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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땔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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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싹

 

 

어서 땔싹 커야 할텐데.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철저한 유교를 사셨던 내 어머니는 막내딸내미 혹 언행이 가벼우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크셨다. 자고로 여자는 조용조용히 자기 삶을 인내할 것. 어머니가 사시던 시대의 여자들이었을 거다. 나는 그런 시대를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던 시대에 진입해 있던 참.

 

고집 세고 니것저것 가리지 않고 내멋대로 사려고 드는 내가 늘 불안해보이셨을 거다. 같이 살지 않으므로 무슨 일을 꾸미고 사는지도 모르셨을 건데 지금 내 귀에는 이 낱말이 포함된 어머니의 제법 화난 목소리가 남아있다. 아마 막내딸이 어찌 사는지 궁금해서 도시에 올라왔더니 다 큰 딸이 밤 늦게 귀가하던 모습에 하시던  말씀이셨으리라. 제법 자주 들었으니 나는 자고로 밖으로 싸돌아다닌 것을 좋아한 듯도 싶은데. '땔싹'이라는 낱말이다.

"땔싹 큰 것이 뭔 난리다냐. 여자는 조용조용해야 한다. 으짜든지"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엄마는 꼭 한 마디씩 하셨다. 클 만큼 다 컸으므로 이것저것 문제 만들지 말고 조신하게 살라는 주문이었을 거다. 

 

이제는 이미 땔싹 큰 지 너무 오래되어서 헤픈 웃음도 내놓을 일이 없는 안타까운 나이. 어머니가 내게 위 문장을 내놓으실 때, 그 이상의 나이를 다 먹어버린 지금의 나. 나이를  끔찍할 정도로 많이 먹어버렸다. 한데 나는 내 나이가 잘 소화가 잘 되질 않는다. 나의 순수한 의도에 의해, 곧고 야무진 모양새로 '땔싹' 커버린 나였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나는 사실 '땔싹', 어서 크고 싶지 않았다. 조금씩만 자라고 싶었다. 번듯하게 쑤욱 큰 키, 속없이 머리만 큰 사람은 결코 되고 싶지 않았으며 원하지 않았다. 적당히 자라고 싶었다. 그리하여 땔싹 다 큰 지금도 늘 불안하다. 어느 한 쪽은 분명 아직 다 크지 못한 곳이 있는 듯싶기도 하다.

 

나에게 더더욱 이 낱말이 끼인 문장을 많이 내놓으신 어머니는 내가 늘 불안했을 거다. 내일은 내 어머니가 덜 걱정할 모습으로 땔싹 큰 나로 살아야겠다. 

"땔싹 컸으면 어서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너무 집으로만 들어와서 탈인 것은 내 어머니의 말씀에 세뇌된 것일까. 내일, 금요일은 정말로 알차게 보내야겠다. 후회를 덜 하도록. 

 

'땔싹'의 정확한 어원은 아직 찾지 못했다. 쓰인 예는 한두 곳에서 보인다. 소박한 고유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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