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간간 짭짤-하다

반응형

 

 

 

간간 짭짤-하다.

 

 

간장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이것저것 장기간 먹거리로 가능한 장아찌를 만들던 날이면 꼭 말씀하셨다. 

"간간 짭잘-하니 좋다. 모다 열심히 묵겄다야. 되았다, 이만허먼 되았다."

먹을 수 있는 식물류라면 무엇이든 팔팔 끓인 장에 졸이는 것이 내 어머니의 일이었다. 소고기며 메추리알, 달걀 등의 값비싼(?) 장조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아찌이다. 식물 장아찌.

 

우리 집은 참 입이 많았다. 정작 저 위 나이가 찬 자식들은 모두 대도시에서 유학 중인데 논일과 밭일을 해내기 위해 상주하는 이들이 셋이었다. 무척 사나워서 순둥이인 나는 옆에 가는 것도 무서웠던 내 손위 언니 또래 부엌데기도 있었다. 아버지가, 고아가 된 먼 친척뻘 되는 언니를 데리고 와 학교를 보내면서 우리와 함께 살게 했다.

 

우리 아부지. 자수성가한 대농이었다. 말이 대농이지 옛날 농사꾼들은 잘 살고 못 살고의 구분이 없었다. 모두 못살았다. 오로지 새해 무렵 안팎으로 논밭 갈아엎는 것이 일이었다. 언 땅 풀려 거름 기운을 좀 입혀서, 새 것 심어 가꾼 것을 거둬들이면서 사느라 바빴다. 삼 시 세  끼를 해결할 방법이었다. 농촌은 어느 하루 소일거리를 찾아가면서 여유 부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눈 뜨면 밭을 매고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하면 논에 물을 대고. 뭔가를 해야만 먹을 것이 나왔다. 땅을 파든지, 뒤집든지, 엎으든지. 혹은 헤집든지.

 

우리 엄마는 유독 일복을 가득 타고났다. 땅을 불려놓은 아버지는 늘 밖으로 나돌았다. 대외적으로 치러야 할 집안일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일 저일 마을 일이며 친척들의 일을 도맡아서 하러 다니셨다. 일종의 자선사업이자 자원봉사활동을 하러 다니셨다. 문제가 되는 일이다 싶으면 사람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그는 위기에 봉착한 이들의 해결사로 움직이셨다. 하여 집안일은 땅 일이건 부엌일이건 모두 엄마 책임이었다. 

 

엄마에게 가장 큰 문제는 먹을거리였을 게다. 입 단속을 어서 해야 일하는 사람들의 뒷말이 없었다. 누구 하나 부푼 배를 두드리면서 늘어진 팔자를 자랑할 만한 처지가 못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가 고팠다. 배가 불러야 일을 했다. 말 그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인 시기였다. 현재에서 그리 멀지 않다.

 

'따땃하게 배 채워줘야 사람들이 일할 맛이 나제야. 어서 뭐든지 해 맥여야제야. 어서, 어서 하자.'

우리 엄마가 수시로 내놓는 혼잣말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아마 엄마는 일꾼들을 어찌 배부르게 해 줄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먹는 것도 귀한 시절이었다. 역시 현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이다. 언젠가 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깜짝 놀랐다. 배고픈 것도 겪어본 당사자라야 그 실상을 안다.

 

 

매실 장아찌. 장아찌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푸른 것들 온 들판에 만발해 있는 시기이면 우리 엄마는 매해 장아찌를 만드셨다. 냉이며 고사리며 두릅이며. 등등의 것들, 산과 들의 각종 식물류를 며칠 모아오게 했다. 하루 날 잡아서 이손 저손 모여서 다듬고 씻고 썰어서 온갖 준비를 마치면 또 어느 한날, 날을 잡아서 온 집안 가득 장 냄새가 진동하게 했다.

 

이통, 저통 다복다복 여러 종류의 장아찌를 담았다. 부엌 옆, 냉동고 작용까지 하던 창고에 정갈하게 넣어두셨다. 채곡채곡 정리하기 전에 뚜껑을 덮을 때면 우리 엄마가 꼭 하시는 일이 있었다. 아직 덜 식은, 여전히 조금 뜨거운 장 국물에 오른손 새끼 손가락을 살짝 담가 꺼내서는 맛을 보셨다.

"간간 짭잘-하니 장아찌들이 잘 되았다야. 올 여름 땀 뻘뻘 흘리고 일하고 나서 맹물 시원하니 등물하고야, 돼아지 고기 수육하고 내놓으면 장아찌에 푹 싸서 잘 묵고들 힘내겄다야. 반찬 걱정은 없겄다야."

 

마음 가득 풍족하신지 엷은 미소 숨기지 않으시던 우리 엄마. 당시 반찬은 간간 짭잘해야만 했다. 냉장고가 없었다. 찬들이 적당히 짠 기운을 품고 있어야 했다. 물론 맛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 

 

나도 매해 봄이면 온갖 장아찌를 담는다. 양파, 마늘, 냉이, 고추, 고춧잎. 깻잎, 마늘쫑, 매실, 두릅, 취나물, 명이나물 등등등. 어머니. 당신이 주신 입맛 덕분에 저, 제법 음식을 맛있게 한다. '간간 짭짤-하다'는 음식이 조금 짠 듯하면서도 입맛을 돋워주는 그런 맛을 말한다. 간간 짭짤했던 내 유년 시절의 한여름들이 그립다. 

 

반응형

'문학 > 내 어머니의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 넘으면 안 된다  (22) 2023.08.07
가리  (21) 2023.07.27
우두다  (27) 2023.07.25
척척하다  (17) 2023.06.28
땔싹  (16) 2023.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