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놓쳤다. 라면을 먹고 말았다.
일터 바깥 기관이 연계된 일 처리가 예약된 날이었다. 다른 날보다 게으름을 덜 피우면서 몸을 세웠다. 출발의 첫 걸음을 내디뎠으면 죽죽, 어서 나아가야 했는데 이내 몸이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야지, 어서 가야지, 뇌는 외치는데 몸이 뒤따르지를 못한 채 굼떴다. 분명 설 연휴의 몸과 마음이 편했던 날을 지내면서 육신이 둔해졌다. 발등 위에 덜 다져진 쇳덩이를 얹어 걸음하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체중계에 몸을 실어 봐야겠다.
게으르면 밥도 못 찾아 먹는다고 외치시던, 어릴 적 할머니의 말씀이 딱 맞다. 미리 준비해둬야 할 것을 해놓지 않았다.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빠진 것이 있다. 어제 해놓으려니 했으나 잊고 말았다. 내가 준비한 것을 들춰보던 한 사람이 상기시켜 줘서야 깨달았다. 자꾸 왜 이러나. 어제가 아니라 진즉 해 둬야 했다. 으레 이 시기에 처리해야 할 일이다. 대체 왜 이럴까.
점심시간을 놓쳤다. 필요한 내용을 마저 해두지 못한 것에 화가 난 것보다 늘 이런 일을 반복하는 나의 생활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나의 현재 이 지경이다. 고치자, 고치자고 하면서도 결국 도로아미타불이다. 죽은 다음에야 바뀔까. 천지개벽 이후에야 가능한 것일까. 어쩌자고 매해 반복하는 것일까.
급기야 한탄을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해서 선배 언니에게 전화를 넣었다. 심드렁한 나의 목소리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나 보다. 또 뭔 일이냐며 전화를 받더니 내 시무룩한 토로에 답을 준다. 자기 태생을 확실히 밝히는 어투와 목소리가 미리 나를 부드럽게 달랜다.
"괜찮다. 그것 좀 그랬다고 어쩐디야. 아무렇지도 않다. 살다 보면 그렇지야. 안 그런 사람 있나 봐라. 반성하는 것을 보니 적어 정신줄은 단단히 잡고 살고 있다 싶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문제이지 너는 너 자신을 너무나 자세하고 알고 있더라.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 않냐? 적당히 혀어! 사람 사는 것이 가장 모르는 것이 자기 자신이어야. 너 스스로 알고 있으니 됐다야. 끊는다. 점심은 먹었음?"
라면을 먹었다. '간헐적 단식'으로 아침을 지나쳤으니 점심은 꼭 먹어야 한다. 일종의 의무감이다. 점심까지 건너뛰면 저녁에 과식이 지나치다. 한없이 먹게 된다. 배가 터지도록 집어넣고는 후회막심일 것이 빤하다. 점심을 먹자. 둘러보니 라면이 있다. 유통기한을 살핀다. 지난해에 사둔 것이니 어서 먹어야 한다. 라면은 유통기한이 짧더라. 라면이 내 내장에 닿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선포를 받은 지 몇 년 되었다. 내 몸 안에 강력한 힘으로 면역력을 사수하고 있는 '산'을 짓누른다는, 이 독한 음식이 왜 유통기한이 짧을까. 마구마구 길어야 하는데. 일단 유통기한을 핑계 삼아 꼭 먹어두기로 한다. 오늘 점심은 라면이었다.
물을 붓고 조미를 하면서, 나무젓가락으로 원을 그리면서, 풍기는 라면의 향을 외면하고 살아온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지닌 모든 감각을 확 휘어잡는다. 코는 벌써 피노키오의 코 길이보다 더 길쭉해졌다. 혓바닥에서는 날름날름 오감에 통증까지 각오한 육감이 춤을 춘다. 귀도 반짝, 매무새 쫙 빠진 몸매의 관을 세워 길어진 코의 높이를 잰다. 얼마나 황홀하길래 피노키오의 코를 탐낸담? 눈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무지개색의 마지막 색깔인 보라가 약하다면서 보라를 떼어 오겠다고 길을 나선다.
여러 종의 라면이 장에 전시되어 있었다. 무슨 라면을 먹을까. 역류성 식도염 이후 나의 입맛을 되새김질하는 미식 담당의 뇌세포는 길을 잃은 상태였다. 각종 미감을 구분하는 힘이 약해졌다. 이미 체득한 맛의 기준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물과 맛의 관계 설정에도 분석력이 사라졌다. 차라리 오류라면 견딜만했으리라. 단만, 신맛, 짠맛, 쓴맛의 기본형을 구분하여 기억하는 힘도 부재하다. 아침 눈을 뜰 때면 식도 부근을 전전하는, 전날 하루에 먹은 각종 음식물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생각에 진저리가 처질 지경이었다. 주인을 잘못 만난 안쓰러운 혀이자 뇌였다.
어떻게든 배를 좀 채워두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컵라면 끓이기는 괜스레 도전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음식을 외면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먹자고 사는 것인데, 시도해 보자. 물을 바글바글 끓어오르고, 이미 벌려둔 사리에 물을 붓고 수프를 탈탈 털어 넣었다. 두꺼운 책 두 권을 올려뒀다. 내가 즐기곤 하는 '기다리는 마음'의 진정한 의미가 입혀졌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다. 새록새록 공간을 점령해 가는 내음이 라면의 무기였다.
불현듯 잊었던 맛들이 떠올랐다. 가닥가닥 시공을 가득 채우는 냄새가, 내가 알고 있던 라면 고유의 맛을 상기시켰다. 나의 미각 세포와 혀 속에 분포한 말초 신경들, 기타 여타 관련 감각들을 마구 두들겼다. 일으켜 세웠다. 지쳐있던 흐름을 곧게 세워 곤두설 수도 있게 했다. 쉽게 말해서 입이 정상적인 구(口)로 복귀하였다. 미감을 되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내 뇌리에는 단 한 가닥의 미감도 지워지지 않은 채 잠재되어 있었다.
숨어있는 것이 무섭다. 또 한 가지 밀린 일을 마저 하느라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최상의 맛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시각을 붙잡지 못했다. 젓가락을 입에 끌어당겨야 할 시각을 그만 놓쳤다. 그런들 어떠하리. 마침내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난 후 먹기 시작한 컵라면은, 사리들이 지닌 리듬은 수프와의 조화로 '와우~'를 뱉어내게 했다. 맛있었다.
요사이 며칠, 최근 들어 좀 뱃속이 편해졌다 싶어 소화제 복용을 잊곤 했다. 오늘 밤은 꼭 잊지 말아야겠다. 뜨거운 물과 찬물은 7대 3으로 조절한 음양수 한 컵에 직구해 온 소화제를 입 안에 털어 넣어야겠다. 그리고 간절하게, 두 손 비벼 내 육체를 관장하는 육의 신에게 기도한다.
"부디, 오늘, 참지 못하고 입에 넣은 라면의 기운을 고요하게 잠재우소서. 내 내장들이 기꺼이 라면의 성분을 받아들여, 고이 체화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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