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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자, 자, 좀 차분해지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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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좀 차분해지자고요.

 

 

 

인생사 그라데이션. 그라데이션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자, 자, 좀 차분해지자고요."

나 자신에게 읊어대는 문장이다. 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 정신없이 보냈다. 이런저런 행사들이 많았다. 오늘에야 한끝 맺음을 하는 마무리가 있었다. 새벽 여섯 시 출근길에 올라 오늘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조퇴를 할 수 있었는데 참았다. 해야 할 중요 업무를 끝마치고 나니 몸이 여유를 부렸다. 

 

 

혓바늘이 돋고 입천장이 우둘투둘,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가 싶었는데 일 처리를 마쳤다고 생각을 하고 나니 이내 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화가 가라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혀에 돋고 입천장에 돋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양 느껴졌다. 세상을 향한 마음 씀씀이가 부드러워졌다.

 

 

남은 오후 시간을 일터 내 공간 정리에 사용하였다. 금요일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몸도 느슨해지고 마음도 살가워졌다. 곁을 지나치는 모든 이들에게, 여러 사물을 향하여 아름다이 눈 인사를 보내는 오후였다.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웠다. 이렇게나 너그럽게 일에 파묻힐 수 있을까 싶게 넉넉한 손놀림의 시간이었다. 

 

 

이 세월(?)을 살아도 늘, 여전히, 지금껏 불안하고, 부실하고, 부스럼딱지가 곳곳이다. 내내 해오던 일인데도 다시금 새롭다. 어제까지 막힘없이 해낼 것 같았던 것이 오늘 갑자기 틈이 보인다? 그 틈에 무엇인가 숨겨 가볍게 무마시키곤 했던 일들이 오늘은 느닷없이 어찌 해결해 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를 어떡하나.' 왜 늘 이런 식의 반복인가'에서 멈추면 호흡이 불규칙해진다. 신체에 이는 원만하지 못함은 정서적인 불안정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영 아닐 것 같던 것이 어제 오후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뜻밖에 술술, 부조화의 일그러짐이 용맹 정진으로 덤벼서 해낸 그라데이션 효과에 의해 얼버무려졌다. 일과 나 사이에 화해가 이어졌다. 순화된 정신 운동의 힘이 육체의 질서로 이어지듯이 사이사이 진행하던 일이 참 깔끔하게 연결되어 끝을 맺었다.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고 나 스스로 믿음직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군더더기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부스러기들마저 조화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대중성과 연결된 행사이기도 했다. 관객의 입장이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해줬다. 수고했다고. 최종 마무리이자 발표일이었던 오늘, 나는 내내 스스로 세뇌하기에 바빴다.

"괜찮아, 이것 아무것도 아냐. 넌, 더 큰 무대가 필요한 사람이야. 그렇다면 이쯤 거볍게, 손쉽게, 부담 없이 치러내야지. 잘할 수 있어."

물론 중간중간 다음 문장도 얼굴을 들이밀곤 했다.

"아이고, 이 나이 되도록 왜 이러니? 어디로 나이를 먹었니, 왜 이리 사니. 왜 이리 통이 작나, 어쩜 이리 소심하니, 어쩌자고 이리 평생을 두 근 반, 세 근 반으로 사는 것인가."

 

 

발표 시간에 동료들로부터,

'좀 더 천천히"

'좀 더 차분하게'

등의 반응을 눈빛으로 엿들을 수 있었다. 이마저 얼른 파악하여 수정하여 진행할 수 있었으니 잘한 거다. 아주 잘한 거다. 

 

 

그러나 일터 내 공간 정리를 하염없이 해냈더니 어쨌든 무슨 일을 끝내면 으레 따르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를 알기라도 한 듯 만나야만 하는 이로부터 전화가 와 있었다. 바삐 약속을 잡아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오후 일정 시각 안에 그 공간에 도착해야만 입실이 허용되는 브런치 가게였다. 뷰가 괜찮고 나의 퇴근 시각 이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그곳에서 사람 만나는 것을 즐겨한다. 오후 8시면 문을 닫는 것이 서운하지만 두세 시간은 고요한 공간에서 우리만의 대화를 할 수 있어 참 괜찮은 곳이다. 

 

 

대중없이 주문한 음식은 네 사람은 먹어야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둘이서 거의 다 먹었다. 이는 의식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언어들과 내용이 필요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하기보다는 애당초 지니고 있던 공허함의 무게가 기계로 풍선을 불 때 커지는 부피처럼 거침없이 비대해졌다. 8시에 문을 닫는 가게 규칙이 차라리 고마웠다. 분명 절친이라고들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들의 대화는 전혀 정제할 필요가 없는 인간 일반적인 사생활 전형이었다. 먹고, 자고, 싸고, 일어나고, 일하고, 그리고 숨 쉬는 정도의 내용. 내 이야기, 내 삶의 고뇌를 말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나는 절친과의 만남도 이렇다. 슬펐다. 

 

 

어서 와서 자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브런치 가게에 있는 시각 내내 그랬다. 블로그 일기를 쓰는 것조차 그냥 까먹은 것으로 하고 자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굳어지는 찰나 내게 외쳤다.

"이런 날, 왜 하필 이런 날, 이런 만남을 가진 것인지. 이런 날은 차라리 집에 일찍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지 않았는지. 욕조 따뜻한 물에 몸 담그고 시 한 편, 소설 한 편을 읽는 것이 낫지 않았는지. 심장 뒤틀리게 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낫지 않았는지."

"자, 자, 자, 좀 더 차분해지자고요."

 

 

김경호의 'ESCAPE'를 읽으면서 오늘 블로그 일기를 썼다. 힘들었다. 오늘은 만사 제쳐두고 그만 자고 싶었다. 씻지도 않고. 그러나 오늘은 무대에 서야 해서 BB를 발랐다. 클렌징 크림을 발라 얼굴에 덧붙여진 BB를 지워야 했고 폼 클렌징 크림으로 깨끗이 세안을 해야 했다. 어서 푹 자고 싶다. 내일 아침 10시까지 눈 뜨지 않고 자고 싶다. 누구, 부디 내일 아침, 나를 깨우지 말라.(고 했더니 부디 제발 좀 조용히 자라고 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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