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써야 한다?
돈을 써야 한다.
돈을 써야 한다!
근데 쓸 돈을 어디서 만들고!
난생처음. 일터 내 일에 지원해주는 돈을 써야 한다. 백만 단위이다. 갑작스레, 뜬금없이, 지령 하달된 상황이 만들어지고 내게 이 업무가 떨어졌을 때 나는 내 상관에게 청했다.
"나, 지금 해야 할 일로도 일 분 일 초를 다퉈야 할 사람이오."
"알고 있소. 그러나 어찌할 것이오, 해야지요."
"그럼 서류 처리를 도와줄 사람을 묶어 주시오."
"아, 걱정을 마시오. 그 일. 서류 처리를 능숙하게 할 사람은 이미 있소. 진즉에 해봤다더라고요."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느닷없는 일이지만 내 일이라고 명 하시니 하지요."
"돈이 왔어요, 돈이 왔는데요. 어서 주세요, 계획이요."
"무슨 돈? 어떤 돈인데요?"
"그 돈이요, 그 돈이 왔다고요."
아하, 그래 돈이 온댔지.
돈이 왔단다. 진짜로 돈이 왔단다.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준 이가, 상관이라는 사람이 붙여주겠다는 서류 처리자가 다그치듯 말했다. 상대도 나를 몰아붙였다고 생각되자 내친김에 나도 말했다. 그러나 최대한 부드럽게!
"말씀 들으셨지요? 도움을 좀 주십시오."
"예. 이미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 일을 잘 아신다고요. 부탁드립니다. 제가 통 돈이라는 것에 거부 반응이 심해서요."
"걱정 푹 내려놓고 돈 쓰십시오."
"그래야겠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를 못했네요. 제가 돈을 쓰는 것에는 영~, 그래서요."
돈을 준다는데 영 기분이 꿀꿀하다. 이것저것 서류를 챙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남의 돈을 내가 써야 하는 이런 불편한 상황 앞에 놓일 때면 하늘에게 묻는다.
"조물주여, 나를 위해서, 내가 좀, 속 시원하게, 서류고 뭐고 필요 없이, 내 멋대로 쓰는 돈을 좀 주셔야지 대체 이게 뭘 하는 거요,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이요. 산처럼 쌓아질 서류들을 해결해야 할 텐데 그러하다 보면 진짜로 해야 할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나 있을까요?"
코인으로 몇백억(?)을 벌어 수도권에 자기 집을 사고 장모님 집도 한 채 사주고 터 넓은 카페도 마련했다는 뉘 집 사위 소식으로 잔뜩 찡찡해 있는데. 이런. 짜증스럽다. 나도 돈 좀 몽땅 벌어보고 싶다. 일터 후배에 의하면
"거, 일터 그곳 대장은 말이요. 주식으로 몇십억을 벌어서 날마다 틈만 나면 일터 사람들에게 식사 제공, 차 제공을 한다나요."
움찔, 꼭 나를 향해 말하는 것 같았다. 나 들으라고 말이다.
"당신도 참. 그 사람처럼 돈 좀 벌어두지 않고 무엇을 했소?"
그래, 돈 좀 벌어두지 않고 뭘 했을까. 돈을 써야 한다?
한편 나는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 내게도 기회가 오리라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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