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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내 손톱은 왜 이리도 잘 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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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톱은 왜 이리도 잘 자랄까. 

 

어제 이곳 블로그에 올린 글 '알고리즘이여! 깜짝이야.'에서 다음을 수정한다.

'비너스를 닮은 우리 오빠'라니, 왜 ‘비너스’라는 낱말을 썼을까. ‘다비드’ 대신에. 아마 내 생각 속에는 ‘다비드’를 남 대표 미인(잘생긴 사람), ‘비너스’를 여 대표 미인(잘생긴 사람)으로 굳어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글의 메뉴 ‘수정’을 열어서 바로 고칠 수 없는 상황이 참 한심스럽다. 어쨌든 수정한다. ‘비너스를 닮은 우리 오빠’가 아니고 ‘다비드를 닮은 우리 오빠’로!

 

잠이 오지 않아 이 글 저 글을 읽다가 그만 내 블로그의 글을 읽고 말았네. 이런, 어제 글을 읽었더니, 세상에나. 

 

 

 

 

내 손은 늘 노동하는 손이고 싶다. 이런 상태의 손이 아름답다. - 손톱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2주가 다 되어간다. 올해 왜 이런가 싶게 정수리까지 치솟아 걱정해야 할 일이 생긴다. 연말에서 이어진 남녀 건강, 특히 남자의 건강 문제가 '다행이다' 싶게 풀려 액땜했다 싶었는데 구정 전에 일이 또 하나 터졌다. 몇 년 전 만들어놓은 일이 한 곳 터졌는데 당시 '그거, 하지 마'라고 했던 남자는 남의 불구경 보듯 한다.' 으씨, 그래 봐. 두고 보자.'라고 하면서도 참 서운하다. 물론 나도 전혀 의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심 또 소심하여 어찌 되겠지 하고서 쉽게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이다. 나 혼자의 일이면 백번 천번 그러려니 하는데 사람이 연결된 일이어서 몹시 괴롭다. 끈덕지게 물고 늘어진다. 하긴 그러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연한 일이겠다 치고 어서 넘기고 싶다.(언제 이에 대해 몇 부 작으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잘 풀리면 말이다.)

 

 

이 심사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꼭 해야 할 일은 때를 넘기지 않고 일어난다. 배고픈 것도 감지되지 않은데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다. 손톱이다. 발톱은 아무리 길어도 귀찮다는 생각이 없는데 손톱은 조금만 길어져도 걸린다. 손톱이 깎을 시기를 많이 넘기면 나는 세수할 때 꼭 얼굴이나 목에 피를 보이게 하는 상처를 내곤 한다. 네일 아트를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어제 깎은 듯싶은데 금세 길이의 잉여분이 느껴진다. 벌써 깎을 때가 되었나 싶어 눈 가까이 두 손을 바짝 올려서 손가락을 살펴보면 가닥가닥 열 손가락이 자기 생명의 힘을 길이로 자랑하고 있다. 녀석들, 귀여운 녀석들. 복잡한 심사를 조금 가벼이 할 양으로 소리가 나도록 각 손가락을 꼬집어본다. 고마운 것들. 엄지, 검지, 중지, 평지, 새끼. 네 번째 손가락을 평지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검색하기가 귀찮다. 내일 찾아보기로 하고. 다시 한번 한 가락씩 쓰다듬어 본다. 엄지, 집게, 가운데, 반지. 새끼. 엄지와 새끼는 늘 엄지와 새끼다.

 

 

엄지. '무지' 혹은 '모지'라고도 한단다. 듬직하다. 뭉뚝한 몸뚱이를 살짝 틀어서 남은 네 아이들을 비스듬히 바라본다. 네 동생들을 자상하게 살펴보고 있다. 네 녀석들 자잘자잘, 아무리 나대도 지긋이 바라보면서 관조한다. 가끔 선비의 몸 추임새를 느릿하게 춤추곤 한다. 사방을 조용히 살핀다. 고요한 모습으로 각각의 가락을 관찰하면서 부드러운 눈을 간간이 움직인다. 제 할 일이 생기면 느긋하게 나아가 수행한다. 든든한 맏이이다. 엄지는 첫마디뼈와 끝마디뼈만 있다. 중간마디뼈가 없다. 다른 손가락들에 비해 하나를 덜 지녔는데도 제 할 일을 건너뛰지 않는다. 덤벙거리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해내는 모습이 참 고맙다.

