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다. 당초 내 계획은 '파자마를 입은 소년들'이었다. 큰 인치의 텔레비젼으로 바꾼 기념이라고 이름 붙인 '영화보기'는 생각 밖의 암초를 만났다. 넷플릭스가 잘 터지지 않은 것인지 새 텔레비젼 리모콘 조절을 제대로 못해서인지 볼륨 조절이 되지 않았다. 인식하지도 못할 독일어와 영어 등의 외국어이지만 소리의 크기로라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어야 했다. 소리는 개미 흙 옮기는 바스락 정도였으니 어찌 그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었겠는가. 다군다나 그들은 온통 '스마트폰'의 가볍디 가벼운 주제에 단순하기 그지 없는 게임이 전부인 생을 살고 있는데.
사실 그들의 수준은 '파자마를 입은 소년들'을 보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았다. 내 욕심이었다. 영화는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지점에서 멈춰야 했다. 어제였다. 제대로 텔레비젼을 다스릴 수 있게 해서 보자 해서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 결국 내 욕심을 내려놓고 영화를 바꿨다. 국제시장. 한 번의 눈 움직이기에서 멈춰도 되는 한국 영화인지라 그들은 좀 더 쉽게 시청을 한다 싶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곧잘 화면의 내용에 반응도 하여 내 참 잘 바꿨다는 생각도 했다. 욕심 좀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 사람들에게 뭘 바라느냐, 그만 해라, 그만 하자.'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였다. 영화 곳곳에서 웃음을 터뜨릴 지점도 있었고 눈 똥그랗게 뜨고 몰입해야 할 곳도 있었다. 점점 영화의 진행이 포물선의 꼭지점을 향해 치다르던 곳부터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 곳들이 곳곳에 마련되었다. 한국 영화는 좀처럼 안 보는 축인 나도 자연, 눈물 콧물 흘릴 부분들이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들은 인지상정 인간이라면 으레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정답이라 여겨졌다. 나도 어둠 속에서 마스크를 붙잡고서 눈물 자국을 손가락으로 찍어내며 영화를 봐야 했다. 그들, 스무명 남짓 사람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딱 하나였다. 심지어 눈물 콧물 쏟는 배우들의 과장 섞인 연기에 비웃음조의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 수가 상당했다. 놀라웠다.
그닥 놀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곧 이어 해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나 보다. 오늘도 그들은 단 한 걸음의 변화가 없었다. 현재 그들의 생활과 똑같은 분위기의 반응을 영화 앞에 내보였다. 징그러웠다. 사람이 징글징글했다. 나는 결국 내뱉었다. '늬들이 어찌 인간이냐!' 물론 혼잣말이었다. 물론 그들은 참 불쌍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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