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2010. 08. 12.
144분
범죄
김지운 감독
이병헌 · 최민식 · 전국환 · 천호진 · 최무성 등 출연
수상내역
2011
47회 백상예술대상(영화 대상)
29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금까마귀상)
5회 아시아 필름 어워즈(최우수 편집상)
31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오리엔트익스프레스-작품상)
18회 제라르메 국제판타스틱영화제(비평가상, 학생심사위원상, 관객상)
2010
13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올해의 남자배우상)
6회 대한민국 대학 영화제(편집상)
31회 청룡영화상(촬영상, 조명상, 음악상)
47회 대종상 영화제(조명상)
도대체 인간이라는 존재는 뭘까.
우연히 어느 예능 방송을 보는데 영화배우 이병헌(수현 역)의 출연이었다. 그의 영화 출연분 중 눈길을 확 잡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마지막 장면이었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대체 뭘 하는 것이냐고 순수 예능의 측면에서 질문하는 프로그램 진행자의 의견에 나는 동조했다. 몇 분이나 된 내용일까. 어느 한 가지로 집약해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낯빛으로, 온몸으로 연기하는 이병헌에게 오싹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우리 영화를 봤다.
수현에게는 약혼녀가 있다. 어느 날 경호로 바쁜 수현에게 약혼녀의 도움 요청 신호가 온다. 운전 중 눈 때문에 발이 묶였단다. 차를 운전할 수 없단다. 한데 어느 학원 차의 운전자가 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단다. 수현은 핸드폰으로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면서 약혼녀를 안심시키고 일에 복귀한다. 수현은 국정원 경호 요원.
철저하게 여자들을 농락한다. 남자들을 철저하게 짓이긴다. 장경철. 그는 아들 하나를 부모에게 맡겨 키우는 한부모 가정의 아빠이다. 학원 차의 운전자.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자연재해 상황의 수현 약혼녀로부터 결코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는 답을 듣고 돌아섰던 그. 장경철이 수현 약혼녀의 차로 다시 돌아온다. 무기를 들고서.
그는 여자들을 강간한 후 죽인다. 머리는 댕강 잘라서 주변 아무 곳에나 버리고 몸은 동료(?)의 집에 가져가 인육이 되게 한다. 장경철의 동료는 인육은 이 세상의 최고의 고기라고 주절대면서 뚝뚝 떨어지는 핏빛을 주섬주섬 주워서 씹어 먹는다. 맘껏 즐긴다. 그런 후배를 나무라는 장경철. 인육을 거부하니 그는 그렇다면 사람인가?
감독은 철저하게 ‘집중’을 요구한다. 무대는 장경철의 학원 차 운행 범위 안에서 대부분 움직인다. 커다란 액션을 간단하게 가동한다. 시청자의 영육을 자기가 마련한 틀 안에 단단하게 묶는다. 관객은 단 한 치의 자기 보호에 필요한 여백을 넘볼 수가 없다. 간절히 매달리게 한다. 오직 선의 입장에 서서 악을 짓밟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도를 강요한다.
“저 새끼는 인간 말종. 당연해. 당연하지. 헛생각들 하지 마. 저 새끼는 잡아 죽여야만 해. 저 개새끼는, 저 개새끼는, 저 개새끼는~. 당연하지, 당연해. 뒈져야 해. 그냥 죽으면 안 돼.”
“자, 다들 보고 있어. 보고 있어? 이런 새끼는 이렇게 죽이는 거야, 지가 한 짓거리 이상의 짓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해. 생명 그 자체를 두 도막, 세 도막, 네 도막...... . 갈기 갈기 찢어발겨서 죽게 해야지. 그렇지?”
“그래, 그래요, 그래요. 맞아요. 맞지요. 당연하지요. 그렇게 뒈지게 해야지요. 뒈지게 하고, 또 뒈지게 하고, 또또또또, 뒈지게 해주세요.”
