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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어쨌든 공부

김경일 교수의 심리학 강의

 

 

 

김경일 교수의 심리학 강의를 들었다.

- 경제 유튜브 '삼 프로 tv'에서 - 

 

갑질은 정말로 안 해야지. 아냐, 위 그림 속 사람은 위대한 사람일 수도 있어.

 

마음이 바빠 내 눈에 걸려드는 강의라면 무작정 듣는 편이다. 유튜브에, 구글에 감사드리면서 듣는 강의는 나의 지식 습득에 필요한 실루엣 정도를 담기에 안성맞춤이다. 손은 늘 움직이면서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눈은 손이 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야 하고 나의 청각은 청신경 줄을 타고 스며드는 강의 내용을 낱자로 접수한다. 아마 1, 20퍼센트 정도는 완전 입력이 될 것이다. 그것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나의 얕은 지적 수준을 생각하면서 다행이라고 외친다.

 

요즘 유튜브 강의는 마치 이게 학자의 강의인가 예능 프로그램의 한 범주인가 의심될 만큼 대중성이 적나라한, 대학교수라든지 전문가들이 하는 강의들이 많다. 가끔, 아주 가끔 듣는 김경일 교수님의 심리학 강의도 그중 하나이다. 대중성이 적나라한 것이, 사실, 나 같은 서민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싶은, 또 꼴에 너무 상식적인 선상의 것이 들리면 툴툴댄다.

'뭐, 빤한 것을 이리 강의랍시고 하는 거야?'

몰상식의 극치를 달리는 언행으로 내 얼굴에 침 뱉기를 적나라하게 실천한다. 자, 또 서설이 길어졌고. 각설하고.

 

심리학 관심 주제도 변해왔다. 심리학에도 세대가 있다? 시대 구분이 된다? 한때 성차별이었다가 지능지수로 갔다가 행복을 열어보더니 21세기에는 '진화'를 바탕으로 심리학을 논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 기계, 연산 기계. 일종의 생각 컴퓨팅이랄 수 있겠다."

"그럼 심리와 마음은 비슷한가요? 심리는 이치, 마음은 그 상태. 그래, 심리학은 마음 학문, '심학'이랄 수도 있지 않냐고 말한다."

 

"mbti는 심리학인가요?"

"심리 유형의 구분이 더 낫지 않나? 그런데 또 구분 짓는 것은 아니다. 전형적 검사지만 오남용이다. 꽤 재미있는, 흥미로운 검사이지만,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석하려 드는 것처럼 성격 검사로 보기에는 무리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이 검사를 1회 해보고 내 검사 결과와 함께 이에 관련한 모든 것을 버렸다. 한 번 해보고 버렸다. 계속 변하더군. 1회 검사 중에도 다르더군. 상황과 맥락 속에서 달라지더군. 나는 고혈압 검사를 생각했다. 정확하게 공통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정도가 서로 유사한 점이 있더라.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민감하게 측정되더라. 변하지 않은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더라. 

 

진행자 측에서 내놓은 말이다.

"진행자 셋 다 모두 내향적인 듯하나 제일 내향적인 사람이 정프로(정영진)이다. 이상하지 않은가요?"(나도 깜짝 놀랐다는 사실)

"내향과 낯을 가린다는 것은 다르다. 까칠하다, 수줍어하다가 아니다. 양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라. 오해이다. 실탄이다. 에너지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내향적인 사람은 빨리 지친다. 분산하지 못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집중 쪽으로 인식 체계가 발달해 있다. 유재석도 내향적이다. 그는 다만 자기 성격을 돌아보면서 자기 성격 위에 사회적 스킬을 쌓아온 것이다. 전형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잘 다듬어 온 사람이다." 

"내향적인 사람이 많은 사람을 잘 못 만나는 것은 왜일까요?"

"예민하다, 민감하다 에서 출발한다. 센서 자체가 민감한 사람들은~"

 

"투자. 좋은 돈과 나쁜 돈이 있나요?"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렵게 벌었는가, 땀을 흘렸냐 와 부정한 방법이냐, 사기 등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벌었냐를 말한다. 즉 나쁜 돈은 투기이다. 투자자와 투기자에게 이익금으로 하고 싶은 일을 써보라고 하면 투기로 번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지 쓰질 못한다. 효용성을 부리지 못한다. 자기 예상의 두 배 이상 세 배 이상 엄청난 돈으로 투기 이익이 있을 때가 되어야 쓸 곳을 정하더라."

