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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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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Hope Gap, 2019

장르 로맨스/멜로/드라마

개봉 2022.02.24

국가 영국 12세 이상 관람가 100분

제35회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독립영화상 수상, 2020

 

윌리엄 니콜슨 감독

아네트 베닝, 빌 나이, 조쉬 오코너, 아이샤 하트, 라이언 맥켄, 사라다 맥더모트 등

 

 

 

* 이곳에 함께 올린 모든 사진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시를 엮은 책을 만드는 유쾌하고 솔직한 여자 `그레이스`. 적극적이고 낙관적인가 하면 때로 거칠다. 자기주장이 엄청나게 강하다. 남편 `에드워드`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 성실하면서 조용하다, 그리고 순수하다. 그리고 신중하다. 아, 또 그리고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 ‘그는 상당히 폐쇄적이다.’ (- 라고 하는 것은 억지일까?) 두 사람 사이 외아들 ‘제이미’는 상당히 아빠의 성격이다. 자기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내놓을 만한 연애 사건이 없다. 물론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함께 마음 아파한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도 대단하다.

 

 

 

 

 

셋은 29년을 ‘가족’이었다. 영원한 가족이라 여기고 살고 있다 싶은 지극히 평범한 한 가족. ‘사랑’이었다. 무난하다 싶게 평범한 가족사 랑이 근간에 깔려 있어 무탈하게 평생 살아낼 듯한 삶.

 

 

 

 

어느 날, 남편 `에드워드`가 자기 생각을 내놓는다. ‘여친이 있다. 떠나겠다. 여자 친구는 당신과 다르다. 나를 나로 살게 한다. 사실 나는 진즉 당신과 남남이었다, 나는 당신을 견딜 수 없다.’는 식의 대사를 내뱉고서 막무가내 떠난다. 그래, 이미 남이었다.

 

 

 

 

`그레이스`는 무너진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녀는 혼돈이다. 아들 제이미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생활에도 똑 부러지지 못해 늘 좌불안석의 삶인 것을. 이 상황을 대체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으로도 옛날로 이미 돌아갈 수 없음을 파악한 제이미는 어머니의 곁을 꾸준히 맴돌면서 ‘참사랑’을 음미해 본다. ‘깊은 슬픔’이라고 제아무리 외쳐도 아버지는 그레이스에게 이미 타인이었다. `제이미`는 둘의 감정을 서서히 이해해 나간다. 그레이스에게도 이를 전하여 자기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안내한다. 야무지지 못하여 불안한 데도 제이미의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윌리엄 니콜슨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단다. 이것이 마치 옆집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것 같은, 혹은 영화 속 주인공이 혹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하는 현실성이 읽어지는 이유일까. 인생 풍파는 어느 날 갑자기 올 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사람은 사람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 영화계에서는 훌륭한 각본이 있어 가능한 웰메이드 드라마”(Celluloid Dreams)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각본 구성도 물론 윌리엄 니콜슨이었다.

 

‘오우~, 내가 이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포 없이 영화를 시청하던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어느 날 갑자기 ‘이혼 선언’을 해오는 남편. 당신의 이러저러한 점을 나는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선포하는 남편. 한 여자를 만나 마침내 ‘나다운 나’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남편. 대체 이게 뭐지? ‘쿵’하고 나를 황당하게 했으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한편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 것은 또 뭘까. 동안 봐 온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들을 수없이 봐 온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세상은 요지경’을 우리는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무척 공감이 가는 스토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한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읽는 도중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데 이에 동의한다. 사람살이가 얼마나 아픈 것인가를 철저하게 느끼게 했다.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또 하나는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아네트 베닝과 빌 나이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배우들이다. 아들 역의 조쉬 오코너도 아들 제이미의 성격과 부모 사이를 왕래하면서 그들의 중재 역할을 이성과 감성을 반반 섞어가면서 해내는 역할을 참 잘 해냈다. 세 주연 배우들은 섬세하고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냈다. 자존심 강하면서 야무지게 제 삶을 진행해가는 우아한 여성 아네트 베닝은 홀로 되자 송두리째 이성적인 삶을 자포자기하는 존재의 불안을 연기했고 영국 국민배우 빌 나이는 실제 에드워드인 양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자연스러웠다. 내가 읽은 에드워드는 아내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나 또 다른 사랑을 만나 휴식을 취하자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이상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담 사랑은 양분도 가능한가?

 

과연 사랑이란 것은 뭘까.

 

사실 나는 육아와 함께 ‘사랑’을 이미 한쪽으로 밀쳐둔 지 오래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남녀 관계며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여러 관점에서 짚어보게 되었다. 문득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는 단계로 내가 나를 내몰리게 하는 사랑도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어떤 이의 ‘사랑 철학’이 떠올랐다. 그렇담 ‘사랑’은 또 ‘무제’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혼돈’ 혹은 ‘미궁’이기도 하겠다, 사랑이란.

 

클래식 음악이며 시들을 함께 할 수 있어 한편 참 아름다웠던 영화였다. 영화 속 배경 음악 모차르트의 ‘Kyrie - Mass in C minor K. 427’과 예이츠의 ‘한 아일랜드 비행사의 죽음 예견’(An Irish Airman Foresees His Death)은 영화의 오프닝이다. 나는 이 세상 모든 ‘Kyrie’를 좋아한다. 예이츠의 시는 극 중에서 시를 엮은 책을 만드는 ‘그레이스’가 아름다운 영국 남부의 호프 갭을 걸으며 읊는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섬광(Sudden Light)’의 한 구절은 ‘그레이스’의 시 선집 제목으로 오르내리면서 영화 속 인물들의 속내를 동행한다. 로렌스 비니언의 ‘전사자들을 위한 헌시’(For the Fallen)는 세계대전 기념비에 넣어진 것이기도 하다. 시집 편집인이자 제작자 ‘그레이스’는 ‘전사자들을 위한 헌시’를 들으며 자신의 현재를 살핀다. 내게는 아름다운 예술 향유로 멋진 일이었다. 늘 문학에 목마른 나이기에.

 

 

 

아네트 베닝과 아들 제이미가 서로 아픈 마음을 다독여주던 곳, 영국 남부의 아름다운 해안 절벽인 ‘호프 갭’은 꼭 가 보고 싶다. 영화 속 영국 곳곳 아름다운 풍광들은 이 영화를 ‘명화’가 되게 하는 데에 굉장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윌리엄 니콜슨 감독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될 장소를 찾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라고 말했다는데 충분히 이해된다.

 

 

 

 

 

두고두고 되새기면서 다시 보게 될 영화이다.

 

 

 

아마 2주일 전 쯤 봤을 게다. 이 글 쓰느라 다시 생각하는데 자꾸 슬픔이 복받친다. 영화고 현실이고 사는 게 왜 이리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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