 

 

'손가락'은 좁은 의미로 엄지를 제외한 네 가락을 말한다. 한 개의 손허리뼈와 세 개의 손가락뼈로 되어 있다. 첫마디뼈, 중간마디뼈, 끝마디뼈로 나뉜다. 손허리뼈와 손가락뼈 사이에는 손허리손가락관절이 있다. 손가락뼈 사이에는 먼 쪽(몸쪽) 손가락뼈 사이 관절이 있다. 손가락뼈의 가장 끝부분에는 손톱이 존재한다.

 

 

손톱도 광합성을 한다? 그런단다. 햇빛 바라기의 양이 손톱과 발톱이 자라는 빠르기며 상태를 좌우한단다. 손톱이 발톱보다 약 두서너 배가 빨리 자란단다. 손발톱의 생장에는 계절과 시기, 나이, 생활 습관이나 영양 상태와 질병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데 낮과 여름에 더 잘 자란다고 한다. 어허, 여름과 낮이네. 그렇담 그것은 햇빛의 양이겠다. 어릴 적에 더 많이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손발톱도 늙는단다. 물론이지. 살아있는 몸체에 붙어 있으니 지당한 일일 테지.

 

 

피아니스트의 손톱은 유난히 길고 이쁘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중지가 더 자란다는 것도 정설이다. 자극의 정도에 따라 손톱의 성장도 좌우된다. 자극은 세포 분열을 활발하게 하고 이는 혈류량을 증대시킨단다. 중지와 평소 더 많이 사용하는 쪽의 손톱이 더 길게 자란단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오른손의 손톱이 더 빨리 자라겠다. 글쎄. 꼭 양쪽 손톱을 함께 깎는 버릇이 있어 이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확인을 더 잘해야 하지 않나? 같이 자르니까 말이다. 관찰해야지. 늘 샅샅이 관찰하는 습관이 예술가가 지녀야 할 습관이라 하지 않나. 아마추어 예술가라도 되려면 말이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 왼손잡이는 왼손, 손가락 중에서는 가장 긴 중지가 가장 빨리 자란다는 게 근거가 된다. 또 피아니스트처럼 손처럼 컴퓨터 키보드나 스마트폰의 사용 빈도도 손톱 성장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그렇다면, 손톱이 자란다는 것은 결국, 혈액순환이 손발톱의 길이 자라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혈액순환이 잘 될 때 우리 신체의 곳곳이 잘 자란다고 하니까. 원활한 혈액순환이면 건강한 색깔과 건강한 상태로 손톱이 자라겠다. 가끔 선전지 뉴스처럼 떠도는 '손톱의 상태로 건강 상태 파악하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손톱은 표피세포가 각질처럼 변한 피부의 또 다른 모습이란다. 피부가 딱딱하게 굳은 것이다. 하얀색‘조반월’이 있고 조반월 아래에 있는 ‘조근’에서는 반복적인 세포 분열이 일어난단다. 분열된 세포는 죽어 딱딱해지고 밀려나면서 손·발톱으로 자란단다. 세포 분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결국 생명 활동의 뚜렷한 징조이다. 잘라내고 또 잘라내도 계속 자라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명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세포 분열은 계속될 것이다. 세포 분열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자랄 것이다.

 

 

지난달 말부터 심기 불편한 일이 계속 이어지는 지금 이 손톱도 문제더라. 문제는 무슨, 사실 손톱의 고마움을 잘 알지 않는가. 엄지를 포함한 열 손가락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손톱 덕분이다. 손가락 끝을 다소곳이 모아주는 것이 손톱이다. 손톱이 있어 가닥가닥 제 혼자인 것들을 둥그스름하게 모이게 한다. 각 손가락 끝이 풀어 헤쳐진 사고의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더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끔찍했다. 손톱이 각각의 생명줄을 한데 모은다. 사람들이 하는 온갖 일에 아낌없이 자기 할 일로 넘나들게 한다. 일이 있다, 내 일이다 싶으면 여덟 손가락과 두 엄지가 딱딱, 규칙에 맞게 자기 몸을 움직인다. 아낌없이 활동한다. 손톱이 있어 가능하다.

