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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역류성식도염: 안타까운 순간 1 -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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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어서인지 자꾸 글이 쓰고 싶다. 이곳에 혹은 비공개 일기장 등에. 

'세월이 약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어서 세월 가서 내 지금 앞에 차려져 있는 무거운 상이 어서 가벼워졌으면. 

며칠 전 들었던 아프간 사태 강의 기록 위에 놓인 커피 잔

 

거의 중독 수준이었다. 커피. 

 

 

독서, 그림 그리기, 음악 듣기, 미술 작품 읽기 등 소위 '인문학적 사고'로 꽉 찬 생활을 하고 살았다.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내 생활이었으며 사실 내 삶의 힘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위의 인문학적인 일들을 해내는 순간을 얼마나 즐겼던가. 

일찍 일어나 어서 씻고 마알간 기운에 책을 펼치면서 하루 첫 번째로 내 식도를 통과하던 커피를 맛보면서 내 스스로 얼마나 우쭐했던가. '오호, 나는 적어도 이런 사람이야. 독서를 하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 첫 음식물 섭취를 커피 마시기로 시작하는, 고고함을 사는 사람이 나야.'


 

 

여수 상봉 쪽 어느 카페에서의 커피. 뷰가 참 아름다웠던~

 

내 고상함으로 꽉 찬 하루의 시작을 이젠 쉽게 하지 못한다. 

위장이 제 기능을 함에 있어 부실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에 따른 의사의 진료를 받고 난 후 커피 마시기에 '규격 제한'이 그어졌다. 나 스스로 그은 선이다. 정식 병원 진료는 물론 책과 유튜브 등의 여러 강의와 소위 관련 환우들의 모임에서 들은 내용들의 합을 분석하여 내 커피 마시기 생활에 대한 기본 틀을 만든 것이다. 

1. 하루 두 잔을 넘기지 말 것

2. 커피 믹스는 절대로 먹지 말 것

3. 설탕도 절대로 추가하지 말 것


서너 해 제법 잘  지켰다. 그야말로 멈춰지지 않던 어느 날 밤 서너 시간의 설사와 건강 검진 시 발견한 '역류성 식도염'의 기운을 제대로 된 증상으로 겪은 후 드디어 내 육체도 정상포물선의 하강선상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해 건강검진에서는 위장 어느 부분의 탈도 있다고 했다. 물론 '앞으로 지켜볼 일'에서 의사 선생님은 선을 그어 주셨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서너 시간 설사 후 응급실로 달려갔던 다음 날, 손등을 쓰윽 문댔더니 피부가 마치 사과 껍질 벗겨지듯이 사악 벗겨지던 날의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 하룻밤 새 온 몸에서 수분이 쏴악 빠져나갔던 것이다. 하룻밤 새 무려 6킬로그램 넘게 몸무게가 빠졌던 날의 무서움을 겪으면서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가끔 맛 보던 쑤욱 들어간 배에서 느끼던 행복감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깨달았다. 제아무리 중독이 되었던 들 예전처럼 커피를 마시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여수 상봉 뷰가 멋진 곳에서 마셨던 ~

 

긴 겨울 휴가 동안 집에 있으니 꼬물꼬물 심심한 입을 위해 손가락이 운동을 하고싶어 한다. 정해진 커피 마시기 시간을 위해 손가락이 기쁜 마음으로 움직이는 시각은 소위 '새참'시간이다. 소화기간의 문제를 안게 되면서 내게 간식 시간은 거의 없다. 신기하게 입맛도 사라졌다. 그닥 뭘 먹지 못해서 안달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냉동실에 있는 초콜릿 한 조각을 먹었다가도 나를 나무란다. 왜 그걸 먹냐, 좀 참지. 인내심이 그래서 어찌 사냐. 니 몸 생각해라. 건강 잃으면 아무 것도 못 해야. 알았니, 알았어?

최고의 기쁨을 덩어리 전체에 실은 손이 끓는 물에 원두커피를 타서 차 숫가락으로 저을 때면 조심스레 참 단정한 리듬으로 내 후각을 향해 다가오는 커피 향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올 겨울 커피 마시기에 걸린 규격 제한 건 중 두번째의 '설탕 타지 않기'의 대체책으로 '꿀을 타서 먹기'를 실시하고 있다. 물론 내멋대로 제안하여 내 식대로 진행하고 있다. 꿀은 당뇨나 비만 등과는 무관하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여 원두커피에 쌈지막한 꿀을 타서 마시려 들면 달콤씁쓰레한 고운 갈색향을 후각과 함께 맛보면서 내 심심했던 미각도 미리 운율 실은 시를 쓴다. 아, 삶이여. 이 순간은 살고 싶다야.

그런데 안타까운 순간이 꼭 따라온다. 하루 두 차례 커피를 마시므로 하루 두 번씩 꼭꼭 겪게 되는 안타까움의 시각. 딱 한 모금만 더 마시고 싶은데 이미 커피잔 속에 커피를 다 마셔버렸음을 발견할 때이다.

'남겨둘 것을. 한 모금은 좀 남겨둘 것을.'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나 이미 싹싹 마셔버렸는지 커피잔 바닥에는 액체였음을 느낄 수 있는 흔적도 없다. 꽝 말라버렸다. 물론 동안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한 모금 한 모금 참 아껴 마신다. 이 후회를 덜 하기 위해서. 참 가련한 나. 

아, 불조심 물조심 바람조심 조심 조심에 커피 마시기도 조심조심. 제아무리 차디 찬 커피가 되더라도 빨리 마시기는 조심조심. 아니, 미리미리 건강 조심. 

'나는 바가지로 커피 마셔도 괜찮아.' 하던 날들을 그리워하면서. 

그래 커피를 천천히 마시자. 

'슬로우 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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