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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간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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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푸다.

 

나는 늙어서도 이런 삶을 살고프다

 

 

좀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사시던 우리 엄마. 내가 직업을 갖게 되었어도 엄마는 끝없이 일해야만 했다. 자식이 여덟이었다. 엄마 마음에는 ‘아흔 부모에 일흔 자식’이 딱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도 엄마는 더, 더, 더 많은 것을 자식에게 채워주고자 하셨다.

 

아버지가 몸져눕자 엄마가 하시는 일의 종류가 달라졌다. 아니 한 가지로 정해졌다.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었다. 키가 일백팔십을 조금 넘으셨던가. 몸집도 든든하게 크고 무거웠던 아버지를 엄마는 혼자 돌보셔야 했다. 온 세상을 누비다시피 하시면서 사시다가 바깥 걸음이 어려워진 아버지는 말부터 거칠어지셨다.

 

엄마는 마치 천상으로부터 부여받은 자기 임무라는 생각을 하신 것처럼 보였다. 자기 몸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처지의 노구인데도 묵묵히 일하셨다. 나날이 몸 무거워지는 아버지 돌보기에 매달려서는 최선을 다하셨다. 열심히 일하셨다. 그때는 요즘 의미의 양로원도 거의 없었다. 여덟 자식은 모두 대도시 혹 중소도시에서 자기네들 사느라 바빴다. 나는 늘, 그녀, 우리 엄마를 보고 생각하곤 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느 날 어머니가 마침내 입을 여셨다. 이제는 아버지가 생을 정리하실 것 같다는 의사의 판정을 듣기 며칠 전이었을 거다.

“아이, 인제 내 몸도 간푸다야. 못하겄어야. 어쩔 거나. 내 몸이 성해야 니 아부지를 돌볼 텐디 인제 이를 어쩐다냐.”

 

‘간푸다.’

오늘, 일의 앞뒤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나는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아, 나도 이제 내 몸이 간퍼서 뭔 일을 붙잡고 해내지를 못할 나이가 된 것은 아닐까. 어서 공식적인 일, 즉 월급을 받아 가면서 하는 일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다행인 것은 정확히 생각하고 있던 행사 비용 총금액의 앞뒤를 맞춰 보니 해야 할 형태에 딱 떨어지게 계획을 세웠더라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만만의 콩떡이다. 인생, 새옹지마이다. 우리 엄마가 ‘간푸다’고 자기 생을 하소연하셨을 때 나는 얼마나 우리 엄마와의 시간 거리를 멀게 느꼈는지 모른다. 이제 엄마의 그 나이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금방이겠다.

 

간푸다

형용사

‘힘들다’의 남도 방언

 

‘간푸다’는 ‘극성스럽다’는 뜻도 있다. 이에 관한 글을 다음에~

 


 

불탄다는 금요일이다. 오늘 밤에는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는 날이어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올해 들어 3월 이후 잠도 제법 잔다. 아침잠을 늦도록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다. 참, 여전히 자정을 넘겨야만 잠드는 나는, 주말 늦은 아침잠을 즐기는 나는 그러고 보면 여전히 청춘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 응당 진행된다는 ‘초저녁잠’을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오늘 내가 벌인 일을 생각하면 ‘이것 참’을 읊어야 할 일이다. 대체 내 신체와 정신에 깃든 리듬은 무엇이 맞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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