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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일터와 관련된 나의 책들을 방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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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업무와 관련된 책, 네 권을 방출하였다. 

 

 

이런 책장을 닮아가고 있다. 우리 집, 나의 책장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일터 업무와 관련된 책 중 네 권을 방출하였다. 방출? 아니다. 나눔을 하였다. 물론 나의 것이다. 내 돈으로 내가 산 것들. , 아니구나, 네댓 권은 선물 받은 것이다. 물려받은 것도 두세 권이 있다. 나 개인에게, 나보다는 어린 연배의 이 방 생활 선배가 나의 서재에 끼워 넣을 수 있게 한, 한정된 선물도 있다. 이 방을 살던 이 방 선배였던 그는 최대한 짧은 시간에 자기 적성과는 전혀 맞은 곳이 아니라면서 일터를 떠났다.

 

이직을 했다는 거다. 내 곁에 서게 하여 나와 비교한다면 육신의 상태나 나이 차나 십의 자리가 달라지는 양을 체크해야 할 만큼의 나이. 후배인 그가 새로운 직업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많은 축하를 퍼부었던가. 이곳을 떠나면서 나에게 준, 그의 내 책들을 보면 가끔 슬픔이 커서 읽는 것도 마음 무거웠다. 이 긴 세월을 이 일터에 붙박여 사는 나에게 그가 채 5년을 넘기지 못한 채 이곳을 떠났다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었다. 나는 여러 번 그에게 말했다. 잘한 거다. 아니다 싶었으니 어서 떠나거라. 잘 살기를, 부디.

 

내 방, 책의 양은 일터 동료들, 어느 방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무게에 부피이다. 내 방은 쌓이고 쌓여있는 책들로 복잡하다. 책상과 의자 한 세트 주변으로 성처럼 빙 두른 책들이 수북수북하다. 마치 내 일이 오직 책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하게 하는 양이다. 책을 읽고 책에 밑줄을 긋고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책을 읽고 소감문을 쓰고 책을 읽고 또 다른 새 글을 창작해야만 하는 직업. 그런 내용이 나의 직업인 듯싶어진다. 내 방의 내 책들을 보고 있으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책의 무거움과 그것들이 차지하는 공간의 미덕을 얼마 전까지 많이 즐겼다. 배가 불렀다. 나 자신이 어찌나 뿌듯하고 든든하던지. 어떤 책은 기어코 읽겠다고, 내 마음을 자극하는 문장에 밑줄을 쭉쭉 그어가면서 생생하게 읽어내겠다고 다짐하면서 구매한 것들이다. 또 어떤 책은 다른 곳에서 읽은 그 책 속 한 줄 문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재빨리 구매한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책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강의 중에 추천을 받은 책이다. 아직 읽지 못한 것들이 제법 된다.

 

책을 사는 비용은 절대로 아깝지 않았다. 책을 사는 행위는 고급스럽게 걸진 것이었다.

'나, 이런 사람이오.'

라는 말을 해댈 만큼 진정 건강한 일이었다. 속된 말 그대로, 책은 나의 마음을 마음껏 살찌게 하는 물건이었다. 나를 무한 욕망으로 길러내는 요물 덩이이기도 했고.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엊그제 월요일이었다. 출근하여 4층으로 직진하여 올라가서는 또 좌회전하여 세 블록을 걸은 후 우회전을 한 방에 들어서니, 나를 콱 막히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나의 방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내 심장을 압박하는 둥근 성이 턱 하니 놓여있더라는 것이다. 앉은 채의 나의 정수리를 딛고 올라설 만큼 쌓이고 또 쌓인 책. 짐스러웠다. 어느 것도 상관하지 않은 채 사 댄 도서 구매를 위한 돈에 생각이 미친 것은 도저히 책을 쌓아놓을 책장이 없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그 이전에는 도서 구매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짐이다.'

라는 생각이 나의 뒤통수에 턱 하니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제, 월요일에는 말이다. 버려야 한다. 아니 없애야 한다. 하다못해 이 책 중 일부는 불을 태워 한 줌 재로 화하게 해야 한다든지, 어디, 공터 담을 쌓을 수 있게 기증이라도 해야 한다. 한 게 기증도 아니 받겠다고 하더라. 태울 터도 없다고 하더라. 3년 내 구매한 것 중, 상태가 좋은 것만 받겠다더라. 최근 들어 알게 된 도서 제거(?) 방법은 폐지 센터에 전화를 해서 도매급으로 가격을 매겨 싸매고 가져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흡이 턱! 기가 막혔다. 이를 어찌 한담. 머뭇거리고 있던 참이다. 이런, 집에서만이 아니라 일터에서도 이런 상태이고 보니 마음이 참 심란했다.

 

일터에서도 꽉 찬 책장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마음 뿌듯했을 책들의 숫자가 이제는 모두 내 정수리에 얹어진 짐이다. 집에 있는 책들은 물론 일터에 있는 나의 개인적인 것들도 어서 버려야 한다. 아니 없애야 한다. 대부분 인문학 계통이다. 내 일터가 전문적인 일을 하되 그 바탕은 인간관계인 직장이라서 책 읽기를 좋아하면 당연히 읽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다행이다.

 

 

어쩌면 나는, 책 그리고 문자의 나열 위에서 고해를 서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지난해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후배가 있다. 요즘 세상에 저런 젊은이가 있을까 싶을 만큼 그녀는 참 소탈하다. 수수하다. 어느 한 곳 꾸민다는 것으로 뒤덮은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입술 한번 유채색으로 바른 것을 본 적이 없다. 꾸밈이 있고 없고로 된 사람의 기준이라 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싶으나 그 후배는 참 알차게 삶을 진행하고 있다고 여겨져서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부러웠다. 그녀와는 사적인 것, 그림으로도 통했다. 그녀를 소환했다. 보다 효과적인 일터 생활을 위해 구매해서 읽었던 도서들을 나눔 하기로 했다. 물론 일방적으로.

 

책, 짐을 제거하는 것도 요즘에는 쉽지 않다. 책을 나눔을 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가끔 어쩌자고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종이책을 찾는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너무 슬프다. 다행히 월요일 아침, 내가 건넨 책을 받아 든 후배는 참 좋아했다. 진심이었다.

 

"혹 모두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니어요?"

이렇게 묻는 나에게

"아니어요. 이런 책을 제가 어떻게 갖고 있겠어요. 잘 읽을 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도 참 상큼하고 이뻤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책을 짐 지기에는 나는 너무 젊지 못하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아, 어제 오후에는 내게 필요한 어떤 물건을 손수 가지고 올라온 또 다른 후배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집 한 권도 나눔을 했다. 

"사인해 줘요. 기념하게요."

"엥? 내가 쓴 책이 아니야. 유명 작가 것.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시집. 사인은요? 그냥 가져가 읽어요."

작가가 아니고 단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구매하여 읽던 것인데 그 후배는 꼭 나의 사인이 필요하다며 졸랐다. 껄끄러워 어서 가라고 내치듯이 보냈다. 사인이라니. 그러나 고마웠다. 오랜만에 맛보는 책과 관련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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