 

 

그런데 뭘? 손톱이 어쩐다고? 글쎄 너무 빨리 자라서 귀찮다는 거다.

"아이고나, 손톱 깎는 것 귀찮아서 어찌 살래?"

다 자란 막내 딸년이 엄마에게 말했다. 녹아내릴 것 같은 손발 짊어지고 사시는 농사꾼 엄마를 빤히 알면서도 엄마 무릎에 누워 두 손 바짝 엄마 눈앞에 세우고서 외쳤다.

"엄마, 내 손톱 좀 깎아줘. 잉?"

"다 큰 것이 뭔 일이다냐?"

"그냥 깎아줘. 깎아줘. 깎아줘요."

 

 

막내딸이라고 가끔, 아주 가끔 어리광 섞어 말을 하기도 했다. 정말로 아주 가끔.

"아이, 지 손톱도 깎기 싫을 정도로 게을러서 어찌 산다냐. 어찌할 거나, 어째."

"그니까 공부시키지 말고 일 좀 시키지 그랬어? 농사꾼 딸이라도 호미 한 번 잡아본 적이 없으니 이건 순전히 부모가 잘 못 키운 거요."

"고마운지 알어라. 네 아부지 어릴 적에 그렇게도 공부가 하고 싶더란다. 니들 할아부지가 공부 안 시키고 일만 시켜싼께, 어디로 도망가 불까 하고 있었더란다. 근디 니들 할아부지 금방 숨넘어가 뿌러드란다. 급사를 하신 거다. 니들 아비 '조실부'하고 가장이 된 거여. 나이 스물도 안 되어서 말이야. 그래, 어찌어찌 금방 내가 시집오게 되었는디, 니들 서울 작은 아부지가 두 살이더라야. 니들 아부지 니들 공부시키려고 산 사람이다. 그리 알아라. 공부시키지 말고 일을 시켜? 꿈에도 그런 말 말어라. 니들 아부지 들으면 다리 몽둥이를 분지르고 싶을 거다."

 

 

손톱을 볼 때마다, 벌써 다 자란 내 손톱을 손톱깎이로 잘라낼 때마다, 내 손톱이 내게 선사하는 '여유'라 생각하자고 한다. 오늘, 또 이렇게나 빨리 자랐냐는 생각에 불쑥 짜증이 났는데 주저앉아 토깍 토깍 깎아내고 보니 마음이 참 차분해지더라니. 어제는 해결되었느니 싶던 것이 그만 끝나지 않아 또 불면이어야 해서 생긴 어지러움의 강도가 약해졌다. 오늘 오전에는 진심, 꼭 해결되었으려니 했던 것을 오후 들어 또 붙잡고 질질거리는 이들이 있어 마음 산만한 것도 조금은 스러지더라.

 

 

깎아내니 옅어지더라. 사라져야 할 것이 희미해지니 희망이 있는 거다. 그러리라고 생각하자. 화요일까지 미뤄졌는데 화요일에는 판결이 나리라. 그리고 나, 훨훨 날리라. 바닷가 노을 아름다운 곳으로 가서 왜 이런 일 정도에 힘들어하는 어리숙한 인간으로 살게 되었느냐고 노을을 좀 붙잡고 펑펑 울던지. 한 이틀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 생기는 말끔한 정신 상태로 종일 영화를 본다든지. 지금 읽고 있는 시인 김소연의 산문집을 마저 읽고 그녀의 시집 속 '수학자의 아침'을 손글씨로 베껴본다는지. 아님, 밑줄 좍좍 그으면서 내 소녀기에 읽었던 시인 김승희의 산문집을 꺼내서 먼지 털털 털고 통곡을 하면서 다시 읽는다든지.

 

 

오늘, 우리 집에서 바라본 노을은 이랬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드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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