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시에 직립하였다.
구구절절 소소한 아침은 덮어둔다. 아, 한 가지만 들먹이자. 누워서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유튜브 일당백 강의를 들었구나. 진시황과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였다. 결론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똑같은 인간을 신비화하여 숭상하고 무릎을 꿇는 삶을 산다? 권력은 아랫사람들이 만들어준다. 자기 발등 자기가 찍는 길을 만들어서 산다. 슬픈 일이다. 문제는 서기 기준으로 2022년 째에도 권력을 부풀려주는 것에 여념이 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10시에 나의 오늘 역사를 시작하였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48분. 그렇담 48분 동안은 무엇을 함? 치카치카, 음양수를 한 컵 조제하여 마셨다. 대양 한가운데 자리한 섬에서 만들어져 내게 온 진한 꿀 한 수저도 먹었다. 아하, 음양수보다 꿀 한 수저이 먼저였다. 공복에 농도 진한 꿀 한 스푼 먹기는 역류성식도염을 위한 절차이다. 이것, 무지 비싼 것이다. 나의 천사, 둘째 언니가 사서 보내준 것이다. 맛있기는 무지 맛있다.
더위를 느낀다. 베란다에 와 쏟아져 있는 가을 햇살이 가을답다. 무지하게 강하다. 무작정 내리쬐는 것으로만 승부를 던져오던 설익은 여름빛의 무게가 가벼웠다는 생각이 든다. 토실토실, 속살을 믿음직스럽게 채워 실한 열매 맺기 채비를 하게 하는 가을빛이 야무지다. 그 덕에 너저분했던 나의 여름 생활 흔적을 담은 여름 이불이 나의 체취를 말끔히 씻어낸 후 가을빛을 빌어 말라가고 있다. 그 너머 나와 동고동락의 세월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가는 율마들이 씩씩하다.
율마. 어감으로도 참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갓 태어난 아이 작명에도 제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어감이라고 들었다. 동식물도 매한가지이다. 이름이 각 생명체의 운명을 점지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가장 풍성하게 자라던 율마 한 녀석이 내 게으름과 무지로 죽어나가던 삼년 전 어느 여름을 늘 떠올린다. 이를 계기로 율마 키우는 방법을 철저하게 공부했다. 지금은 거구의 율마 둘에 제법 커다란 몸이 된 넷, 가지치기 끝에 뿌리내리기로 키워내고 있는 열 넘은 아기 율마들이 자라고 있다. 고마운 녀석들. 꽃 피우는 아이들, 즉 잎을 떨어뜨리는 녀석들을 모두 율마 혹은 관엽식물로 바꿔가고 있다.
거실이며 베란다 전체를 한눈에 담아본다. 어지럽다. 이것도 어느 한 날 내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필름에 담는다. 여기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게으른 인간인가를 실감하는 풍경인데 불쑥 이마저도 사람이 사는, 사랑스러운 풍경일 수 있겠다 싶다. 부지런히 살고 있다고 우쭈쭈쭈 나를 부추긴다. 일주일, 열심히 살지 않았느냐. 오늘 아침 열 시에 직립한 것도 필요하겠다. 건강한 휴식을 위한 느긋함이다. 자기 합리화? 뭐, 사람 사는 것, 자기 합리화라는 방식이 없다면 어찌 역사를 이끌면서 살아냈겠는가. 자기 안에 새록새록 자라나던 것들이 어느 날 거대한 함포가 되는 분노로 화하는 순간, 다스릴 수 없어 그만 자폭하는 식이 되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것은 자기 합리화를 통한 자정의 순간들이 있어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그렇지 아니한가.
식물들과 빨래와 내 공예품과 읽다 말고 베란다 한쪽 소외당한 책이며 수 년을 나와 함께 한 질긴 수명의 다육이도 보인다. 열대기후를 살아야 하는데 온대기후의 아파트라는 감옥에 갇힌 채 이상야릇한 신체로 자라고 있는 저 녀석들, 이름이 뭐더라. 그래, 용설란, 여우꼬리로도 불리는 '아가베 아테누아타'도 셋 보인다. 길이길이 내 곁에 두고 이상한 몸체 그대로, 더 굵게 더 강하게 키워 명물이 되게 하리라는 다짐을 하곤 하는데 녀석들은 늘 그대로이다. 굵게 자라다가 내게 와서 그만 빼빼가 된 아이들. 주인을 닮아간다. 징그럽게 사랑을 주면서 물고 늘어지면 언젠가는 굵고 단단하게 잘 자랄 것이다.
어젯밤 그림을 시작했다. 그대로 자면 오늘도 흐지부지될 것만 같아 쏟아지는 잠을 달래면서 선 몇을 그어뒀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11시 40분이다. 아침도 제대로 한 상 차려 드신 '또 한 사람'이 돼지고기를 주 재료로 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오달지게 먹고 야멸차면서 깔끔하게 실내운동 5종 1세트도 해낼 것이다. 자, 어서 그림 그리기 시작!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가속도로 달렸다. 내일 오전 중에는 '끝'을 내리라. 책 '하얼빈'을 읽어야 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서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실내운동을 해야 되겠다. 묵은지를 쫙 펼쳐 두툼한 돼지 삼겹(?)을 길게 올려 조리한 묵은지 돼지고기찜을 너무 많이 먹었다. 그것도 두 끼를!
참, 어제 퇴근길, 땡감이 보이지 않았다. 부디 누군가의 항아리에 곱게 모셔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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