헐, 투기로라도 좋으니 내가 쓸 곳을 떡하니 말할 수 있도록 몇십 배, 몇백 배의 돈을 벌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는 금방 취소했다. 내 성향에, 투기로 돈을 벌면 나는 분명 크게 불행해질 인간이다. 왜? 운명이 그래. ㅋ.

 

교수님의 계속된 답은 이렇다.

"진화와 연결시켜 보자. 수명 길어지면서 나쁜 돈이 더 위험해졌다. 세뱃돈 등 물리적인 새 돈은 잘 안 쓴다. 심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돈의 성향은 거의 비슷하더라. 악플을 많이 단 사람들은 손을 엄청 씻는다고 하더라. 욕을 많이 하는 사람들 치약을 더 많이 짠다더라. 나쁜 방법으로 번 돈은 낭비가 심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므로 어서, 더 많이 써버린다. 이런 투기군들의 경향을 이용한 곳이 카지노이다."

가끔, 머리 잘 굴려서 도박도 좀 해봤으면 하지만 이것 또한 내 취향이 아니다. 도박장에 앉혀두면 나는 아마 정신질환을 나타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재미가 없더라.

 

"투자의 고수가 되려면 복기가 꼭 필요하다. 사람들, 의외로 복기하지 않는다.(나도 그렇다.) 프로 바둑 기사 9단까지 가는 사람은 꼭 승리한 회의 내용까지 복기한다. 예상외로 패한 사람, 즉 9단까지 오르지 못한 채 멈춤 하는 이들은 복기하지 않더라. 최상의 0.1퍼센트는 성과가 좋지 않으면 꼭, 이를 악물고 복기한다. 시험 성적도 그렇다. 90 예상에 85가 나온 사람은 꼭 복기한다. 60 예상에 90 나오면 거의 복기하지 않는다. '개이득'이라고 외치고 끝난다. 다음 시험에는 다시 50, 혹은 60점이겠지. 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뜻밖에 이익을 본 이들은 운으로, 다른 요인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예상외 성과가 잘 나온 자녀들에게 '잘했어'가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했어?'라고 물으라."

나도 복기를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주식에. ㅋ. 하긴, 어떤 이들을 보면 매일 주식 일기를 쓰는 이들도 있더라. 나는 왜, 경제 분야에의 활동이 재미있지 않을까.

 

부자 될 사람의 성향은? 성공한 기업가의 성향은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존재한다. 내향적인 이가 사회적 품성을 잘 개발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 즉 후천적 부자가 더 크게 성공한다. 우호성은 높지 않고 개방성이 높은 사람이 성공한다. 당신에게 사람 참 좋다고 수시로 다독이는 사람을 좋아하지 말아라.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내가 모른 것을 알려주는 사람의 의견에 집중하라.

 

"우호성은 友好性, agreeableness이다. 다른 사람과 우선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지속하여 마음의 평온을 취할 수 있다면 좋다는 식의 대인관계를 지향하는 것. 순응자이다."

우호성의 성향인 자는 미움받지 않으려는 성향을 내보인다. 타인으로부터 사람이 좋다는 말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우리가 남이가 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즉 우호성이 높은 사람은 안도함과 뿌듯함, 기특함이라는, 남이 나를 평가해 주는 기분에 그만 넘어가 자기를 향한 것의 진솔함을 추구하질 못할 수가 있단다. 즉 우호적이라는 것은 자칫. 자기 합리화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이도 맞다. 나도 딱 그렇다. 

 

" 개방성은 開放性, openness, patency, persistence. 오픈. 문을 여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개방성은 후천성이 강하다. 우호성의 적당량에 개방성을 알차게 더해야 한다. 안도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우호성이 높다. 우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진중한 행복을 더 느끼면서 산다. 우호성에 치중한 이는 남의 삶을 살 경향이 있다."

