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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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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다.

어이쿠나. 이 아이는 속도 마음도 참 많이 애리겠다. 안타깝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몸에 난 상처가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여러 뜻을 지닌 '애리다' 중 내가 오늘 쓰려는 의미의 '애리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아리다]의 남도식 방언이라는 의미의 해석이 함께 있다. '애리다'는 육신이 아플 때도 정신이 아플 때도 사용한다.

 

한 사람의 정신, 마음 상태에 따라 컨디션이 달라지는 육신의 한 부분이 '위장'이라고들 한다. 그렇다. 나도 그렇다. 늘 느낀다. 정신 상태가 흐릿하거나 혼란스러우면 위장이 아파오고 위장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늘 '애리다'고 하셨다. 

"아이고오, 오늘 아침 급하게 한술  뜨고 밭에 나갔더니 날이 좀 썰렁해서 그런지 속이 애리다야."

이는 위장이 쓰리고 아픈 것을 일컫는다. 

"아이, 마을에 나갔더니 사람들이 그러는디, 저 아랫돔에 거시기, 거시기 엄마 말다. 죽어뿌렀단다. 어쩌꺼나. 아그들도 어린디. 으짠다고 그랬을까? 나도 사는디. 으쨌거나 자식들 보고 좀 살지. 왜 그랬을까잉. 속이 애린다야."

이는 마음이 아프다는 것의 더 짙은 표현이다.

 

나도 그렇다. 몸도 마음도 애릴 때가 있다. 얼마 전, 3월 들어서면서 급작스레 중요하고 어려운 손님이 우리 집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왔다. 부지런히 집 청소를 했다. 무려 3주일의 토요일과 일요일을 열심히 일했다. 지난 주 화단을 청소한다고 우왕좌왕하다가 무릎을 몇 번 사각 귀퉁이에 찍었는데 오른쪽 무릎 위 부드러운 살 부위를 세게 부딪혔나 보다. 무릎 부근이 뼈까지 애린다. 약을 좀 발라야겠다. 그런가 하면 3주일의 주말을 열심히 청소했는데도 내 서식지는 여전히 지저분하다. 우리나라 여자 평균 수명에 비춰볼 때 죽음으로 가는 시간이 더 짧아진 지금, 나는 여태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생각하니 속이 애린다. 살림도 못하고 그렇다고 수직 상승의 승진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빤빤하게 얼굴 내밀고 사는 강인한 생도 아니었다. 뭘 하고 살아왔을까.

 

그러고 보니 '애리다'는 뭐, 구체적인 표현이 불가능한 상태를 두리뭉실 모아서 좋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참 응큼하면서도 속 넓은 의미를 지닌 낱말이다. 재미있다. 고마운 낱말이기도 하다. '애리다'가 없었으면 지금 내 심정을 어찌 이리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었으랴.

 


오늘도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내렸던 듯싶은데 잘못된 기억인가? 어쨌든 이 겨울, 왜 이리 비가 많을까. 농부의 딸인지라. 겨울 습한 날이 많다는 것이 농작물들에 좋지 않을 텐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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