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무거웠다. 그러나 낮 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코로나19는 여전히 내 생활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은 꼭 7시 이전 출근이어야 했다. 어서 일어나 서둘러야 했으나 몸이 영 개운치 않았다. 목 안이 답답했다. 아니 육체 내부 전체가 투명하지 못했다. 검은 구름이 강렬한 밀도로 온몸 속, 모든 공간을 꽉꽉 채운 우울이었다. 수많은 형용사들, 감정 표출이 가능한 수많은 언어들을 자랑하는 한글 속 알맞은 낱말을 떠올리려 해도 붙잡을 수가 었었다. 제아무리 찾아봐도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낱말을 찾기 어려웠다. 불투명이 진한 농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이 무거웠다.
나 다음으로 틀림없이 내 일터에 등장하던 사람이 코로나19 가족 감염이다. 자가 진단에서는 음성이었지만 일단 보건소에서 정식 검사를 하자 하고 오늘 내일을 쉬게 했다. 7시,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일터로 와 자기 물건을 챙겨가게 했다. 나는 멀리 서서 안녕을 기원했다. 재택이다. 4월이었지 아마. 내가 환자가 되고 일터 모든 일의 체계가 바삭바삭 부서져버렸던 공포가 떠올랐다.
이 시각, 분명 그와 함께 동거해야 하는데 나 혼자다. 허전하다. 내 공간, 우리의 일터에 첫 발 내디디면서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던 그의 음성. '안녕하세요?'가 환청으로 떠돈다. 늘 혼자서의 생활을 고집하는데 가끔 이렇게 사람 소리가 그립다. 내 생활 방식이 못내 이해되지 않은 한 사람은 말하리라. "인간은 인간이구나." 그래. 나도 인간이다.
'꺼이꺼이'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아침을 열었다. 여섯 시 기상 알람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사이다. 어떤 형용사도 연결시킬 수 없었다. 그저 꺼이꺼이 울고 싶었다. 어쩌다가 지상 최고의 식탐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살던 내가 이 신세가 되었는가. 입 안, 식도가 시작되는 경계 부분부터 몸통 속 여러 내장들이며 기관 등 어느 한 곳 빠짐없이 가득, 어떤 불협화음이 꽉 차 있는 듯싶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 야릇한 이 기분'을 어찌해야 하나. 느릿느릿 일어나 앉았다.
여러 베개를 높이 쌓아 구축한 '베개 산(역류성식도염 환자용 베개를 말함)'에 기대 앉는다. 오른손을 넓게 펼쳐서 배꼽 주위에 원을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꼭꼭, 꼭 눌러준다. 통증이 조금 느껴질 만큼 지그시. 손가락에서 배출된 압력은 배꼽과 나란한 배꼽 주위 오른쪽과 왼쪽 점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다. '천추'이다. 배꼽과 명치 중간의 '중완'도 어서 챙긴다. 강도를 높여 몇 번 더 강한 지압이 되게 한다.
양쪽 손바닥으로 가슴도 몇 번 두들겨본다. 손바닥 혈 자리 한 가운데를 지그시 눌러준다. 손바닥을 더 넓게 펴서 검지 첫째 마디를 4B연필 뒤끝으로 꾹 누른다. 날카롭지 못해 그럴싸한 통증을 마련하지 못한다. 손등 검지 끝 마디 부근, '이간'이라는 곳은 다른 편 검지 끝으로 꼭꼭 눌러준다. 이곳 저곳 들쑤시지만 몸이 느끼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 몸속에 눈이 있다면 아마 아침의 내 내장과 기관들은 '게슴츠레'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양새였을 것이다. 만사 불통이었다. 인지의 힘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이 이미 부재하였다. 어서 일어나 빠른 출발이 필요한 시각이었다. 돌아 돌아, 더 긴 길을 만들어 걸으면 좀 내려갈까. 몸속 어느 막힌 부분이 시원스레 뚫릴 수 있을까.
역류성식도염이다. 지금껏 병원에 다닌 결과에서 들은 병명이다. '역류성식도염이 보입니다.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으세요, 위 내시경을 꾸준히 하세요'가 검강 검진 결과 통지서의 내용이었다. 병원. 여러 병원을 다니고 여러 종의 약 복용을 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일정 기간 약을 먹으면 며칠 불편감에서 해방된다. 2, 3일 후 통증이 다시 돌아온다. '도로아미타불'의 돌림 증상이 끝없이 진행된다. 꾸준한 운동과 음식량 조절로 버틸 만하다 싶어졌는데 긴 여름 휴가를 오직 집 안에서만 살아낸 것이 원인이었을까. 내장 속 무거움이 그 농도를 강하게 포장하여 꽉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불치병'이라는 낱말이 떠오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모진 시간을 살고 계시는 분들께는 정말로 죄송하나 역류성식도염도 분명 불치병이라 생각된다. 5년 전? 6년 전? 하룻밤 새 무려 7kg이 넘는 몸무게를 내 육신에서 제거해갔던 저녁이 떠오른다. 발병일 오후 원고 제출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내 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곳의 원고를 한 데 모아 편집하는 일이었다. 원고 모으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은 글쓰기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책 발간 작업 자체를 거부하던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들은 위아래 입술을 퉁퉁 불려 내밀고는 손사래를 쳤다. 관련 작업에 정성 대신 불평불만을 드러내놓고 가득 채웠다. 대충 원고를 모아 짐짝 넘기듯 내게 넘겼다. 나는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수정, 보완해야 했다. 앞뒤 문맥을 고려한 살핌을 위하여 손대기에는 턱도 없는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원고 한 편에 오, 탈자가 수두룩했다. 아마 일주일여 그 일에만 매달렸을 것이다.
이날 이러저러한 일이 진행되고, 가까스로 마지막 페이지를 마친 후 밀가루 빵을 마구마구 목구멍에 쑤셔 넣은 야만적 행위를 나는 행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 끝에 얻은 질병이 역류성식도염이었다. 당시 이태 전 쯤 건강검진에서 '역류성식도염 기가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기억을 희미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런저런 증상이 전혀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현대인이 세상을 살아내는 기본기라는 인터넷 검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무식함과 교만함과 경솔함으로 중무장해서 살던 자가 받은 벌이리라.
열심히 걸었다. 무려 6시 40분에 일터의 공간을 밟았다. 외부 공간을 열심히 걸었다. 언젠가 이런 아침과 안녕을 할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서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다. 세 바퀴. 그리고 낮 동안의 나는 가볍게 세상을 터치하면서 살아낼 수 있었다. 내게 힘을 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내 사람들! 오늘, 내 낮의 역사는 가벼움으로 역회전이 가능했다. 확실히! 나는 인덕이 있다.
이제 밤이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실내운동도 하자. 내일 아침 가볍게 일어날 수 있도록 루틴을 실행하자. 그리고 하비에르 보텟의 다른 모습 그리기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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