장경철의 여성 혐오증과 인간 혐오증의 이유를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도 시청자를 한 자리에 붙박아 두겠다는 방침일 것이다. 감독의 의도. 철저하게 악인으로 묶여놓겠다는 생각이었을 거다. 짐승만도 못한 놈. 벌레만도 못한 놈. 단 한 끝도 용서할 수 없는, 용서할 것이 못 되는 인간.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 한마디도 내놓을 것 없이 덕석말이 해서 쳐죽일 놈. 오직 단 한 가지의 판단 속에 시청자들의 생각을 고정하자.
악인. 악마화되어가는 인간들에게도 이유가 있다. 부인이, 마누라가, 그의 계집년이, 그의 새끼까지 번식시킨 그년이, 집을 나갔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나는 이 부분을 일부러 제대로 듣지 않았다. 자기 집을, 자기 새끼를 찾아온 늙은 부모가 자기 새끼의 아비를 찾아온 이에게 하소연하는 장경철의 속사정을 두 귀를 곧추세워 듣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서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인간다움을 얻어듣고 싶지 않았다. 자기 씨를 부모에게서 양육하게 하는 것 정도가 장경철이 지닌 악마 이상의 악귀가 되게 한 이유인데 이로는 덜 마땅하지 않은가.
장경철을 악의 구렁텅이로 짓이겨 넣은 이유를 좀 더 그럴듯하게 그려야 하지 않았나. 아니다, 장경철을 용납할 만한 어떤 근거도 마련되면 안 된다. 안 되었다. 그럴 만했다. 감독은 짐승 시대를 사는 인간 나부랭이의 악의 근본을 적나라하게 나열하고 싶었을 거다. 나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장경철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단 한 푼도 하지 않은 채 수현 편에 서서 영화를 봤다. 문득 든 생각이 이랬다. 왜 감독은 철저한 응징 쪽에만 치중했을까. 현대를 관통하겠다는 것일까. 사람의 중심을 통과하겠다는 것인가. 악인이 지닌 심장의 정중앙을 통과하는 응징이 필요한 시대임을, 이를 진행해야만 참다운 사람 세상이 된다는 것을 강요하고자 한 것일까.
수현의 보복을 확인한 장경철은 고개 숙이지 않는다. 자기 악을 더더욱 악답게 떠받쳐줄 인간을 만났다는 것에 흥분한다. 수현이 장경철의 악을 다듬는다. 악에 받친, 악인 악귀 장경철이 맞대응해 온다.
“그래, 잘 왔다. 나, 인간 아닌 나를 철저하게, 인간 아닌 악마로 마침내 태어나게 할 너, 수현! 어서 오너라.”
악마가 낚시하지 않을 때 그는 그물을 고치고 있다고 했다. 장경철이 그물을 고치면서 수현을 붙들고 늘어진다. 수현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네가 한 만큼 나도 한다. 네가 행한 그대로의 방법으로 너의 목을 댕강 도막 낼 것이다. 기다리라.”
보통 사람도 악마를 본 이상 악마의 짓을 거뜬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수현은 다짐한다. 국정원 경호 요원 수현은 이제 됐다는, 그만두라는 국정원 국장(?)의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장인과 약혼녀의 동생, 즉 처제의 위험을 직감하고서 정리 단계를 생각한다.
장경철이 극으로 치닫는다. 수현에 앞서 수현의 장인을 붙들었고 수현의 처제를 붙들었다. 수현도 악의 최북단을 향해 달린다. 악에 악으로 맞선다. 수현의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는 장경철이 파출소 앞 대로에서 치렁치렁 자수하겠다는 신호를 악의 화신이 되어 내보일 때, 수현은 장경철을 자기 차에 입수하게 한다. 자수를 내세웠을 뿐 장경철도 바라던 것.
