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힘을 여럿, 고리 지어 모아보자.
내게 저장되어있는 힘이 여럿, 고리 지어 떠오른다. 아득한 옛날 일들이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고 확신했다. 소담스러운 큰길을 당차게 건널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신만만했다.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바람이 불더라도 꿋꿋하게 내 힘을 펼칠 곳이 마련되어 있다고 여겼다. 어떤 일이든지, 당차게 해내어 당당하게 세상 앞에 우뚝 설 수 있으려니 했다.
오늘, 올해 1월 마지막 날의 하루 전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나답게 하던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딱 한 가지 일에만 집착해야 했다. 사람을 상대로 대응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2주 전부터 전화를 넣어 왔다. 내게 대뜸 '당신네 탓'이라는 말을 다짜고짜로 퍼부었다. 태생이 조용한 나는 평소 하던 그대로 조용히 답했다.
"무슨 일인지요. 조용, 조용한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 ~"
"블라 블라 블라 블라 탈칵!"
위 두 문장 중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자는 나의 문장 앞에 상대는 이미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나에게 한 바탕 퍼부은 후였다. 나의 문장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내놓은 문장의 중간쯤 위에서 제 생각대로의 문장을 시끄럽게, 퍽, 내던졌다. 내 문장은 무덤 속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송두리째 덮어졌다.
"블라 블라 블라 블라 블라 블라~, ~, ~ 탈칵!"
"어, ~."
라고 나의 말을 내놓으려는 순간 상대는 전화를 끊었다.
"있잖아요. 사~사장님(상대방에 대한 호칭에서 멈칫!). 하고 싶으신 말씀만 하고 끊으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요~? 아파서요? 병원에를 다녀요."
"어쨌든 그렇다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말씀만 하고 끊으시면 안 되지요."
그 후 계속되는 전화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1월 16일쯤에 시작된 일일 것이다. 살아생전 이런 식의 대화는 처음이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두 눈동자가 부들거렸다. 후각이며 청각이 두두 둥둥 규칙 없이 흔들렸다. 조금 찾으려던 미감이 그만 정상 곡선을 탔다가는 팽개침을 당했다. 이런 맛 저런 맛, 맛의 분류도 제대로 취할 수 없었다. 우 씨, 조금 살아보자 했는데 이게 뭐람. ##$#^^@#%^^@#^$^@^@#.......
짜증이라는 것이 몸에 주저앉으니 의욕 상실로 이어졌다. 하고 싶었던 많은 일이 발길에 치이면서 짓밟혔다. 이 생생한 겨울 냄새의 날들을 죽도록 온몸 움직여서 생기 도톰해져야 하는데 몸도 마음도, 주글주글 이지러졌다. 올겨울에 하려고 했던 목표가 흔적도 없어졌다. 가까스로 한숨 편안하게 쉴 수만 있다면 하는 소원이 생겼다. 잠 한숨 곱게 자고 싶은 날이 언제인가 싶어졌다.
멈춘다. 위에서 쓰던 이야기는. 이곳에서 멈추질 않으면 쌍욕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사람일까 하는 사람을 등장시켜야 하므로. 그러나 언젠가는 꼭 풀리라.
뭉쳐질 힘이 있어 아직 다행이다. 오늘은 용케, 그래도 움직이자는 우격다짐도 했다. 나를 향해서 하소연했다. 아직 처리되지 않은 그 일을 앞에 두고 오늘은 스스로 돌아보기도 했다. 그래, 살자, 살아야 한다. 내 남은 힘을 한 데 합쳐서 한 덩어리의 어떤 힘이 되게 하자. 일부러 걷고 일부러 움직였다. 끝없이 걸었다. 실내를. 거실을, 안방을, 아이의 방을, 부엌을, 책방을, 베란다를. 쉴 틈 없이 걷고 여백 없이 발자국을 남겼다.
살았다 싶게 오늘 하루를 살고자 하며내가 지닌 생명의 본류 앞에 감사의 염을 표했다. 하루를 살면서 듣고 맺었던 여러 가지 생각, 그리고 힘 따위가 하나로 크게 모일 수 있었기에 오늘 하루도 다행이었다. 그다지 환한 빛의 오늘은 아닐지라도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내가 참 기특하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려고 애썼다. 남은 힘을 한데 모아 굳게 단결하게 하자고 했다. 고민, 울화, 슬픔 따위가 마음속에 고요히 스며들어 생을 산다.
생을 산다. 살자. 어찌어찌해서 방금 진행되고 있는 지저분한 일을 우선멈춤 했다. 하염없이 가라앉는 생을 질질 끌고 주저앉으려는데 열려 있던 네이버 책 소개 칸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제목이 내 뒤통수를 친다. 독서를 좀 해야겠구나. 어젯밤에는 커다란 감동으로 안고 왔던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도 읽히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이 책을 꼭 마저 읽고 잠의 나라로 진입하련다. 사람이 무섭더라. 돈도 무섭더라. 돈도, 사람도 징그럽더라. 증상맞은 인간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사건을 구체성을 묵과한 채 글로 풀어내자니 어설프다. 어쨌든 글로라도 풀어내야만 내가 오늘 밤잠을 잘 수 있겠다. 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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