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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오늘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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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성공!

 

 

아침은 푸른 빛이 제법 돌았다. 내게.

 

 

오늘도 성공했다. 7시가 되기 전에 일터 공간에 들어왔다. 첫 발자국을 6시 50분에 찍었다. 눈치가 보였다. 경비 할아버지가 건물 앞에 계시면 어떡하지?

'에구머니나, 저 여자는 아무래도 이상해. 출근 순위 1위에 퇴근 순위 꼴찌의 저 여자는 왜 저럴까. 집이 싫은 걸까?'

언젠가 퇴근길 통화에서 바로 손위 언니가 경비 할아버지의 생각일 것이라며 내게 던진 말이었다. 내게 '멍청이 아니면 성실녀'라는, 양자택일이 가능한 답을 내게 던졌던 여인.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고.

 

 

 

어쨌든 우선 실외 공간을 한 바퀴 돌았다. 고정된 자연과 고정된 정물 위에 하늘의 마사지로 탄생한 풍경 몇 컷을 필름에 담았다. 현재  시각 7시 22분. 컴퓨터 앞. 컴퓨터를 켜고 확인한 첫 시각은 7시 7분이었다. 쌍칠! 러키 쎄븐이 쌍으로! 오호라, 오늘 일은 그야말로 일사천리 로 진행되려나 보다.

희망이 솟구친다. 광명이 내 일터 공간 뒷면에 현수막을 쳐서 솟아오른다.

'축 입실 1위. 그다지 별 것 없을 테지만 마음에 빛이 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니. 마음껏 기뻐하라'

희망을 가지니 벌써 모든 일이 해결된 듯 온몸이 종이비행기가 된다. 난다. 난다. 날아간다. 날아오른다. 오늘은 마음껏 나래를 펴고 씩씩하게 날아오르는 삶을 살자. 

일단 이 일기를 7시 40분까지 쓰고 어제 끝낸 보고서(일종의~라고 하기로)의 3차 점검을 하기로 한다. 오늘 내게 올 옆 동료의 보고서 점검도 해야 한다. 이는 오후 시간에 하기로. 콸콸콸콸. 에너지가 솟구친다. 확 확 확 확 어젯밤 섭취한 구운 닭이 제공하는 기운, 생의 열기가 쏟아진다.

저곳에 걸터앉아 가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그러나, 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좋은 일이 있으면 으레 나쁜 일이 줄을 서는 법. 그게 인간사임을 면역력을 충만하게 기를 만큼 수없이 겪어왔지 않은가. 아, 조심하자. 조심, 조심, 또 조심! 일사천리 里라는 것이 지나치면 단 칼에 아웃될 수 있는 성질을 안고 있다. 단 한 번 '쏴아~'하고 쏟아진 것이 천리를 간다니 그것 과부하라도 걸려 봐라. 바로 아웃이다. 명심하자. 벌어지는 일들을, 일들에 관련된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살살살 달래면서 술술술 풀어나가자. 자, 잠자리에서 스스로 다짐한 약속, '7시 전에 일터에 출근하기'를 연 이틀 성공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오늘을 살 가치가 있다.

 

장면을 쏴악 바꿔서. 연극으로 치면 새 장을 열자. 새로운 무대를 세워서, 자, 출발!

 

얽히고 섥힌 생이래서 삶의 재미라는 것일까.

 

 

 

오늘 풀고 가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짐작되리라. 이름하여 '전자레인지 파괴 사전'

우선 어젯밤 동거인과의 대화를 나열한다. 

"전자레인지 말이야. 여기저기 서비스를 알아봤더니 9만 원 정도는 줘야 한대. 새로 사는 게 낫다 그래서 새 상품 찾아봤어.  셋. 사진 보낼 테니까 골라."

"아니, 우리 전자 레인지 싫다고 안 쓰던 때 생각 안 나나? 뭐 급하다고 벌써~. 혹시 알아. 진짜로 제 스스로 기사회생할지도."

이것은 내 생각 속에 머물러 있던 말. 내뱉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기사회생'에 빗대어 표현할 유사 사건을 바로 찾아내지 못해서이다.

"그냥 아무 거나 사."

"알았어. 십일만~. 그게 제일 낫겠더라."

