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가 되어라.
- [홍사훈의 경제쇼] 송길영ㅡ핵개인의 시대가 왔다! 노동은 끝났다. 은퇴도 못한다ㅣKBS 231018 방송' 강의를 듣고
그리운 홍사훈의 경제쇼! 경제라고는 거의 갯벌을 뻑뻑 기는 정도에 가까운 내가 가끔 듣던 방송이 있었다. kbs <홍사훈의 경제쇼>. 화초에 물을 주는데 화분 사이 걸쳐놓은 4B 연필이 눈에 띄었다. 문득 생각나는 분, 홍사훈. 그는 KBS에서 '경제쇼'라는 프로그램명을 내걸고 경제 뉴스를 진행하셨던 분이다. 홍사훈 선생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실까. 얼마 저 정년으로 프로그램을 그만두셨다. 뭐, 정년이라도 계속 초빙으로 모시면 진행을 못할 것 없다 싶었으나 그만 끝마치셨다. 그의 오른쪽 귓등 위로 항상 걸쳐져 있던 연필 때문이리라.
선생님은 가끔 자기 일상을 말씀하셨다. 오른쪽 귓등에 걸린 연필로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건축 관련 일, 즉 건축 설계 혹은 목재 공방 일이나 운영 등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가 고백한 것이 목수질을 취미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재 공방에서 일하는 것. 그런데 '목수질'이라고? 목수일을 비하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천만에, 만만에, 아니다. 나도 하고 싶은 일이 목수일이란다. 나는 톱질하기를 참 좋아한다.
낱말 끝에 '질'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에 대해 말하자. '질'은 동사 '질-하다'의 어근이다. ~질하여, ~질해, ~질하니 등 일상 언어활동에서 우리가 흔히 동사로 쓰는 낱말이다. '질하다'는 동사 '질탕하게 놀다'로 길게 풀이된다. 그리고 '질탕 跌宕/佚蕩'은 명사. 신이 나서 정도가 지나치도록 흥겨워하는 짓 또는 그렇게 노는 짓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홍사훈 선생님은 공방에서 나무를 켜고 자르고 붙이면서 탄생하는 목재 물건들을 흥겹게 만드는 '질'을 하기가 흥미 더하기 취미라고 하셨다. 사실 부러웠다. 그러므로 '목수질'은 비하가 아니다. 내게 목수일보다 목수질이 훨씬 진짜 '질'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어릴 적 언어 습관 안에 '목수질'이 더 빨리, 더 강력하게 청각을 통과했기 때문이리라. 고상함이 물씬 풍기지 않는지.
문득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질'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곧 정년이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선생님의 마지막 방송일에 꽤 슬픈 마음이 강하게 일어 마음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다행히 즐겨 하는 목수질이 있는데 뭐 어떠냐고 하셨다. 가시던 길까지 민생을 걱정해 주셨던 선생님. 즐거운 일을 하실 수 있으니 그래도 괜찮으시겠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는 낱말이자 구절이자 문장이 얼마나 소중한가. 가수 이적이 부른 '다행이다'가 유명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다행'이라는 낱말을 참 좋아했다. 내 해석으로 '다행이다'라는 것은 이렇다. 어떤 일에 용기백배하여 박차고 나아가 남보다 먼저 선점해서 일을 저지르는 일을 못 하는 쫌생이 기질의 나. 내게는 늘 적당한 정도의 만사형통을 기다리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무슨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는데 크게 지나치지 않다 싶으면 '휴~' 혹은 '다행이다'라는 낱말 혹은 문장이 있어서 마음을 놓게 된다.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삶을 연명해 왔던 셈이다.
이제 나이 꽉 찬 지점에 서고 보니 새삼 '다행이다'가 정말 다행스럽다. 하지만 내가 홍사훈 선생님처럼 즐겨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다행이다'가 온전한 다행이 되질 못한다. 어서 내 생 말년이 다행일 수 있는 일을 하나 만들어야 할 텐데.
