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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아침을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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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아침 열 시가 되도록~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일곱 시 삼십 분쯤 눈을 떴다. 일요일 아침이면 하는 습관 그대로 핸드폰을 펼쳐서 요일을 확인했다. 혹시 오늘 월요일이 아닌가. 출근일을 모른 채 아직껏 누워있는 것은 아닐까. 토요일도 그렇다. 혹시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가끔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일까. 아마 아이가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난 후부터일 것인 듯싶다. 

"왜 아직 출근하지 않으세요?"

"어? 일요일 아닌까요?"

"오늘, 월요일이에요. 어서 나오세요."

 

일요일이었다. 뿌듯하고 오졌다. 마음이 올곧게 서지 못해서였을까. 이 역시 토요일 아침에도 거의 그렇다. 정작 눈을 떴는데 정신이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한다. 이는 마음이 흐느적거려서일 것이다.

"일어나자."

굳은 심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한쪽에 움츠리고 있는 어설픈 영혼이 흐물흐물한 기운으로 말한다.

"좀 자요. 일주일 5일의 평일, 내내 힘들었잖아요. 어느 요일 쉬운 날이 있었나요. 좀 더 쉬어요."

그래, 하루쯤 여유 있는 날도 있어야 충전이 되리라. 어제 토요일은 화분들에 물을 주느라 쉬지 못했지 않은가. 오늘은 좀 쿨하게 쉬자.

 

이런 식의 의식과 무의식을 오락가락하는 심중 대화로 한 시간 여를 보냈다. 남은 두 시간은 그놈의 휴대폰으로 이일 저일 여러 일을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뉴스 등을 통해 미술 혹은 문학, 역사, 음악 관련 최신 소식을 접하곤 한다. 새로 느끼고 깨닫고 감탄하고 아우성치는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섭취하는 지식이나 상식은 기억도 잘 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또 한다. 하여 오늘 아침은 열 시 십여 분을 넘기고서야 이부자리를 개었다. 아날로그 종이 일기도 아침에 썼다. 어제 하루와 오늘 아침의 나에 대한 반성 그리고 나의 루틴 열을 기록했다. 언제부터인지 열을 채워 쓰는 나의 루틴은 여러 해를 목록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즉 실현되어 루틴 목록에서 빠져나온 항목이 없다는 거다. 지리멸렬한 싸움이다. 나와의 싸움뿐이 아니다. 세상과의 싸움이다.

 

오전이 홀라당 사라져 버렸다. 아침을 늦게 시작하는 하루는 왜 이렇게도 허망한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상당 시간을 어제 나를 순간 정지시켰던 크로스오버 음악 그룹 '포르테나'의 여러 음악 듣기로 보냈다. 어제 봤어야 했는데 시간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끝내지 못한 영화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를 봤다. 유튜브 강의 몇을 들었다.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련 내용이었다. 강의 한 건을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경청이었다.

 

가자지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강의 중 인남식 교수님의 내용은 정말 대단하다. 유튜브 '삼 프로'에서 진행했던 교수님의 10회 분 강의도 모두 다시 들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관한 생각을 할 때마 확인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탐욕이다. 어쩌자고 이 긴 세월을 이렇게나 끝없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출발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같은 집안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척을 지고 살아가는가. 종교라는 것이 그렇게도 인간사에 커다란 주제로 자리 잡은 것은 결국 인간의 연약함과 우유부단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사방팔방의 신들은 외치리라.

"불쌍한 것들! 모자란 인간들! 조물주는 어쩌자고 자기 창작물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혹 조물주는 인간들이 심심하거나 정신이 혼미해질 때 평상심을 찾게 하기 위해서 전쟁이라는 요물을 만들어준 것일까?"

 

결국 그제 밤 부푼 마음으로 시작했던 주말은 엉망진창. 토요일에 화분에 물 주기를 위한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정말이지. 화분을 정리해야 한다. 어서 과감하게 아웃시켜야 한다. 눈 딱 감고 내가 죽음 앞에 있다 생각하고 내가 지닌 것들, 즉 화분이며 책 등을 버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것을 어찌해야 하는가. 화분은 무거워서 탈이지 마음만 먹으면 버리기가 쉬울 것이다. 책이 문제다. 몇 년 전 책을 정리하자고 나선 적이 있다. 한 사흘 고민 끝에 큰 마음먹고 담은 것이 사과 스무 개 들이 한 박스 정도의 크기였다. 

 

책 두 권을 읽으려던 꿈도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졌다기보다 내가 게을렀다. 이 또한 탐욕이었다. 어찌 책 두 권에, 영화 세 편에 그림까지 그릴 수 있었겠는가. 토요일은 온전히 화분에게 붙잡혀 있다. 단지 꿈이었다. 실천하지 못했다. 오후 들어 뒤늦게 읽기 시작한, 읽다 만 책을 일백여 쪽 읽었다. 남은 저녁, 잠들기 전에 남은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은 오늘 오후 읽었던 책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나를 움직인 문구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는데 정식 전문의로 뛸 시기가 되었을 때 그만 암에 걸려 죽으면서 쓴 글이다. 맘 아프다. 아래 두 문장을 얻은 것으로 반쪽이 된 하루를 감사한다.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 - 새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면서'에서.

"언어 없는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책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저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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