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가 넘어서야 이불 속을 벗어났다.
휴가를 시작하면서 했던 다짐을 자꾸 저버린다. 이런~ 내일부터는 정말로 7시에는 일어나자. 알람 6시에서 한 시간만 더 허우적거리기로 하자. 휴가니까, 그래 휴가니까 그러기로 하자. 늘 안쓰러운 내게 휴가 중 휴가라 하고 아침 한 시간의 여유는 선물을 하자. 인간이잖아.
아침을 먹고 나서 9시 30분 쯤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최근 두 권의 책을 빌려왔는데 한 권은 프롤로그 부분만 읽고 반납했다. 올리버 색스의 '깨어남'이다. 꼭 읽고 싶었는데 끝내 읽어내질 못했다. 내 얼마나 좋아하는 올리버 색스의 책인 것을.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들었다. 겨울 휴가 이전.
언스케일
이 책은 다른 도서관에서 며칠 늦게 빌렸나 보다. 오늘이 반납일이다. 그리고 읽고 싶었다. 꼭 읽고 싶었다. 어젯밤 내 자신에게 주문을 외웠다.
"내일은 휴대폰이며 인터넷이며 모두 내려놓고 책만 읽자. 꼭 그러기로 하자, 엉? 알겠지?"
열심히 읽었다. 아침 먹은 것이 문제였는지 종일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꾹 참고 열심히 읽었다. 어쩌자고 이제야 이 책을 읽고 있는가. 안타까웠다.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만물박사 '최준영 박사님(유튜브 '최준영의 지구본 연구소' 운영)'께 감사드린다.
20년, 21년을 내가 거뜬히 살아낼 수 있었던 몇 이유 중 하나가 최준영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얻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 2년 여 독서를 멈춘 채 살아야 했던 내게 '지적유희'를 느끼게 한 것은 물론 새삼스레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선생님의 모든 강의를 세 번씩을 들었을 게다. 나는 최준영 덕후이다. 감사드린다.
책 전체를 요약까지 하면서 열심히 읽었다. 무려 2년 여 만에 읽은 책이었는데(아하, 올해 김애란의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구나!) 쏙쏙 뇌리에 들어왔다. 내 현재 느끼고 있는 '경제 상황'을 제대로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이었다. 내 살고 있는 현재를 '아하, 그래그래!'를 외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언제 '경제'를 읽었던가.
이렇게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경제 관련 책이라면 얼마든지 더 읽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발행되던 2017년에 읽었더라면 내 경제 형편도 좀 나은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두부버섯탕'이라 이름 붙여서 내 맘대로 조리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씩씩하게 도서관에 내려가 책을 반납하였다. 뿌듯했다. 도서관에 간 김에 둘레를 여러 번 돌면서 걷기 운동도 하고 왔다. 제법 뱃속도 편해졌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아무래도 역류성 식도염이며 위 부은 것이 계속 문제인 듯싶다. 옆 사람이 건네준 며칠 지난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내 위장은 철벽이야!' 라고 외쳤던 지나간 그 시절이 그립다. 소화기관, 그거 온 육신의 상태를 지배하더라. 조심, 또 조심하고. 운동 또 운동하고. 먹는 것, 절대 욕심 부리지 않기.
잔뜩 껴입고 간 도서관에는 겨울 냄새가 통 풍기질 않았다. 푹 내려 쓰고 갔던 초록 벙거지모자가 키득거렸다. 춥지 않아서 물론 좋았다. 겨울 추위는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