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했다.
무엇으로?
이틀 만에 스러진 다짐을 지키지 못한 내 옹색스러운 정신력에 대해 분기탱천憤氣撐天하야 여섯 시 이십 분에 집을 나섰다. 오늘 아침 출근 시각은 7시 10분 전쯤 될 것 같았다. 왜 예상형 문장? 일터 대문을 50여 미터 앞두고 체크한 시각이 6시 5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장거리 출근길을 택했어야 했다. 시꺼먼 하늘에 지레 겁을 먹었다. 내 원초적인 순수의 흰 운동화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직선의 곧은 미학이 담긴 최단거리 출근길을 택했다. '어쩌지? 에구머니나. 돌아서 올 것을. 너무 이른 시각이다. 일터 주변을 십 여 분 더 걸었다. 이것 역시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 여정에서 내 흰 운동화는 그만 흑탕물에 오염되고 말았다. 주말에 또 빨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한숨이!) 그리하여 일터 안으로 들어선 시각은 7시 2분 전쯤.
떠오르는 한 여인의 말이 있었으니,
'멍청이든지, 성실녀든지.'
'저 여자 참 이상해. 집이 저리 싫은가. 대체 저 여자는 언제 살림을 해?'
내 바로 위 언니가 내게 퍼붓던 포탄 발사형 문장 둘.
경비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이 시각 할아버지는 아마 기타 연주 연습을 하고 계실 것이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내게 음표의 길이를 물어오신 적이 있다. 늦바람으로 기타 연주를 배우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음악 이야기만 나오면 환장을 하는 나는 연륜이 자랑이실 할아버지 앞에서 음표의 길이를 따박따박 두 손으로 표현해 알려드리고는 인생사 가장 긍정적인 도우미는 음악이라는 것을 강의했던가. 그리고 가끔씩 제1위 출근길에서 할아버지와 정면 대면을 하게 되면 괜히 움츠러드는 시각세포들을 다독이느라 기타 연주는 잘 진행되고 있느냐는 것을 주 메뉴로 여쭙곤 했다. 아래와 같은 문장을 꼭 끝 문장으로 남겨드리면서.
"출근길에 기타 연주를 들으면서 계단을 오르면 기분이 참 좋아요."
오늘. 설마 하니 지금 이 순간 할아버지가 출입구에 계시지는 않겠지. 지금은 누구에게나 오직 혼자만의 시간으로 적합해. 아마 할아버지는 열심히 기타 연주에 빠져 계실 거야. 가자. 직진! 일터 실외 광장을 한 바퀴 돌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현관을 통과하기에 지금이 적절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어 바로 실내로 진입하기로 했다. 자, 가자. 입실. 신발장을 열기. 운동화 벗어 넣고 실내용 슬리퍼로 얼른 갈아 신기. 가자아~하고 직진을 뚫고 나아가려던 ㄱ돌아선 순간이었다.
오, 마이. 가드. 현관 입구 한 중앙에 어슴푸레한(나는 눈이 심하게 나쁘다. 그러나 안경을 쓰지 않는다. 왜? 한 편의 글이 곧 되리라.) 흑빛 무리가 눈의 띄었다. 생명체라는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서 있는 상' 입체가 있었으니 경비 할아버지셨다.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대요."
"예?"
"거, 국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 어제 들어보니."
위의 첫 번째 대화는 틀렸다. 할아버지는 '음악'이 아니라 '국악'을 발성하신 것이었다. 내 늙어가는 청신경, 달팽이관의 느림이여! (이에 대해서도 글 한 편을 쓰리니~) 다시 할아버지의 말씀은 계속된다.
"국악이 참 좋아요. 음악 중에 국악이 제일 좋아요."
"아하, 어제 오후요? 죄송해요. 늦게 퇴근해서요."
"아, 아니, 괜찮아요, 아니어요. 늦게 퇴근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국악이 진짜 좋아요. 거, 뭐더라, 거~"
"아, 어제 제가 듣던 음악이요? '흥타령'이요. 흥타령."
"그래, 그래요. 흥타령. 안숙선~"
"예. 어제 안숙선을 들었어요.
"그래요, 그래. 흥타령은 안숙선이 최고지요."
"그죠. 근데 제가 요즘 많이 듣고 있는 '흥타령'은요. 방송 ~, 거, 국악인이 클래식 가수들하고 뭉쳐서요. 거, 넷이서 부르는 것이어요. 한번 들어보실래요?"
나는 출근길에 듣고 있던 유튜브 '지구본 이야기' 속 최준영 박사님과 잠시 이별하고 재빨리 유튜브 검색창에 '라비ㄷ'을 입력한다. 첫 줄에 '라비던스'가 뜬다. 대여섯 창을 내려가니 '흥타령'이다. 클릭을 한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을 꾸어서 무엇을 헐거나~'(이 부분에 대한 글도 긴 글 한 편으로 완성하고 싶다.)
국악인 고영열이 노래한다.
"거, 국악인들이 노래는 최고로 잘 불러."
"그래요, 그래요."
"거, 거, 송가인이도 국악을 했어."
"예. 그랬다더라고요."
"국악을 해야 노래를 좀 제대로 해."
"예. 그래요. 저 '쑥대머리'도 좋아해요. 무지 좋아해요. 임방울 거요."
"그래, 임방울이 최고지. 우리나라 국악 하면 임방울이 최고여. 창 하먼 임방울이여."
할아버지는 임방울에 대한 정보를 몇 줄 더 내게 설명하신다. 나는 오른손잡이이다. 오른쪽 가슴에 상주하는 내 오른쪽 마음이 급해진다. 주는 아니지만 그럴싸한 양식 집에 가면 제법 활달하게 움직이는 내 왼손, 같은 쪽 내 가슴에 거주하는 내 왼쪽 마음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준비한다. 아, 앞으로는 정정당당하게 일터 현관에 입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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