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체와 편년체
며칠 전 이곳 블로그에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비교하여 글을 썼다. 내용 중 역사서의 내용 구성 방식을 구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써 보자.
«삼국지»는 기전체라는데 그렇다면 <기전체는>는 뭔가. 흔히 '기전체'는 '편년체'와 한 쌍으로 의미 해석에 들어간다.
기전체의 효시는 중국 전한 시기의 한나라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쓴 «사기»의 내용 구성에서 유래한다.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 <지>, <연표> 등으로 구성된다. <본기>는 제왕의 기록이다. <세가>는 제후의 기록이며 <열전>은 그 시대를 풍미했던 여러 인물을 쓴 것이다. 당대 다양한 문물제도를 기록한 것은 <지>와 <연표>이다. 사마천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의문과 역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사기»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기전체는 그 시대 문명 읽기의 좋은 자료이다. 여러 방향에서 기술한 다양한 방법의 풍성한 내용이 참 읽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즉 하나의 주제에 관련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시대 분석에 참고하기 좋다. 한편 여기저기 줄기 없이 곳곳으로 펼쳐진 듯하여 한 시대의 총체적 역사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 말하자면 독자는 기전체의 글을 읽고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뼈대를 세워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느 황제가 다스리던 한 시대를 이해하려면 그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에 살았던 제후와 여러 사람의 세가 및 열전을 참고해야 그 시대를 통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서 중 기전체의 대표 서적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함께 김종서 등의 «고려사»가 있다. «고려사»[ 高麗史 ]를 이야기해 보자.
«고려사» 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 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이다. 세종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문종 원년에 편찬된 것으로 관청 사료(= 관찬사서 - 관청에서 주도하여 편찬한 역사서)로 기전체 사서이다. 고려의 태조에서 공양왕까지, 32명의 왕의 연대기인 세가 46권, 천문지에서 형법지까지 10조 목의 지 39권, 연표 2권, 1,008명의 열전 50권, 목록 2권을 합해 총 139권 75 책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건국의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에, 고려 무신 정권기에서 우왕 · 창왕까지의 폐정을 경계하고 교훈을 찾으려는 목적에서 편찬되었다고 한다. 이 사서는 사료 선택의 엄정성과 객관적 서술 태도를 유지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편년체는 기전체와는 다른 서술방식이다. 일목요연하다고 해야 할까. 서술의 축이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는 뚜렷한 기준을 가진다. 역사 기록을 연도, 월, 일 등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이다. 편년체는 총체적인 역사 이해에는 합당하다. 즉 있는 것들을 모두 하나로 합치거나 묶어놓은 역사 구성 방식이다.
한편 편년체는 시간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어 특정 자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의 교육제도를 이해하려면 기전체의 경우 예문지 같은 곳에서 별도로 다루므로 한눈에 참고하기 편한데 편년체는 일일이 시기별 기록을 검토해서 어느 한 분야의 관련 내용을 뽑아 정리해야 한다. 편년체로 역사 공부를 하기에는 그 범위가 좁아 층층이 몇 단계를 더 밟아야 한 시대의 총체적인 역사 공부가 가능하다. 그 단계는 뻑뻑하고 요란하여 사람을 번거롭게 한다.
진정한 역사 공부는 기전체와 편년체의 총합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폭넓고 깊이 있는 내용 체계가 잡힌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이면서 다각적으로 당대 역사 해석이 가능하고 기저에 깔린 사상이나 문명의 이해에 필요하겠다.
참, 느닷없는 생각 하나. 내가 역사서를 써야 한다면 기전체가 어울릴까 아니면 편년체가 어울릴까. 그것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 내 일터 맡은 일의 특성으로는 편년체가 분명 어울릴 텐데 내 성향은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는 것. 한없이 늘어뜨린 만년체가 되는 것이 문제긴 하나 어쨌든 나는 기전체가 좋다. 내가 글을 좀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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