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남으로는~
내 간암으로는?
1. 내 가남으로는
2. 내 간암으로는
3. 내 간음으로는
그리고
4. 내 가늠으로는
문제를 출제해 본다. 위 넷에서 우리 엄마는 어느 것을 사용하셨을까요?
1번이다. 당연지사 위 넷을 읽으시면서 또 느끼셨을 것이다. 표준어이자 기본형은 4번이라는 것을. 2번은 잘 아실 테니 그만 넘기고. 3번은 해서는 안 될 일의 뜻이 담긴 낱말이다. 우리 엄마는 늘 바쁜 일상 속 '내 가남으로는'을 하루에 열댓 번씩은 하셨다.
대중을, 대가족을 살리느라 바쁘셨던 우리 엄마는 사실 모든 일을 늘 대충 하셨다. '대충'이라니. 저 위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 눈 동그랗게 뜨고 내려오실라. 이것이 뭔 일이다냐. 그렇게도 이것저것 해감서 먹여 살려놨더니 '대충'이어야? 우리 어머니 노발대발~, '노발대발'이라고 표현하려다 보니 이것도 아니다.
우리 엄마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셨다. 않으실 것일까, 못하신 것일까. 그저 수긍 혹은 순응하고 사셨다. 워낙 큰 바닥으로 나가 노시는 아버지의 그릇이 크게 보이셨을까? 내 어머니는 '결정'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셨다. 특히 커다란 굴레를 지닌 일들은 더욱 그러셨다.
새벽이면 두 분의 말씀이 온 집안에 울렸다. 그것은 아들, 딸들에게 어서 일어나 아침 공부를 시작하라는 기호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굳어지고 생활화된 싸인. 두 분의 말씀은 대부분 새날에 해야 할 일 이야기였는데 어머니는 줄곧 아버지의 말씀에 "예, 예, 예"로 일관하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저기 자사리댁 논 위에 우리 논 너 마지기 쟁기질을 해야 하는디 거, 개똥이네 아들이 올 것이여. 새것 잘 차리고 막걸리 큰 것 한 병 넣어서. 거, 일 참 잘해. 잘 대접해야 다음에 또 얼른 와서 해주지. 우리는 손이 없으니까 일꾼들 잘 모셔야 해."
"알았어라우. 당연하지요. 나갔다가 언제나 들어오시요?"
"나, 오늘도 늦어. 읍에 나가서 면 일 좀 보고. 거, 우리면 공사 좀 어서 진척시켜 달라고 읍에 맥고 건설사 사장도 좀 만나서 술 한 잔도 해야 하고. 기다리덜 말고."
"알았어요."
마무리 대답과 동시에 어머니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벌써 부엌에서는 쌀이 씻어져서 솥단지 아래 불이 살라지고 있었다. 읍내에 나가실 아버지를 위한, 아침 일찍 논과 밭을 둘러보러 가실 큰 일꾼 호동아재의 아침 준비를 위한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들의 아침도 함께 거행되고 우리는 조불조불 말 많은 동생의 힘에 실려 학교로 내달리곤 했다.
내 어머니가 하시는 아침 상차림 위에 오를 국을 끓일 때면 어머니는 그러셨다. 부엌데기 열일곱 살 일순이가 국솥을 열어 국간장을 풀어 간을 마친 후 말한다.
"여그 국 간 좀 봐줘요."
한 술 뜨신 듯 반 술 뜨신 듯 어정쩡한 자세로, 즉 어서 또 다른 곳으로 눈과 손과 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제시하면서 말씀하셨다.
"내 가남으로는 된 것 같은디~"
일순이는 꼭 토를 달았다.
"가남이든지 가람이든지 제대로 말 좀 해주시지 그라요. 됐으면 됐다, 안 됐으면 더 해 봐라. 딱 부러지게 가닥을 쳐주셔야지 꼭 어중간하게 말씀하시요 이. 참 거 애간장이 녹을 일이구만요."
이미 어머니는 저 먼 거리에서 더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셨다.
내 어머니의 말씀이셨던 '가남'의 표준어는 '가늠', '가늠하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이런 설명이 있다. 그대로 옮긴다.
가늠하다.
동사
1.
목표나 기준에 맞고 안 맞음을 헤아려 보다.
그는 한 눈을 감고 다른 한 눈으로 목표물을 가늠해 보았다.
2.
사물을 어림잡아 헤아리다.
전봇대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겠니?
내 어머니, 온갖 일 가남하느라 평생 정신없이 사셨던 내 어머니. 그곳에서는 가남해야 하는 일이 없어 심심하실라. 온갖 일 '가남하는' 것을 대부분 엄마에게 맡기면서 사셨던 내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넓고 큰 고을에 가시느라 또 늘 바쁘신지. 부디 그곳에서는 가남해야 할 모든 일을 아버지의 몫으로 받아들이시면서 계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