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지음
- 최근들어 좀처럼 긴 시간의 독서가 힘든 내 몸이 요가 매트에 누운 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냈다, 내 몸 속 시꺼먼 탐욕의 덩어리들이 있었다면 모두 내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돌아서면 불끈 내 몸 저 아래 쫘악 깔린 채 숨 죽이고 있을 가시돋힘일지언정 적어도 오늘은 몸이 좀 가벼워져서 기분 좋은 호흡이 가능했다, 어느덧 내 몸 안에서는 눈물이 잉태되어 생산되었으나, 나는 감히 몸 밖으로 내배앝지 않았다, 오랜만에 맞는 가벼움에 무더위도 너끈히 견녀냈다, 견디리라, 견뎌야지. 이 아름다운 글을 읽는데 어떤 것이 내 생을 가로막으랴.
- 위 문단은 작가 '욘 포세'가 이 책에서 문장을 쓰는 방법을 모방하였다. 반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은 우리, 인간네, 각각, 오직 하나뿐인 삶이어서 고귀한 생의 순환을 읊는 것이 아닌까. 대를 이어 이어지는 인간계 역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 글을 쓸 때면 이음말의 남발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그리고'가 나를 꼭 붙잡은 채 놓아주질 않았다. 이 글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누구 있어 나를 자기 무릎에 눕혀 놓고 '옛날 한 옛날에~'라고 죽어간, 혹은 산 사람의 삶을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 욘 포세. 피요르로 유명한, 현재 전 세계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줄곧 떠오르는 노르웨이 태생의 작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다. 일터 도서 주문에 내가 구입 희망을 한 책이다. 왜 주문했지? 처음 만난 작가이다. 아마 내 단골 서점 'yes24'의 어떤 책 홍보에서 붙잡은 것이리라.
"잘했어, 참 잘했어, 아주 잘했어요."
완독 후 나를 칭찬했다. 정말 잘했다.
- 한 집안 네 세대의 이야기이다. 그중 중심인물은 손자 세대. 손자의 생이 주된 내용이다. 그는 아버지에 의해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주인공. 온갖 정이 철철 넘쳐흐르는 가운데 북유럽 어느 집안 한 세대가 운행한다. 그래 우주의 신비가 만들어내는 무대 아침에 사람이 들어선다. 무대를 열심히 갈고 닦는다. 온 정성을 다해서. 오늘이라는 무대는 무대라는 공간의 부피에 나, 사람의 힘과 혼이 더해져 삶을 만들어낸다. 나와 네가 어우러져 무대를 가꾸는 힘은 은근하면서도 황홀하다. 은근하므로 무작정 빛이 나는 것이 아니다. 은연중에 힘이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에너지가 사람살이의 만 정을 형상화한다.
- 굴곡이 없으랴. 뜻밖에 혹은 당연히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처리된다. 잔잔한, 그리고 사람 냄새 듬뿍 담긴 정의 모음. 사람살이란 정으로 어우러져 진행되면 탈이 없다. 포근하게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각 사건의 앞과 뒤에는 꼭 위 세대에서 가져온 지혜가 더해진다.
- 담백하므로 순정적이다. 날이 차가워졌다는 것을 미처 판단하지 못한 채 얇은 옷을 걸치고 온몸 움츠러들어 있을 때 누군가 차운 몸을 감싸주는 이불 비슷한 것에게 의지하면서 느끼는 고마움이 가득 느껴지는 소설이다. 욘 포세의 소설을 더 읽을 참이다.
- " 소멸은 늙음에 다름아니나 결코 그와 같지 않으며 저 또렷한 외침 맑게 외침 별처럼 또렷하고 이름처럼 감각처럼 바람 이 숨 고요한 숨 그러고 나서 고요히 고요히 고요한 움직임들 그리고 부드럽고 하얀 천 그리 오래지 않으나 바다로부터 천조각 하나 그리고 어둠과 붉음 대신 건조하고 두려운 고요( p.20)" 사람 사는 세상의 희로애락을 이토록 잠잠하게, 그리고 이토록 차분하게, 그리고 이토록 단아하게, 그리고 이토록 때 묻지 않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게도 이런 생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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