"으씨, 근데 전자레인지는 서비스 가격이 왜 그리 비쌈?"

"중앙을 건든 거지. 중심 기능 부위를 친 거야."

"중심 기능?"

묘한 곳으로 건너가는 알고리즘이 내 안에 작동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지금 농담이나 따 먹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내 죄가 컸다. 단독으로 벌인 일이다. '미증유'의 사건으로 덮을 수도 없는 것. 이미 전자레인지의 제 기능에 잘 익은 밤호박 여섯이 냉동실에  안치되어 있다. 사건의 앞뒤는 뻔할 뻔 자이다. 내 입으로 고백하지 않았을 뿐이다. 

 

조용히 꼬리를 사렸다. 사뿐하게 내려앉아 내 머리 주변에 자아반성의 분위기를 담은 후광이 빛나게끔 했다. 몇 분 흐르기도 전에 내 인내심은 명을 다했다. 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어색하고 힘에 부쳤다.  폰을 열고 숫자를 눌렀다. 사실 어제 일이 터진 후 곧바로 통화를 시도했다. 만만한 사람이 손위 언니이다. 한편 내 집안 살림살이의 롤 모델이기도 한 사람. 어제 언니는 자질구레한 내 이야기를 길게 끌 수 있는 통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오늘 다시 전화를 걸어갔다.

"에이씨. 어제 십만 원  날렸어."

"왜야, 왜. 뭔 일 있어?"

"십만 원을 날렸다니까."

"뭘, 어쨌다는 거야?"

"그놈의 밤호박, 어이구 앞으로는 절대로 밤호박 안 살 거야."

"밤 호박이 다 썩었어? 내가 몇 번을 말하디, 잘 관리하라고, 신문지 깔~"

"그래, 그리 했지. 근데 이번 장마가 오죽해? 요것들이 장마 며칠 계속되니까 곰팡이가 거미줄을 치더라고. 어제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식초에  깨끗이 닦아내고 레인지에 돌렸지."

"어? 근데 왜? 8분씩 돌리면 된다던데."

"아이고, 8분도 아니고 하나에 6분을 3 등분해서 2분씩 끊어서 세 번씩 돌렸지. 일곱 개째 넣었더니 돌아가긴 하는데 익혀지질 않는 거야. 바로 코드 꺼내면 다시 되려니 했더니 안 되네. 오늘 서비스를 알아봤더니 9만 원을 달래서 새것을 사기로 했어."

"어이쿠나. 배워서 뭐 한데. 많이 배워도 아무 쓸모없어야. 아니 일곱 개나 돌리고 싶디? 세상에나 만상에나."

위 문장은 언니가 내게 던지고픈 문장일 게다. 내 착한 언니는 위 문장을 말하지 않은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아이, 그러기도 해야. 다행이라 생각해라야. 불이라도 났으면 어쨌겠냐. 그니까 쓰고 좀 살아야. 아끼면 뭐한데. 그렇게 돈 나간 것 봐라."

"아니 갑자기 뭔 말. 안 쓰고 살아서 이 일이 일어남? 영 짜증 나게 하네."

위 문장은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 기가 막힌 조형을 보라. 추상을 보라. 이런 것들이 바로 나를 살게 한다.

 

 

 

사실 며칠 전 나는 언니에게 내 가끔 구경 가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롱치마 둘의 사진을 보낸 적이 있다. 6만 원이 다 되어가는 보라색 꽃무늬 하나와 3만 원이 다 되어가는 캉캉이 검은색 치마였다. 가성비 좋은 듯싶은 캉캉이 하나 사서 가볍게 입을까 했는데 언니가 말렸다. 언니는 그래도 6만 원짜리는 사 입으라고 했다.(최근 있었던 의상 구입에 대한 사건은 다음에 자세히 쓰기로 하고!)

언니는 내가 치마 하나 가볍게 사 입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란다. 정말 그랬을까. 집안 살림에 전혀 흥미가 없어 애처로운(?) 생을 사는 옆지기는 벌써 돈을 지불했노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가슴이 쓰리다. 아리다. 애린다. 사실 나는 치마가 문제가 아니라 백만 단위의 무엇을 구매하고자 벼르고 있다. 젊은 시절 과부 되어 아들딸 잘 키워낸 우리 언니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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