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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다는 것
문득 숙인 고개를 들어보니
세기말( 世紀末 ) 행색의 내가 보였다
내가 선물 받은 한 세기의 끝이 내 머리 꼭대기에서 춤을 추고
나는 이미 나를 찾는 이들의 수요에서 멀어져 있었다
차라리 몰락이라면 끝이라는 낱말이라도 자리할 수 있을 것을
거나하게 짓밟고 간 이전 세기의 흔적이
새삼 퇴폐와 향락으로 복원되고
들추고 일어선 철학 의자에서 사람은 이미 그늘이었다
뒤늦게 비린 사상에 매몰된 것을 알아챈 나는 어서
쉰 밥 타령이라도 해서 아랫목의 옆자리나마 빌어 앉고 싶었으나
육신이 먼저 젖은 습성 안에 젖어 들어
나는 미주알고주알 연신 상반신을 흔들면서
사죄를 빌고 있었다
새벽이 저 앞을 달리고 있었다
무서운 거다
낡은 의자에 익숙해진 늙은 몸의 하소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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