동의한다. 개방성을 의학적인 방향에서 논한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명백함과 개방성을 말하더라. 정신과 쪽의 글이었던 듯싶다. 우호적인 성향의 사람이 배신을 당하면 도무지 주체하지를 못하는데 개방적인 사람은 차라리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제 앞길을 잘 닦아간다는 뜻이었다. 나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가끔 이런 나를 '바보야'라고 부르면서 나를 달래곤 한다.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더라.

 

요즘 세대들과 관계에 대해서 묻자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관계가 스트레스이다. 모바일에 익숙할수록 대면을 힘들어한다. 문자 대신에 전화질하는 이들은 싫다. 진행자인 삼 프로의 이프로 이진우가 말한다.

'전화로 정중하게 하라. 문자질은 결례이다. 감히 어디 문자로 해?'

턱턱, 문자(질)로 소통하려는 자들에게(아마 대부분 젊은 세대들이리라.)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아마 그는 진행상 웃자고 말한 듯.)

교수님이 답하신다. 현대는, 지금은 전화는 결례이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꿔졌다. 적응하라. 진짜 결례는 전화이다. 내가 외친다.

'그렇담 편지질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되나요?'

이것 또한 내 생각 물음이다. 다시 교수님이 외치신다.

'현대인은, 특히 mz 세대는 대면과 전화는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 이도 내 생각)'

아니, 그렇담 나는 진정 mz네? 사실 나도 그렇다. 지극히 비대면이 좋다. 한데 가끔은 '편지질'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라는 존재는 뭐람?

 

강의가 이어진다. 1980년대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TV 손자병법'을 보라. 직장 갑질 5분에 한 번씩, 성희롱 관련 언어질 또한 거침없다. 우리, 그 장면들 곳곳마다 '하하하하' 통쾌한 웃음을 내던지지 않았더냐. 한데 그런 상황을 요즘 젊은이들은 안 보고 혹은 못 보고 자랐다. 그 프로그램을 재현한다면 현 2, 30대 직장인이 그럴 거다.

"어디서 온 외계인들?'

하나 돌아보면 상황이 또 이렇다. 당시 어른들은 외계인이었다. 79학번이 81학번을 개탄한다. 그리고 89학번은 81학번을 보고 외계인들 같다고들 했다. 그럼, 또 89학번을 보고 79학번이 그랬다. 이런 이상한. 곧 망할 세상이라고. 위아래도 모르는 '작것들(내가 쓴 표현. '잡것들'의 방언)이야.'라고. 이제, 현 젊은이들에게는 당시 2, 30대가 외계인이다. 외계인들이 이미 지구인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고 살아있는 격이다. 부디, '우리 때'를 말하려는 이들이여 다음을 지키라. 젊은이들의 심정은 다음과 같다.

"어른들이시여, 부디 내 사정을 물어보지 말고 도움만 달라."

맞다. 천 번 만 번 맞다. 

 

상황을 말하지 말라.

"그래, 몇 시간이면 가능해? 다섯 시간? 좋아. 다섯 시간 안에 끝내고 와. 사유는 안 궁금해. 나는 바빠. 바쁘니까 어서 갔다가 와."

"무슨 일이야? 나한체 말해 봐. 힘든 것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를 해 봐."

라고 말하지 말라. 위는 도구적 지지이다. 아래는 정서적 지지이다. 더는 척하면서, 정서적 지지를 하지 말라. 도울 수도 없으면서 들어주려고 하지 말라. 서로 감당이 되질 않는다. 그러지들 말라.

'들어주지도 못하면서 뭘 저리 묻는담?' - 이것도 내가 만든 문장.

젊은이들의 심정이다. 늙은 나도 그렇더라. 소위 윗사람들이여. 묻지 말라. 그냥 알았다고들 해라. 물론 책임은 당사자에게.

 

뜻하지 않게 알찬 시간이었다. 너무 자주 등장하는 듯싶은 교수들이 언짢았다. 사실 어지간히 살아보니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래서, 특히 '심리학' 분야는 더더욱 별 용한 배움이 없다고 여겼다. 더 산 내가 사람 심리는 교수님보다 많이 알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데 재미있게 들은 강의였다. 공부했다는 맛을 확실하게 경험했던 강의였다. 진정 진지하게 살아야겠다. 그것이 오늘 강의의 나를 향한 메시지였다. 잘 좀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