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지. 어찌되었든 좀 살아내지.
점심 직전 일터 우리 부서 카톡 창에 메시지가 떴다.
"너무 안타까워서요."
열었다.
"아, 어떡하니, 살지, 살아야지, 어쩌자고."
내가 카톡창에 답으로 쓴 문장이다.
이곳에서도 여러 차례 말했을 거다. 나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잘 안 본다.
'이런 괘씸한, 뭐, 얼마나 잘났다고?'
이런 응대가 오리라 잘 알고 있다. 하나 어쩌랴. 잘 안 봐지는 것을. 시건방진 나는 우리네가 쓴 영상류는 이상하게 잘 켜지지 않는다.
너무 빤하다. 대부분 한 회만 봐도 다음 장면들이 내 뇌리에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너무 늙어버린 것이다. 우리네의 일이라면 너무 잘 알고 있다. 벌어질 일 정도라면 괜찮겠으나 어떻게 마음이 동할지도 짐작이 간다.
"그래? 그럼 네가 써 봐."
언젠가 드라마 덕후인 친구로부터 들은 날카로운 문장이다.
영화도 그렇다. 거의 대부분 내용이 너무 빤하다. 물론 디테일한 전개 등은 다르겠으나 스토리의 진행이 내가 짐작한 대로이다. 거기에 조금 유치하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 나는 우리네 영상류들이 너무 싱거워서 잘 켜지 않는다.
내가 본 상당수의 영화에 그가 출연했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는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나 너무 반듯했다. 중후한 저음의 소리까지 더해져서 그는 나를 꽉 붙잡은 우리나라 배우 중 몇 번째 가지 않는다. 첫 번째일 수도 있다. 내 안의 배우들을 자리매김해 본 일은 없어서이다.
얼마 전 그가 스캔들에 휩싸이고 무슨 검사 저런 검사 등에서 아무런 증명도 발견되지 않았대서 은근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그가 출연해서 개봉한 영화 '잠'도 아껴뒀다. 어느 관객이 써 둔 댓글을 보고 나는
'그럼, 그렇지. 누가 주연을 맡아했는데.'
그가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읽은 댓글을 이러했다.
'올해 우리 나라 최고의 영화!'
어서 스캔들에서 벗어나서 제 궤도로 돌아올 수 있기를 빌었다. 설령 죄 졌더라도 어느 날 문득 그가 다시 영화판에 돌아왔노라는 내용의 기사를 볼 수 있을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카톨릭교 신자는 아니지만 성모경을 즐겨 읊조린다. 미션 스쿨을 다닌 덕분에 암기한 내용이다. 뭐, 그다지 종교를 강요하는 학교는 전혀 아니어서 참 괜찮은 학교라고 생각하고 다녔고 졸업 후에도 종교 시간에 배웠던 성모경이며 여러 종교적인 이야기를 내 생활에서 실천하곤 한다. 그도 그러하기를 바랐다.
그도 어서 다시 일어나서 제 본래의 삶에 다시 진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번 스캔들을 계기로 자기 자신을 올곧게 추스리면서 진짜 배우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하여 그가 '기생충'으로 받았던 인기와 신뢰와 영예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이번 스캔들을 포함한 여러 잡다한, 실은 인생의 참모습이랄 수 있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쑥쑥 다시 커가는 배우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안타깝다. 그가 갔다. 이선균. 명복을 빈다.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때 그 자신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런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나는? 얼마나 깨끗한가?'
어수룩하게 섣부르고, 어설프고, 깊이 생각하면 상당히 찌질한 내용의 물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생각으로는 그렇더라.
"사람을 심판하는 자들이여, 돌아보라. 누구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 그토록 샅샅이 난도질을 하면 현 세상이 규정하는 저 지저분한 권력의 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이 있는가. 인간적으로 심판하라. 일을 마치고 다시 살아갈, 다시 일어설 힘을 남겨두고 진행했어야 하지 않는가. 이 방법 밖에는, 더는 없다고 자기 속마음을 적어갈 때의 생명체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무책임한 말인가?
오늘은 고요한 실내를 만들고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개봉 작품이 된 영화 '잠'을 보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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