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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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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다.

 

 

저 사진 속 사람이 여자라면 딱 저런 모습일 거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하루, 종일 우두고 앉아서 뭣을 할 거냐?”

“...... .”

“밖에 좀 나가자.”

“...... .”

“니 몸 우두고 있다고 뭐가 나올 것 같냐? 아무것도 없어야. 얼릉 나와. 밖으로 좀 나돌아다녀라. 그래야 기운도 좀 나고 밥맛도 좀 돌아올 것 아니냐.”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린 날 어느 오후 일상일 거다. 엄마는, 바쁜 엄마는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막내딸이 걱정스러웠을까.

 

나에게는 조울증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 현재도 지니고 살지 않는가 생각되곤 한다. 엄청 즐거운가 하면 한없이 가라앉는 나. 가끔, '정신지체 장애'에 관련 병명과 그 증상, 그리고 그로 인해 좋지 않은 상황 속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 속사정을 듣다 보면, 나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위험천만, 가까스로, 그 경계선 안쪽에 한 발 세워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딱 어릴 적 나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을 어릴 적에도 좋아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사실 내 주관으로는 '정신지체 장애'라는 것은 굳이 구별하여 이름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씩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강도가 조금 다를 뿐이지 않은가. 하여 보통 이상의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는 따뜻함을 배가한 마음 나눔을 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아, 아니다. 이것 또한 속 모르는, 꿈속에 사는, 어리숙한 꿈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쨌든 안타깝다, 세상이. 각설하고.

 

아마 어릴 적에도 그런 증상이 있었을 거다. 가느다란 기억이다. 자기 일이 너무 바빠 자식들 돌보는 것은 남의 일처럼 살았던 우리 엄마. 마음이야 오죽했으랴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엄마는 땅과 함께 숨을 쉬어야만 했다. 숨 한번 고르게 쉬기가 힘드셨을 우리 엄마에게 어린 나의 모습이 황당했을 때가 있었던 거다.

 

우리는 일찍이 부모 곁을 떠나 나이 스물 안팎에 청상과부가 되신 할머니의 손길 아래 어린 시절을 지냈다. 할머니야, 빳빳하게 쪽을 지신 머리(아침이면 꼭 비녀를 꽂으셨다) 단정하게 하시고는 손주 손녀 뒤치다꺼리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셨지만, 어찌 어린 것들과 소통이 원활할 수 있었으랴. 그나마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할머니는 손주와 손녀들을 위해 준비해두신 잔소리를 그 반도 하시지 못한 해 가셨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직장인이 되어서도 한참 나는 이런 모습이길 바랐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이후 독립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 중1부터 나는 나 혼자만의 자취 생활로 대도시 유학 생활을 진행하였다. 외로웠을 거다, 아마. 특히 중학교 2학년 때까지 2년을 꼬박 나 혼자서 지냈다. 방학이라 하여 시골로 내려가도 나 혼자였다. 손위 언니는 살림을 도맡아 하여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노닥거릴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집 안에, 그것도 방 안에 우두커니, 아니면 조물조물 나 혼자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유학이라고, 그래도 공부 좀 한다는 막내 딸년, 방학을 맞아 고향에 왔으면 어미 일을 좀 돕던지, 언니 일을 좀 돕던지, 두셋(?) 있는 친구를 좀 만나든지 하면 좋을 텐데 늘, 아무 말도 없이 방 안 구석에 앉거나 누워서 조용하니 늙은 엄마가 안타까웠나 보다. 그럴 때마다 내게 던지시는 문장 속에 있는 낱말이 있었으니 ‘우두다’이다.

 

 

늙은 몸으로도 나는 이런 생활이면 좋겠다. 나 혼자서 떠도는.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았다.

 

우두다

1. 동사 [방언] ‘우대하다’의 방언

예문)

목간탕에 강께 나만 돈얼 쪼깐 받던디 우두는 기준이 머당가?

(번역) 목욕탕에 가니까 나만 돈을 조금 받던데 {우대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우리 엄마가 내게 하시는 말씀이 그러셨던 것 같다.

“니 몸 우대하고, 즉 놀리지 않고 아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덧붙이자면

“니 몸 받들어 모시고 가만히 방 안에 있는다고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 거,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까 좀 움직여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몸 좀 움직여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던 시절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나온 시절이 아니었으니 풍족하게 음식을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건강상 문제가 있다는 말씀은 결코 아니던 시절이었으리. 그저, 좀 방을 벗어나서, 집을 벗어나서, 사람들과 좀 어울리라는 뜻이었을 거다. 떠올려보면 나는 바로 손위 언니와도 단 한마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어린 시절의 하루를 보내곤 했다. 자식 키우는 재미로 사셨던 우리 엄마, 재간둥이여야 마땅하다고 여길 막내딸이 말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조용하기만 하니 얼마나 가슴 답답했으랴.

 

나 혼자만의 생활을 엄청나게 즐기는 나는 지금도 여전하다. 혼자가 좋다. 종일 둘다 집에 있는 날이면 내 남자와 나누는 대화도 몇 줄 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좋다. 다행히 내 남자도 말 많은 것을 무지 싫어한다. 가끔 몇 줄 더 말을 했다가 내가 후회하곤 한다.

'자발없이, 내가 너무 말이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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