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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을 나를 붙잡고 있는 이 남자
그는 너무 쉽게 내게 왔다는 것이 문제다
앞서 그리던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였던가
인물 정밀묘사를 주로 하는 나의 그림 세계는
한 사람의 모습이 완료되면
서둘러 또 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사실
마지막 연필선의 마무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어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급박함에 경직된다
나 스스로 목을 멘다
어서 찾자고
서둘러 다음 사람을 찾는 이유는
그렇다
끝내가는
완성되어가는
내 화폭 속 인물이
여전히 나의 탐욕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달려간다
훠이 훠어이
내가 나를 쫓는다
휘이휘이 휘히익
움직이던 내 손 안의 미술 연필이
송두리채 몸을 삼킨다
그만 멈추라고
속도 조절을 하지 않을 때
찢기고 말 나의 뇌세포를
미술연필이 쓸어안고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도무지 리듬을 좇을 수 없는 무형의 나를 달래기 위해
지금 나를 붙잡고 있는 한 남자를 다독인다
어여 어여
어여 가자
어여어여어여 가자 가자꾸나
그만 일어서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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