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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3월 마지막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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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도 마지막 주에 와 있다.

 

며칠 전 '3월'에 관한 시를 모아 읽은 적이 있다. 문득 떠오르는 시 한 편을 적어본다.

 

3월 예찬

                             - 양광모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곧 끝난다는 것 알지?

 

언제까지나 겨울이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 알지?

 

3월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말하네

 

아직 꽃 피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활짝 피어나리라는 것 믿지?

 

 

그래, 3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곧 끝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잘 안다. 숱한 경험을 내 의지를 넘어선, 조물주의 간섭과 윽박지름으로 산 세월, 너무나도 잘 안다. 언제까지나 겨울은 아니겠지. 한데 어쩌자고 나의 봄은 늘 제대로 오질 않았을까. 들판에는 이미 봄인데 왜 나만 아직 늘 겨울 속에 푹 잠겨 있어야만 했을까. 영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겨울을 나는 겹으로, 겹으로 껴입은 겨울 의상으로 산 체험을 하고 있다.

 

양파 껍질처럼 내 육신을 감싸고 있는 흑백의 계절을 싸안고 강물에 뛰어들고 싶어 봄을 기다렸다. 한데 이승은 늘 나를 발로 차려 든다. 쭉 이어져 있는 세월의 음침한 도랑 속에서 나는 경동맥을 붙잡고 삶을 관망하려 했으나 분노를 지니고 저승에 가면 안 된다는 고지에 나는 그만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이 문장을 나의 비밀 노트에 적어뒀을까. 운명은 소통이 꽉 막힌, 일말의 희망이 없는 동거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모른 채 하는 것일까.

 

삶은 그렇게 3월, 타인의 아궁이에 둥지를 켠 비둘기의 알을 꺼내어 집 밖으로 내다 버리듯 폐기 처분에 골몰하게 했다. 나는 고래로 황무지인 4월로 가는 것에 겁이 나 창살을 붙들고 하염없는 눈물을 질러댔다. 소리가 깨지고 음악이 처지고 그림이 터지고 몸짓이 으스러질 때 과연 나는 도도한 장거를 감행하기 위해 길을 나선 적이 있던가. 애먼 용기를 빈 그릇에 담아 짓이기면서 나의 숙명을 쓰다듬었던 겨울. 가까이 와 있을 봄은 미처 만지작거릴 수 없기에 냉기 가득한 육신을 부등켜 안고 봄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기 위해 서 있다.

 

오랜만에 시와 함께할 수 있는 밤이어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만만다행이다.

 

하기야 나는 지난 2월에도 그랬다. 양광모의 시 ‘2월 예찬’의 한 줄을 모셔와 얼어붙은 가슴팍을 붉은 자위의 손가락으로 달래면서 읊었더랬다. 겨울 환송을 기다리면서. 내 생의 변혁을 꿈꾸면서. 봄 오신다고 나의 겨울 동토가 하루아침에 녹아 흘러내리겠냐마는.

 

2월은 시치미 뚝 떼고 방긋이 웃으며 말하네

겨울이 끝나야 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봄이 시작되어야 겨울이 물러가는 거란다

- 양광모의 시 “2월 예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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