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줄곧 니체로 살았다.
철학을 내가 얼마나 알겠는가마는 나는 차라리 철학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고자 한다. 왜? 그냥, 그럴듯해 보여서. 딱 그것뿐이야. 더 이상의 철학적인 견해라든지 심사숙고라든지 진짜 철학이 사실 내게는 살고 있지를 않거든. 어쨌든, 어제오늘은 일단 철학 속에 몸 담근 채 살아내기로 했어.
니체. 니체의 철학 속에서 허우적거려 보기로. 내가 철학의 세계 속으로 입실할 때면, 나는 내 몸은 철학 속에 입실시켜 놓고서 '입실'이 아닌 '침잠'이라는 낱말과 놀게 되는데 그 재미가 참 세상 팍팍한 삶으로부터 탈출한
나에게는 괜스레 구부정해져 있는 내 중추 신경들을 쓰다듬을 수 있는 순간이 되거든. 말하자면 내가 철학을 생각할 때면 나는 우선 '침잠'이라는 낱말부터 살려고 해. 나의 철학에는 드러내놓고 활기에 찬 행위가 이어질 '입실'보다는 두 눈 내리깔고 뭔가 고상한 척 철학자의 흉내를 내기에 알맞은 '침잠'이라는 낱말이 더 어울린다고 여겨지거든.
침잠. 그리고 沈潛. 나는 잠길 침, 잠길 잠의 한자어를 참 좋아한다. '침'은 그냥 잠기는, 물리적인 순간 속도에 '가라앉히다'라는 눈 깜짝할 새를 고려한 뒤 보다 차분하게 잠기는 정도의 수더분한 뜻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때 가라앉힘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을 의미하지. 느릿한 속도전이 가미된 잠김은 무작정 잠김과는 역력히 다른 뜻을 함유하고 있지 않은가. '사고(思考)'가 지닌 판단이랄지 일말의 구상을 조금이라도 더할 가능성을 지닌 힘.
잠은 마음 혹은 뭔가를 가라앉히되 한편 일련의 리듬을 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자맥질을 포함하지. 물속에서 팔과 다리를 놀리면서 떴다가 이내 가라앉히는, 설령 위험한 상황을 담보로 하더라도 이쪽저쪽 담갔다가 빼보기도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의 놀림이 일부 가능하다는 것. 바로 내리꽂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각도로 전진해 보고 후퇴하기도 하고 꼬라박아본다든지 상공으로 치솟을 수 있는 것도 가능할 수 있는 그런 상태.
침잠은 이내 겉으로 왈왈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물속 깊숙이 때에 따라 땅 속 깊이, 가는 희망을 곁에 앉혀두고 다른 방향으로 푹 가라앉거나 숨는 것이 될 수 있겠지. 이 행위는 이내 마음이 가라앉혀진 후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함으로까지 나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일 수도 있으니, 비록 조금 아득하고 무거운, 때로 살벌하기까지 한 분위기가 되더라도 성정 깊고 차분하며 고아한 곳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 충분히 철학스럽지 않겠는가. 너끈히 이 세상 짊어지고 나설 명분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침잠의 세계가 참 좋다. 침잠의 세계를 살고 싶다. 곧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는 삶을 말한다. 이를 이유로 연이틀 자라투스트라를 안고 살았다. 그의 친구인 독수리와 뱀도 초대했으며 그에게 안온함과 동시에 구걸의 세계를 생각나게 하는 빛과 빛의 여정도 함께 했다. 자라투스트라처럼 나도 저 아래 어딘가로 어서 내려가고 싶기도 하다. 넘쳐흐르려는 이 잔을 축복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서는 어서 그 잔이 다시 비어지길 바란다는 반사적인, 모순의 바람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이미 자라투스트라를 살고, 살아왔으며 니체를 살고 있으니. 니체에 매달린 채 발버둥을 치면서 어제오늘 나고 살고자 안간힘을 썼다. 가련한 나.
내일 일터에서 다시 또 보게 될 인간 둘이 싫다. 더는 살피고 싶지 않다. 미만의 인간, 아니면 병을 달고 사는 인간 둘. 그러므로 가련하다느니, 안 됐다느니 등의 낱말도 올려놓고 싶지 않다. 그냥~
냅다 갈기는 식으로 일기를 썼다. 지. 쳤. 다. 사람때문에 미치겠다. 이 상황에 느닷없이 소환된 니체께서 얼마나 한심스러울까.
그렇다 한들 니체여, 당신의 부르짖음이 삭막해질 때의 나에게는 많은 힘이 되더라. 당신이 내놓은 한 줄 글들이 나를 살게 하더라. 일어나게 하더라. 다시 살아가고 싶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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