오늘도 틀림없이 토요일이면 한 나절 넘게 잡아먹는 화분에 물 주기 등 화분 속 화초 단속에 나섰다. 일을 마치고는 생각난 김에 홍사훈 선생님 경제쇼에 패널들의 강의가 진행되는 전문가 강의를 한편 듣자고 클릭했다. 내가 '미래학자'라고 지칭하는 통계 즉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점치는 송영길 선생님의 강의가 붙잡혔다. 그의 한 시간 여 강의를 듣고 보니 주제가 이렇다.
'장르가 되어라'
세상에나, 한 개인에게 장르가 되라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언사이냐. 일상의 하찮고 좀스러운 일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지를 못해 안타깝기 짝이 없는 지경인데 장르가 되라니. 양식, 갈래, 형식, 형태 등의 커다란 틀을 품고 있는 것이 장르이지 않은가. 틀을 품은 일정한 그리고 튼튼하고 단단하고 그럴싸한 폼을 유지해야 하는 것에 어찌 일반인 개개인이 추켜들어 나설 수 있으랴.
곰곰 생각해보니 이는 일종의 덕후질 끝에 마련할 수 있는 자기만의 색깔을 지니라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읽었던 '죽어가면서 후회하는 것' 몇에 들어 있었던 항목이기도 하다.
'일생을 살면서 단 하나의 덕후질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홍사훈 선생님처럼 정년으로 공식적인 업을 끝내더라도 끝냄과 동시에 파묻혀 해낼 수 있는 어떤 일거리를 있어야 함을 말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오늘 강의는 앞으로의 사회는 단순한 핵가족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고정관념으로 잡혀있는 방식의 전통적인 개인주의 사회도 물론 아니라는 것이었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된다는 것. 철저하게 '나' 혼자로만 살아가는 세대. 그런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각자 삶을 연명해야 하니 은퇴도 없을 것이란다. 그러므로 어떤 질, 신나고 흥겹게, 한 시간이나 소요되는 것이 마치 일 분처럼 재빨리, 한 달이 하루처럼 여겨지게 하고 마는. 미친 듯이 덤비어 일하면서 사는 어떤 새로운 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장르가 되는 것은 경제로 직결된다. 장르가 되면, 한 개인이 하나의 건강한 틀을 다져 진행시키면, 이는 당연히 독창성을 띠는 핸드메이드가 된다. 경제 선순환의 열쇠가 된다. 아, 이제라도 찾아보고 덤벼들어 보고 시작해 볼 일이다. 내가 덕후가 되어 내 육신의 에너지와 영혼의 몸부림을 담아 해낼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 할 때다. 그래, 늦지 않았다. 어서 찾고 어서 빠져들어 보자. ~질, 그리고 덕후질. 마침내 내가 곧 장르가 될 수 있는 일. 그것이 무엇일까.
홍사훈 선생님은 어찌 사실까. 궁금하다. 어쩌다가 한 번씩은 대중 매체 혹은 개인 유튜브에라도 초대 손님이 되어 얼굴 내미시면 참 좋겠다. 사람 마음 훈훈하게 쓰다듬어주시는 말씀이라도 있으시면 좋겠다. 건강하시기를!
* '덕후'를 그냥 썼다. 일본어 '오타쿠'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이미 우리 언어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므로 이 낱말을 그대로 사용했다. 사실은 내가 오타쿠에 가깝다. 거의 모든 생활이 일터와 집이다. 나는 이를 즐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별로이다. 그래서 '뭣'도 안 한다. '뭣'이 궁금할 거다. '뭣'을 맞히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이럴 때는 이벤트를 진행해야 할까? 해보고 싶다. 블로그에서 이벤트를 진행하는 방법을 알려주실 분은 손을 들어 알려주십시오. ㅋ
'라이프 > 하루 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 여기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어요. (52) | 2023.12.17 |
---|---|
스팸 댓글 블라 블라 (21) | 2023.12.13 |
죽어도 좋을 이유가 없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 (43) | 2023.12.08 |
짬밥이 생각나는 하루 (42) | 2023.12.02 |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내야지 (38) | 2023.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