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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마더링 선데이 Mothering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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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링 선데이 Mothering Sunday

 

영화 대표 포스터 - 영화 홈에서 가져옴

 

 

2021 청소년 관람 불가

1시간 44분

드라마

 

에바 허슨 감독

출연 오데사 영, 조쉬 오코너, 콜린 퍼스, 올리비아 콜맨, 솝 디라이수 등

 

소설 그레이엄 스위프트의 <마더링 선데이>

 

 

오데사 영, 조쉬 오코너, 콜린 퍼스, 올리비아 콜맨. 낯익은 배우들. 실력으로 딴 간판을 무시할 수 없더라. 최근 강력하게 든 생각인지라 이름 있는 배우들 이름에 그만 붙잡혔다. 로맨스는 이제 제발 그만. 시대극도 그만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무시무시한 호러극이나 차라리 스릴러 극이 더 낫다는 생각에 기대고 있을 때였다.

 

고즈넉했다. 고요한가 하면 어느새 비집고 들어가는 묵묵함이 튼튼하게 영화 줄거리를 받쳐주었다. 제인은 하녀. 전통 하녀의 하얀 빛깔 상하 정복의 옷차림에도 빛나는 얼굴과 몸매. 아무런 연줄도 없이 살아가던 그녀에게 고급 가문 저택의 하녀 일이 맡겨졌다.

 

고급 가문 주인네는 대저택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울했다. 전쟁에 참여한 아들들의 급사, 병사 등의 소식이 전사라는 커다란 주머니 속에 앉혀져서 배달되던 상황. 저택의 마나님과 주인 나리는 같은 급의 똑같은 상황 속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또 다른 가문들과 만남을 진행하곤 한다.

 

하녀들은 하녀들의 만남이 있겠지. 어느 날 시장에를 나갔던가. 그냥 외출이었던가 주인네와 친한 어느 또 한 저택 가문의 아들을 소개받는다. 폴이었다. 그 댁 하녀의 소개였다. 가문의 아들 폴은 공부하고 있었다. 변호사 시험이었지 아마. 그리고 약혼을 앞두고 있었다. 인간들이란 참 요상한 격식을 일부러 만들어 자기 몸체를 옥죄이는 재미로 살곤 한다. 그는 소꿉친구이자 전쟁으로 죽은 형의 약혼자였던 여자와 준 강제성을 띤 약혼을 약속한 상태에 있었다.

 

1924년 3월 30일은 어머니의 날.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만한 아무런 가족이 없는 제인은 자기 주인 니븐 가문의 인사들이 외출하자 꽁꽁꽁꽁 숨겨둔, 숨겨둘 수밖에 없는 연인 ‘폴’과 밀회를 즐긴다. 둘만의 시간은 포실포실, 옹골지다. 오붓한 둘만의 시간. 사실 제인은 하녀 친구로부터 폴을 소개받은 이후 오랜 시간 비밀 연애 중이었다.

 

그날, 어머니의 날, 제인의 주인마님 니븐 네가 한 외출은 폴의 부모 등 주위 여러 대저택 가문의 모임이었다. 제도적으로, 사회적이면서 암묵적인 요식에 의해 강요된 약혼은 폴을 애달프게 했고 폴은 그만 제인의 몸과 마음에 쏙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녀가 지닌 능력은 또 있었으니 지성 위에 덧입혀진 감성이었다. 글에 대한 집착, 책에 관한 간절함이었다. 제인과 폴은 저택 텅 비어있는 공간 곳곳을 알몸으로 순회한다. 가문 깊숙이 꽂혀있는 지식과 상식과 지혜의 창고를 맨살로 만난다.

 

아직 완전하지는 못할지언정 약속된 인연은 은근한 힘이 은연중에 연결된다. 폴을 기다리는 엠마의 뇌 속에 지진이 인다. 엠마는 폴의 약혼녀. 그녀는 가문의 모임에 참석 중. 지진은 불화살을 육상 위를 달리는 한 인간에게 전달한다. 폴이 엠마에게, 즉 대저택 가문의 모임에 가던 중 죽는다. 어떻게? 짐작해 보라. 육상에서, 불화살로 인한 죽음. 무엇이겠는가.

