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하루 공개

블라인드가 제 생명의 힘을 드러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반응형

 

 

블라인드가 제 생명의 힘을 드러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블라인드가 우는 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일터 내 방 양쪽 벽은 모두 창이다. 이중창. 아직 진한 가을이 아니어서 창문은 온통 열어두고 있다. 바깥으로 통하는, 내가 바라보기에 오른쪽 창이 외부로 연결되는데 그곳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의 소리가 계속된다. 엉거주춤하게, 창문을 덮고 있는 길이가 맞지 않아 제멋대로 늘어진 것처럼 보이는 블라인드가 제 생명의 힘을 드러내는 소리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은 '제법'이라는 부사가 떠오를 정도로 찬 기운이 느껴졌다. 

 

참 세상 편하게 사는 나는 의상의 착용이 간단하다. 특히 소화기 계열의 화학작용이 좋지 않다고 느끼면서 옷 입기에 편리한 규칙이 자동 구축되었다. 복부가 편하게 입는 것이다. 피부를 조이지 않은 천으로 제작된 것들을 입는다. 자유로운 배의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내 의식은 아무리 멋진 패션이라도 거부한다. 피부에 닿은 첫 감촉이 거칠다고 여겨지면 바로 벗는다. 

 

코트류를 차례대로 즐겨 입게 되는 계절이 왔다.  가을과 겨울의 내 의상은 가벼운 한 겹의 옷을 입고 그 위에 온기를 강도를 높여가면서 코트를 입게 된다. 오늘 코트는 초가을에서 시작하여 끝가을로 가기 전에 벗어야 하는 천의 종류로 지은 것이다. 가을 시작되면서 내가 갖고 있는 코트들을 꺼내놓고 보니 겨울 끝까지 출근복으로 입을 수 있는 것이 일곱이다. 온갖 잡다한 고트를 모두 센다면 열을 넘겠으나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 중에는 영 내 취향이 아닌 것이 몇 있다. 그것들은 내 노년에 혹시 찾게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저장하고만 있다.

 

나의 추위를 동행할 코트 일곱 단계는 한 차례 중복되기도 한다. 두 번째 입게 될 꽤 진한 강도의 파란색 코트는 두 차례에 걸쳐 착용하게 된다. 내 지출 내역에는 존재할 수 없는 유명 브랜드의 그 옷은 둘째 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네 딸 중 둘과 둘이 닮았는데 나와 닮은 둘째 언니는 수준 높은 패셔니스트이다.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옷의 80%는 내게 제 격이다. 기모 비슷한 섬유류로 된, 보온이 좋은 속겹이 내장되어 있어 두 차례의 기간을 연이어 입을 수 있다.

 

오늘 날씨에는 둘째 순서로 갈아타야 했다. 파란색 코트를 입어야 했다는 거다. 하지만 현재 입고 있는, 첫 번째 코트를 아직 벗기 싫었다. 어제보다 1도 낮다는 우리 지역 기상 예보를 읽고 머플러를 하나 더 추가하여 기어코 입고 나왔다. 입기 시작한 날의 편안함을 쉽게 잊을 수 없어 다음 주까지 입을 수도 있겠다. 기온이 오늘보다 2도 이상 하강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나의 가을과 겨울을 함께 할 코트 '블랙 1'은 자기 몸으로 나의 육신을 감싸는 동안 참 나의 육신을 편하게 내버려둔다. 어떤 불순한 생각을 해도 모두 헤아려준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살펴준다. 기온만 괜찮다면 일년 내내 걸쳐입고 싶은 옷이다. 몸에 두른 후 이것 저것 따져 챙겨야 할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오늘 사진 몇을 찍어 올 가을을 함께했던 기억을 남기려고 싶다. 

 

월요일, 일터 회식이 있었다. 소주잔을 오른쪽 손바닥 안에 껴안고서 '월요일'로 회식을 잡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한 내게 젊은이가 말했다.

"생각을 바꿔봐요. 월요일에 듬뿍 취해봐요. 일주일이 재빨리 갑니다요. 자, 마십시다요. 마셔요."

 


이번 주말에는 꼭 책 두 권을 읽을 거다. 한 권은 이미 3분의 1을 읽은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작)>이다. 또 한 권은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이다. 황현산 선생님의 것은 2독일까 3독이 될까.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쓰고, 최선을 다해 그림도 그리면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블라인드의 움직임이 들리지 않는다. 바람의 호흡이 잦아들었나 보다.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이여, 홧팅!!!!!!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