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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우주 창조신의 관리 범위 밖으로 떨어뜨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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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창조신의 관리 범위 밖으로 떨어뜨려지다.

 

 

 

오늘 아침 출근길 하늘 1

 

 

우주 창조의 신이 '한데'로 나를 떨어뜨린 채 삶을 살게 한다? 우주 창조의 신이 다스리는 공간 밖으로 떨궈진 채 삶을 산다. '한데'란 '사방, 상하좌우를 덮거나 가려지지 않은 곳이다. 곧 집의 바깥, 어떤 존재의 보살핌 외양을 말한다. 이 나이에 당연한 것이라고 여길 일이기는 하나 출근길에서 매일 만나는 일년생 화초들의 동산을 지나면서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일터에 입실하였다.

 

나 스스로 헤쳐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른 아침이 새삼스럽다. 제법 '쏴'한 바람이 노출된 맨살에 부딪혀왔다.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을 들고 처음 했던 일, 오늘의 기온을 체크해서 준비한 자켓은 백 속에 구겨져 있었고 검은 드레스에 검고 긴 머플러만 목 주면에서 찰랑거렸다. 최근 들어 가장 좋지 않은 컨디션이라 느끼면서 하루를 열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 하늘 2

 

떨어뜨려지다. '팽(烹) 당하다'라는 표현도 어울리겠다.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나니 사냥 개를 삶는다)'에서 탄생하였다고 알고 있다. 이 구절은 시의 상징이랄 수 있는 '함축'이라는 낱말을 기묘하고 절묘하게 드러낸다. 이야기 속, 현실 속에서 뜻밖의 이유로 갑작스레 소외되었음을 한탄 조로 읊는 구절이겠다. 한글맞춤법 통일안에는 아직 입적하지 못했지만 여러 방향에서 해석될 수 있는 다중의 의미를 지닌 피동사이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들은 강의 내용으로 문득 떠올린 생각이다. '나는, 내 나이는 이미 우주 창조신의 활동 범위 밖에 떨궈졌구나.' 슬픈 현실이기는 하나 한편 나 혼자서 꿋꿋하게 꾸려나가야 할 날이 진열되어 있음을 다행이라 여기자. 내 안에 정립된 삶의 방법을 구체적이고 야무지게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권리를 부여받은 셈이라 여기자. 발걸음에 힘이 솟기도 했다. 

 

현관을 나서면서 출근시간 내내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지닌 강의를 선택한다. 유튜브를 켜니 삶의 의미와 관련된 강의이다. 이미 두세 번을 들었을, 내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의 강의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아련한 수평선 너머 존재해 있지만 교수님의 책을 여럿 읽었던 것을 내가 했던 일들 중 고상한 부류에 넣어둘 정도이다. 책 속에서, 여러 강의 속에서 내 나름대로 파악한 그 교수님의 사상은 진정 내가 추구하는 삶과 일맥상통한다 싶어졌다. 뇌과학을 하시는, 이분법을 거부하시며( 나의 판단으로). 과학과 인문과 철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내용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하늘 3 - 자연과 인공물의 합이 묘하다.

 

일터 가까이, 이제 다 왔다 싶어지는 거리를 걷는데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인간은 조물주(신 혹은 창조주 등 다양한 표현이 있겠으나 나는 '조물주'라는 낱말을 참 좋아한다)로부터 부여받은, 각자에게 할당된 삶을 살다가 간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한 후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간다. 왜 죽음일까. 더는 조물주 당신이 줄 수 있는 무엇이 없을 때, 보살펴야 할 어떤 상황이 끝난 이들을 각자 방식으로 얼마간을 살게 한다. 신은 이제 줄 것이 없으니 너 알아서 살라고 자기 영역 밖으로 성인들을 내몬다. 그리고는 곧 죽음이라는 명제로 삶을 하직하게 한다. 죽음은 자연으로부터 신으로부터 조물주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게 없음을 의미하면서 일정한 양의 삶을 살다 보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도 없게 될 때 거행된다. 인간사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의 길을 가게 되는 당연지사 일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몇 걸음을 더 걷자 공터에 일년생 화초들이 모여 있다. 꽤 높은 층의 두 원룸 빌딩 사이 빈터 귀퉁이에 있다. 봄의 새싹을 시작으로 늦은 가을까지 화초들이 각자 자기 미모를 뽐낸다. 백설공주의 계모가 들고 있는 거울이 읊어댈, 이 세상 최고의 미인 수준들이다. 연노랑, 진노랑, 빨강, 짙은 빨강에, 주황, 짙은 주황, 보라, 남보라까지 알록달록 무지개가 지닌 색 잔치를 능가한다. 맨드라미 빨간 벼슬이 내게 카메라를 작동하게 한다. 카메라를 켜려다가 멈춘다. 그래,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은 이곳 일년생 화초구나. '찰칵'이라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을 들려주는 것은 멈추자. 

 

오늘 아침 출근길 하늘 4

 

 

조물주는 나를 이미 팽개쳤을지라도 이 아이들은 늘 지나는 내게 인사를 잊지 않는다. 가만 이름들을 불러본다. 봉숭아, 해바라기, 코스모스, 맨드라미, 패튜니아, 금잔화, 천수국, 만수국, 수레국화 등등. 아이들아, 이 순간, 내가 지닌 고운 마음이 있다면 모두 너희들에게 건네줄게. 사실 이곳 지날 때마다 너희들이 내게 주는 안부 인사로 잉태되고 성장하고 마침내 제법 실하게 익어가고 있을 내 마음속 소중한 감성들이란다. 얼마 남지 않은 너희들의 날들, 마음껏 너희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뽐내다가 가렴. 겨울, 씨앗으로 땅속에 머무를 너희들의 후손들에게도 지나가면서 매일의 안부를 꼭 들려주는 것 잊지 않을게. 자, 나를 모두 받으렴.

 

 

출처 픽사베이


종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난방을 좀 켜야겠다. 영화를 시작하지 말아야지. 아날로그 종이 일기만 쓰고 어서 자자.

 

 

이 세상 최고의 천사, 힘들 때마다 나의 눈물받이가 기꺼이 되어주는 둘째 언니와 긴 시간을 통화했다. '건강해야 한다. 건강 위에 존재하는, 중요한 것은 없다. 모든 병의 근원은 신경성이다.' 천사의 속삭임이었다. 블로그 댓글 읽고 답하기도 오늘은 힘들 것 같다. 푹 잠을 자둬야 되겠다. 

 

참, 미남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을 그린 것도 선 몇 보완하여 올리려니 했는데 오늘은 힘들겠다. 하루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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