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브로피의 'Lost ball'
- 영국
작품 제목 'Lost ball'
이런 음흉한! 제목을 읽기 전, 그림만을 보고서 내 음습한 생각은 '음흉'이라는 낱말을 떠올렸다. 이런 불순한. '뒷모습에 담긴 일상의 행복'이라는 소 타이틀을 지닌 이 작품. 작품 소개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 읽는 화가의 이름. ‘데스 브로피’
미술사에 등장하는, 최근 들어 현대사에 이름을 올린 신진작가라고 할지라도 내 눈에는 대부분 낯익어야 정상이다. 그래 봬도 ‘그림 읽기’가 가능하여 온전한 생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다. 일터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변명으로 해대면서 사는 나의 요즈음 생활을 반성한다.
‘엉덩이만 보였다.’
라고 말하면 순 변태로 몰릴까? 걱정 없다.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눈은 제 시야가 감지한 것을 입력하고 느꼈을 뿐이다. 작가가 엉덩이를 크게 그렸다는 거다. 그것도 육감 일백 퍼센트의 야무진 엉덩이 둘. 거창하게 풍만하지는 못하나 제법 그럴싸한 부피가 느껴지는 두 짝의 엉덩이는 여성이리. 다른 한쪽 느슨해진 뼈와 근육이 낯을 먼저 내밀어 크게 빈약하지는 않으나 옆 모양새에 비해 대체로 작다 싶은 또 한 엉덩이는 남성성을 드러낸다.
그림 속 한 바퀴를 돌다 보니 그들이 쥐고 있는 도구가 보인다. 풍요로운 삶을 드러내는 수단의 하나로 급히 필요하다 싶은 저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분명 골프채. 그렇다면 그림 속 엉덩이를 내 앞에 바싹 내밀고 앉아있는 듯한 저 둘은 골프 경기 중인가. 아하, 몸체의 저 위 부분을 보니 머리 쪽에 모자를 썼구나. 그런데 모자 모양으로 봐서 분명 머리카락의 밀도가 높게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 제법 나이가 드신 분들? 각각의 모자 또한 여성성과 남성성이 뚜렷한 것을 보니, 남녀 한 쌍의 부부? 에헴, 불륜이라면 또 어떠냐. 어렵다지만 부부 못지 않게 친한 남여 사이 친구라면 또 어떠랴.
여러 가락의 골프채가 담긴 골프 가방(이것을 전문 용어로 뭐라고 하던데 저게 뭐라더라?)을 세워두고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은 야외 골프장. 참 내, 제법 돈들이 있나 보다. 두 쪽 엉덩이에 담긴 여유를 보니 자유시간이 널찍한 사람들. 연세를 꽤 잡수신 부부 골퍼? 부부 골퍼라고 하면 꽤 전문적이지 싶은데 내 눈에 보이는 저들은 크게 부유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전문가 수준의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닌, 그냥 저냥 골프를 치는 사람들. 결국 서민의 일상 같은데. 하기는 서구 쪽의 골프는 일상이지 않나?
골프채를 꽉 움켜쥐고 지면을 헤집고 있는 듯한 저들은 무엇에 저리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 엉덩이만큼 큰 부피로 살아낸 생을 들이 파면서 돌아보는 것? 지나간 삶을 후비면 혹 떠오를지도 모를, 아직 침잠해 있는 삶의 구슬을 어찌 한 번 발견해 보려는 속셈? 골프채에 온몸을 의지한 채 생을 꼭 잡고 엎드린 두 남녀. 러프에 떨어뜨린 공을 저들은 왜 꼭 저리도 진지하게 찾아야 될까? 분명한 것이 같은 곳을 직시하고 있는 것. 둘은 무엇이 지금 급한 것일까.
이 작품 ‘lost ball’을 그린 데스 브로피는 영국의 할아버지 화가란다. 그가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은퇴 후 40대 초반이 되어서야 정식 화가 수업을 받아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 내가 정년 후 꿈꾸는 삶을 그가 먼저 해냈다는 것. 그의 그림 속 많은 사람이 주로 뒷모습을 보여주고 뭔가 뒤돌아서서 사람을 놀라게 할 듯한 일을 벌이고 있다. 거창한 그림이 아니라 평범하다. 그저 일상의 표정이다. 이런 것이 이 그림을 진지하게 감상하게 했다. 이런 평범함을 그림에 담다니.
데스 브로피, 그의 초기 작품은 유년 시절의 바닷가 그림에 동네 풍경, 골프 연작 등이란다. ‘남자들의 수다’, ‘내가 왕년에’, ‘신문 봤어!’, ‘빗길을 둘이서’, ‘우산 셋이 나란히’ 등 누구나 겪고 사는 일상의 한 컷 한 컷을 그림으로 표현했단다.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일상에서 벌어지는 유쾌, 상쾌한 상황들, 희로애락의 내용들을 담았단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바로 우리, 우리 이웃, 우리 사람들. 바로 나와 너. 그것도 소소한 일상 속 행복의 장면을 붙잡아 그려낸 것. 하여 그의 그림은 곧 내 그림인 듯, 내 생활인 듯 여겨진다는 것. 가끔 거대하지 않을지언정 숭고한 영역에 자리잡았으면 하는 나의 그림도 이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면.
브로피에게 왜 일상이 이렇게나 붙잡고 싶은 순간이 되었을까. 왜 이토록 일상의 소중함을 남기고 싶어 했을까. 그는 소년기부터 여러 해를 영국 왕립 공군으로 살았다고 한다. 입대 후 12년을 세계 곳곳에서 군인으로 살았던 것. 이후 영국에 돌아와서는 경찰이었다. 말하자면 전성기의 생을 그는 피붙이들이 그리웠고 고향이 보고 싶었고 사소한 정으로 사는 일상을 꿈꿨을 것.
그의 그림은 또 대부분 뒷모습이란다. 자기 삶을 차마 정면으로 내놓지 못하는 서민들의 겸손함. 하여 뒷모습이지만 뭔가를 참 열심히 해내고 있음을 무한 상상할 수 있다. 그림 속 인생이란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더라도 나름 긴장감과 어여쁜 리듬으로 풍요로울 것을 예감하게 한다. 뒤이어 자라고 있는 사람들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이’란 것을 보여준다. 한편 치기 어린 일상에서도 쏙 뽑아내어 온 세계에 자랑하고 싶을 정도의 알찬 꿈이 있다는 것. 지극히 적은 양의 한 장면일지라도 나름 내세울, 어떤 희망이 있다는 것 등. 인간사 참 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상의 평면에서도 언제든지 쏙 뽑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음을 그림으로 확인시켜 준다.
그의 그림을 읽는 내내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했는지. 그런 재미와 행복으로 살 수 있는 내가 참 자랑스럽다. 건강한 금요일 밤을 만들자. 주말도 마음껏 행복을 누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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