 

훨훨 폴이 떠난 후에도 폴의 집 곳곳을 나신으로 순례했던 제인은 첫 남자의 소식에 그만 무너지고 만다. 다행인 것이 그녀는 홀홀 단신일지언정 야무진 생을 살고 있었다. 저 혼자서 박차고 나아가 세상이라는 무대 속에 자기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던 것. 그녀는 폴과의 비밀 사랑이라는 인연이 담긴 소중한 가방을 소중하게 싸안고 대저택을 나와 취직한다.

 

서점 안내원.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책을 매개로 하여 두 번째 사랑을 만난다. 흑인 청년 철학가. 그녀의 운명은 안주하는 것이 어려운 삶이었구나. 만나는 남자마다 그만 죽게 만들어버리는 사주였다. 상충살(?)이라고 하던가? 맞나? 철학자는 암으로 죽는다. 그녀를 보통 사람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서 그녀의 생을 충만이라는 이름으로 보듬던 남자.

 

제1차 세계대전이 무대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한참 동안 시대극인지 로맨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축이 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24년, 어느 어여쁜, 가사 도우미 여성이 집주인 부부 주변에서 빛나는 가문의 힘으로 튼튼한 생을 살던 한 총각과의 밀회를 즐기다가, 죽음, 또 다른 만남. 다시 혼자. 이것은 여자를 작가로 성장하게 했다는 결말이었다.

 

내 머리 내부에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하루 한편 꼴 정도로 보는 수많은 명화의 장면들이 수평과 수직으로 직조되어 하나의 독특한 세계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중.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영화 '기생충'을 말했던, 그 빛났던 한 줄 평을 빌어오면 말이다. 한데 미술 세계에서 평생 노닐면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영화 속 아름다운 풍광, 우아한 실루엣이 붙잡았다. 끝이 그만 푹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 영화. 그러나 그런대로 괜찮은, 눈을 사로잡는 곳곳이 있어 볼 만한!

 


 

오랜만에 불면을 사서라도 하고 싶은 날이었다. 제법 시간이 된, 서너 달은 지난, 제법 오래된 어느 날, 봤던 영화 한 편을 데려왔다. 그날의 일기 몇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밀란 쿤테라를 그렸던 날이니 그림의 서명이나 이곳 일기로도 알아낼 수 있지만 찾지 않겠다. 어쨌든, 어느날, 그날의 일기 몇 줄이다. 

 

고요하다. 방금 어제(자정을 지나 1분이다.) 날짜로 이곳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잠이 쉬 오지 않을 듯싶다. 아니, 이 밤의 고요를 즐기고 싶다. 혼자다. 인물 정밀 묘사를 시작한 지 사흘 째에 마쳤다. 보면 다시 손 봐야 할 곳이 많지만 이쯤에서 멈췄다. 유명 화가처럼, 아쉬움을 모두 닫고 안타까움을 사인에 담았다. 끝냈다는 것으로 우선 뿌듯하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생각하는 것. 되리라, 언젠가 내가 만족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려니. 꾸준하게, 성실하게 해 보자고 다짐한다. 밀란 쿤데라는 그렸다. 그의 눈에 꽉 찬 어떤 삶을 향한 생기를 내 그림 안에서는 맵싸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아쉽지만 수정을 멈췄다. 그냥 끝냈다. 늘 완성하고 다시 시작하고 또 완성해 보고 끝내는 절차를 우선 지켜가면서 그려보자고 마음 다지고 있다.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이, 즉 온전히 이목구비를 그려내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기쁘다. 

 

오늘 할 일을 해내기 위해 부리나케 영화를 켰다. '마더링 선데이', 조쉬 오코너의 섬세한 연기가 참 좋았다. 그의 연기가 단순한 스토리의 흐름을 그나마 옹골차게 붙잡아주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곳곳의 장면들이 참 아름다웠다. 내가 추구하는 영화 스타일이라고 하고 보니 반전의 묘미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결말이 별 무리가 없이 끝났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참 아름답다. 얼굴도 몸매도. 어쨌든 영화 속에 쑥 빠진 채 나는 어찌할 수 없어 불면을 사서라도 밤을 지새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어쩌랴. 살기 위해서는 또 자야 되리라. 우선 자자. 

 


 

그래, 오늘도 우선 자자. 지금, 블로그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말이다. 황당한 일이 벌어진 오후를 견딜 수 없어 일터 내 방을 뱅뱅 돌다가 퇴근했다. 어떤 것을 잃어버렸다. 부디 내일은 내 생각이 오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잃어버린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정말이지 황당하고 기막힐 일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 아직 끝나지 않은 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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