회상을 바탕으로 써진 것이라고 들었다. 말러가 살던 당시 유럽의 정치·사회·문화·과학·예술적 맥락을 함께 썼다는 내용도 있었다. 책 속 말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강인했단다. 어린 시절과 대학생 시절, 지휘자 시절을 거쳐 그는 한 시절 우울 시기를 거쳐 책 속에 침잠하여 자기 예술을 완성했다는 글이었다. 정치적인 말러인가 하면 격동기를 거치면서 자기 정체성을 완성해가는 그가 병으로 자기 생을 마감하면서도 작곡에 열을 올렸던 말러.

 

순수 독서 소녀였던 내가 책 속 말러를 만나면서 그만 홀딱 빠지고 말았다. 나는 그의 교향곡을 한 곡씩 한 곡씩 만나면서 씹어 들었다. 야금야금 내 안에 그를 삼키고 싶었다. 아홉의 교향곡, 아홉 곡의 교향곡과 「대지의 노래」 등의 가곡, 지휘자의 무대를 씹어 먹었다. 그는 에너지와 뚝심 또한 대단했다고 한다. 기다리는 힘이 강했다는 거다. 그가 지휘할 때면 연주자들 대부분 말러 앞에서 온몸을 벌벌 떨었다고 한다. 그는 연주자나 성악가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지휘봉을 레이피어(유럽의 결투용 날카로운 도검) 검처럼 죄인에게 겨누었다. 그런 채로 자세를 고정하고서 다른 한 손으로 계속 지휘했다는 말러.

‘당신이 선택한 이 템포는 음악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끔찍한 재앙이지만, 그렇다고 공연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지금 양보해 주는 것’

 

오두막에서 썼다는 교향곡 3번도 좋다. 남김없이 작곡해버렸다는 3번. 한데 오늘 만난 4번이 내게 더 매달린다. 흔히 그는 자신의 시대가 올 것을 예견한 것 같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의 말이다. 스스로 천재였기에 온갖 비극에도 불구하고, 작곡을 포기하지 않았고 당시 흐름이었던 낭만주의 말미에 새로운 음악 어법을 담은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지휘자이자 무대 연출자로서 새로운 음악 예술로 오페라를 총체 예술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러의 음악에는 괴테와 도스토옙스키에 심취했던 문학의 힘이 곡에 더해졌다. 그가 문학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기에 불같은 열정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기 재능에 매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이었기에 반유대주의적인 반감에 시달려야 했으며 빈에서 알마 신들러와 결혼했지만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부인 알마와도 서로에게 상처였던 불행한 관계의 지속.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질환자였고 그로 인해 생을 마쳤다. 대변혁기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 빈의 모습을 동시에 포개어 당시 유럽에서 말러는 신(新)교향악의 창시자, 세상을 떠돈 방랑자, 악마적인 지휘자, 고압적인 독재자, 냉엄한 예술가, 고독한 혁명가 그리고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천재 음악가. 그리하여 말러는 세기말의 거장이지 않을까.

 

나는 열망을 넘어 간절히 갈망한다. 늘 그의 음악 안에서 살아내기를. 그의 음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를 들을 수 있었던 하루를 행복했다고, 다행이었다고 결론을 짓고 하루를 마감한다. 미칠 것 같은 결락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용기와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들을 수 있어 참 고마운 하루였다. 병약하고 섬세하기만 한 세기말적인 인간. 평생 오직 한 곳만 바라본, 예술에만 투신했던 음악 외골수. 구스타프 말러를 사랑한다. 물론 존경을 바탕으로.

 

그래, 구스타프 말러의 '아다지에토'에는

‘죽음과 삶이 어깨동무를 한 채 진회색 안갯속을 부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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