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을 검색했다.
올해 들어 세 번째이지 않나 싶다. 자꾸 불안하다.
"왜 그 말을 했을까. 바보같이, 왜?"
말을 내뱉어놓고 하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오전 중 갑자기 이야기를 나눠야 할 거리가 생겨 일터 우리 부서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 끝에 내가 한 마디 했다. 바로 후회했다. 대체 왜 이러나. 최근 불쑥불쑥 말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 일은 더군다나 누가 들어도 불만을 표시할 일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A그룹이 B가 부담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B를 챙긴 일에 대해 내가 한 마디를 했다.
"왜 우리는 B를 그렇게 모셔야 하나요?"
바로 반응이 터졌다.
"우리가 불편해서 그렇지요."
아 듣고 보니 빤한 일이었다. 나는 급히 변명했다.
"맞아요. 그렇지요."
상대방은 내 답에도 화를 누그러뜨릴 수가 없나 보다.
"당신은 그럼, B와 함께해야 할 때 아무렇지도 않겠어요? 괜찮겠어요?"
"아하, 아니지요. 내가 잠깐~, 우선 권력의 힘 B에게 하고픈 말 쌓아뒀던 것이 풀풀 구멍을 풀고 나와버렸네요. B와 함께해야 하는 당신네의 노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알겠어요. 잘 알겠어요. 꼭 B와는 다른 라인과 다른 레인 위에서 숨 쉴 수 있기를 빌어요. 오, 제발!"
아, 덧붙였어야 했다. 그 정도의 달래기로는 통과할 수가 없었다. 권력의 힘 'B'와 함께 해야 하는 상황 속 상대의 노고에 대한 언급을 더 해야 했고 그 황당한 힘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 당신네들의 입장을 천 번 만 번 이해하고 있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데 그만 그 힘에 대한 철천지 원수 대항 의지가 내게 축적되어 있어 그만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고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내 알량한 성격은 그러한 상황을, 더군다나 내가 만들고 만 그 상황을 부드럽게 전환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내 방으로 돌아와 일하는데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좀 시간 여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쉬는 시간이면 읽던 책도 좀 읽으면서 하루를 여유롭게 보낼 참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책은커녕 이 상황을 어떻게든 물리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째 쩔쩔매면서 내 방 안을 쏘다녔다. 사방팔방으로 선을 만들어가면서 걸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긴급하게 모색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 다음 친목 모임을 기다리자. '세월이 약'이라는 속담을 잘 챙겨 들고 조용히 살자. 지나가리라. 또 지나가리라. 그럴 수 있으리라는 문장을 붙들고 나의 안절부절못함을 가라앉히자. 이 방법이며 저 방법을 떠올리고 실행 방법까지 구체화했다가는 다시 무너뜨리면서 두 시간을 보냈다. 해야 할 일이 쌓여갔다. 그때그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내게 온 그대로 머물러서 나에게 힐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억울해졌다. 급기야 나의 이 대응 방식은 혹시 조현병의 시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학사전부터 이용하였다. 유튜브 검색을 이어나갔다. 많기도 하더라. '조현병'으로 검색하여 조현병이 예상되는 징조부터 읽고 공부를 하는데 딱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마디 말하고 스스로 돌아봐야만 하고 한 마디 하고는 그 말에 대응하는 문장들을 못 견디어 하고 이후 주변 사람들의 언행을 지켜보면서 혹 자기 말을 하지 않나, 혹시 내 탓을 하지 않나 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조현병의 시초라는 것이다.
이를 어쩌냐. 딱 지금 내 모습이었다. 아, 이게 뭐냐. 왜 나는 늘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가. 언제부터 이렇게 모순 투성이의 인간이 되었는가. 주변인들에게는 내 강의를 드는 이들에게는 '당당함'이니 '용기' 등을 쉼 없이 읊어대면서 나는 왜 모범이 되지 못하는가. 왜. 언제부터 이렇게나 졸렬한 인간이 되었는가. 고작 한마디 말을 잘못 던졌다고 해서 그렇게도 마음 무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가. 이렇게나 소심해서 어찌 하루하루를 살아낸단 말인가.
내 안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 조현병이 예상되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방법이라는 예방책도 적혀 있었다. 더는 진전되지 않도록 나 혼자서 해낼 방법이 무엇일까에 집중했다. 없었다. 시종일관 글의 내용은 '내 인생은 나의 것', 즉 '네 인생은 네 인생'이라는 구절이 나를 붙잡았다. 내가 데려온 이를 내버려 두고 어찌 내 사생활이 가능한가. 전혀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 붙이는 식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꾸자. 어서 바꾸자. 이 나이에 새삼 무슨 조현병이냐.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별일 펼쳐진들 어쩌라고 느긋하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상대로 나서서 처음 보는 운동에까지 지극정성인 한 여자, 그녀를 보고 그녀의 애니와 그녀의 도서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4월과 5월의 노래 '화'가 생각난다. 물론 이 노래의 '화'는 반지같이 동그란 그녀이다. 참 좋아했던 이 노래. 노래방에서도 불었지. 대학원 시절 혼자 들어가곤 했던 노래방에서 때로는 가사가 배출되는 모니터의 화면을 보면서 의미를 음미했지. 사람이 부리는 '화'도 반지같이 동그란, 끝까지 따르고 싶은 고상한 감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늘 내 곁에 두고픈 고운 심사라면. 오늘 잠들기 전에는 자정 무렵 새날에 대한 기원을 드리면서 나지막하게 이 노래를 듣고서 잠들고 싶다. 화는 잘 다스릴 것. 각자 주머니 속에 잘 단속하여 넣어두고 상태를 조절해 가면서 살아나기.
중략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화'의 노랫말을 올려본다.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
화
- 4월과 5월(이 듀엣을 참 좋아한다. 이들의 음악은 노랫말이 모두 사랑스럽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중략)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 되면
"화" 안 된다 더 가지 마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중략)
이대로 이별일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되면
"화" 안 된다 더 가지 마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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