장경철을 차에 태운 수현은 장경철이 보통의 사람들을 식인으로 만들던 아지트로 데려가 장경철이 그가 만든 분수나 정도에 알맞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
‘악마는 제단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 문장에 맞은 장경철의 행위가 이어지기를 차라리 바랐다. 날카롭게 너른 날, 날 선 칼날 위에 썰어질 자기 대가리가 놓이거든 차라리 어서 포기하기를 바랐다. 차라리 죽음을 곧게 받아들이고 호탕하게 웃어 젖히기를 바랐다. 나는 어서 다음 행위가 이어지기를 원했다. 바삐 아지트를 찾는 자기 가족들에 의해 장경철의 목이 나동그라지길 바랐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아, 그는, 장경철은 결국 인간이었다.
죽음 위에 장경철의 목을 올려놓고 수현은 대로로 나선다. 수현은 이 글의 서두에서 읊었던 내용의 표정을 내놓으며 인간계를 토로한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복합 다단한 온몸을 세상에 드러낸다. 인간이여, 나를 보라.
“대체, 인간이라는 것은 뭘까, 나는 뭘까. 우리는 뭘까.”
“사람은 왜 살아?”
“사람인데 왜 그렇게 죽어야 해?”
“내 사랑 약혼녀와 내 사랑 약혼녀의 뱃속 내 아이는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어야 해? 뭘 잘못했길래 이 세상 착한 여자들과 착한 사람들이 악마의 손에 의해 이 세상을 하직해야만 하는가. 왜?”
“대체 왜 인간은 그렇게 살아야만 해?”
“인간이라는 존재는 뭘까? 나는 뭐고 너는 무엇이며 우리는 뭘까?”
그가 외친다.
“나는 악마를 보았다.”
지금껏 우리나라 영화를 보는데 이렇게 숨죽인 채 집중했던 영화는 없었던 듯싶다. 영화 리뷰들에서 자주 언급했다. 나는 우리 영화를 잘 안 본다고. 왜? 빤하다고. 너무 빤하다고. 인간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대충 맛보고 나니 얼굴색 같은 사람들의 하는 일이란 것이 글의 첫 문장 혹은 영화의 제목만 봐도 그 내용을 알겠더라. 전개될 내용이 짐작되더라. 앞으로 펼쳐진 글이며 필름 속 내용이 나의 뇌리에 슬로우 비디오로 ‘쫘악’ 깔리더라. 그리고 대충 맞더라. 대부분 맞더라. 그러므로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이런~
난생처음으로 나의 방정맞음을 시인한다. 우리나라 영화도 이제 제법 볼만 하구나. 한국 영화 리스트 순위 10위 안에 이 영화를 올린다. 김지운 감독에게 감사드린다. 배우 이병헌. 배우 최민식. 배우 전국환. 배우 천호진. 배우 최무성. 당신들의 연기가 있어 이 영화가 제목 ‘악마를 보았다.’이다. 명 배우, 명 감독이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를 처절하게 펼친다.
이 영화를 시청한 지 하루를 지나 이 영화를 본 소감을 쓰는 지금 나의 마음은 참 처연하다. 내 몸에 여전히 스며있는 이 영화의 기운은 참 소슬하다. 차고 쓸쓸하다. 스산하고 으스스하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악마이며, 우리는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시인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 끊임없이 나의 뇌 속을 떠돌면서 나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오늘, 나의 일상은 또 참 힘들었다. 무려 여섯 시간 이상을 샌드위치 세트 한 접시와 무엇 한 접시를 시켜 먹고는 끊임없이 보통 사람의 일상을 전해 들어야 했다. 남은 음식 몇 조각이 한여름 비스듬히 비치는 여름 햇살의 흔적으로 풀풀 썩어가고 있었다. 나의 혀는 자꾸 곰팡이들의 횡보로 짓무른 냄새를 만들고 있었고 실내에도 강한 햇빛은 스며들어 나의 노쇠한 망막을 피곤하게 하였다. 늙은이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참 길고 길었다. 힘없이 축 늘어지는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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