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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머리카락 한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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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한 올!

내 머리카락도 직모에! , 이렇대더란다.

 

일터에 전체 회의가 있었다. 일터 동료들이 모두 한곳에 모이는 자리. 한 달에 한 번씩 있다. 좌석은 거의 지정석이다. 고정석! 나는 그의 옆에 앉는다. 말하자면 우리 팀장.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그의 옆자리에 진즉 고정되었다. 일터 공간이 옆집이고 일터 동지들의 차례를 적는 문패에도 앞뒤 순서이다.

 

늘 일터 회의마다 제시간에 도달하기 힘들어하는 나. 자리에 앉을 때마다 참 낯설다. 매번 앉는데도 앉을 때마다 어색하다. 평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오지 않은 그가 앉아있어 참 어색하다. 오늘도 그가 뚱한 눈빛으로 자리에 앉으려는 내게 야릇한 눈빛 한 번 툭 던져놓고는 바로 회수해 간다. 단 한 번도 왔느냐는, 왜 이제 오느냐는, 어서 오지 그랬느냐는 등 어떤 유의 문장도 내놓지 않는다. 그의 눈빛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없고 선도 악도 읽을 수 없다.

 

아리 송송한 분위기를 덮어주기 위한 듯 진행자가 이내 오늘 프로그램의 진행을 시작한다. 다행이라 여기고 펜을 쓰다듬으면서 회의의 분위기에 젖으려는 즈음, 침묵을 기호로 내세우고 사는 그가 갑자기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힌 모양을 내세우고 그사이 낀 어떤 것을 진지하게 확인한다. 내 고장이 난 눈은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앉아서, 하는, 다음 일이 있다. 돌이켜 보니 그의 손가락 운동의 시작은 자기 외투에서 떼어낸 어떤 것. 그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 끝을 양쪽으로 해서 붙잡고 있는 것은 머리카락이었다. 검정색. 들어 올린 것은 머리카락 한 올. 뜨악한 모양새 자기 눈빛으로 머리카락을 확인하고서는 택상 아랫바닥으로 턱 내던진다. 순간 내가 괜히 미안하여 몸 둘 바를 몰라해야 했다.

 

돌이켜 보건대 그 머리카락은 분명 내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긴 머리카락에 굵은 파마기가 있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가 자기 오른손 손가락 끝에 마치 뱀 꼬리를 잘게 잘라 붙잡은 듯 무게를 실어 들고 있던 머리카락은 이내 바닥으로 추락하고 내 호흡도 이내 가라앉는다. 긴 머리카락 한 올의 주인을 기어코 찾아내려는 듯,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눈초리로 보고 있던 머리카락은 상당히 건강했다. 그렇다면 내 것이 분명히 아니다. 한데 왜 나는 미안해야 했을까.

 

억울하다. 내가 고운 나이의 젊은이였다면 그렇게 뜨악해했을까. 그것도 내 쪽을 향해서 당연히 내 것이라는 단정의 입술 기운으로 위아래 두 입술을 앙당 물고 기분 나빠 했던 확정에 가까운 그의 신념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나는 왜 그렇듯 확정 지어 판단하고 그렇게도 미안해해야 했을까.

 

나는 참 능력 부족의 인간이다. 그 상황을 가벼운 유머로 얼버무리지 못한 내가 싫다. 억울했다. 진짜로 무안했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의 눈빛이 두려웠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정말이지 혹 내 머리카락이었다고 해도 - 절대로 내 것일 수는 없지만 말이다. - 그토록 어쩔 줄 몰라야 했을까.

 

한데, 아니다. 분명 아니다. 분명 그 머리카락은 내 것이 아니다. 왜? 나는 그의 옷자락에 가까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몸과 정전기가 발생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적이 없다. 회의장의 고정석이래야 나는 항상 의자를 쭉 빼내어 한쪽 귀퉁이에 앉는다. 그와는 삼각 편대로 멀어지는 지점이다. 그의 외투에 내 머리카락이 떨어질 리 없다.

 

나는 내 머리카락이 아무 곳에서나 떨어져 방황하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인다. 즉 미리 떼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를 말릴 때마다 빠질 만큼 병약해진 머리카락을 쪽쪽 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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