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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죽어도 좋을 이유가 없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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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을 이유가 없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

 

오랜만에 붓펜으로 썼다.

 

 

며칠 전 영화에서 만났던가. 아니면 읽던 책 귀퉁이에서 눈에 띄어 담았던가. 오랜만에 컴퓨터 앞, 캘리그라피를 끄적거리려는데 컴퓨터 자판 앞에 놓여있는 글귀가 이것이다. 이미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여겼는데 당시 퍼뜩 나를 꽉 물었던 글귀였나 보다. 글귀가 죽지 않고 내게 살아서 왔다. 죽어도 좋을 이유가 없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 나는 여러 번 입 안에서 혀에 침을 뱅뱅 돌려가며 부드러운 공간을 만드는데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 이미 긴장한 채 달달거리는 혀의 둘레를 돌며 소리를 내어 읽어냈다. 양에 차지 않는다. 입 밖으로 소리를 꺼내어 다시 읽어본다. 죽어도 좋을 이유가 없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용기 가득한 문장이다. 살기 어린 문장인 듯싶은데 한편 결사적으로 살아내자는 굳센 다짐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글인 듯도 싶다. 죽어라고 산다면 기어코 살아야겠다는 다짐 이상으로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는 거다. 눈 앞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속 좁은 것들에게 기운을 내주지 말라는 것일 거다. 부디 봐야 한다면 큰 것을 보거라. 사람을 단단하게 지켜내줄 곧은 가락을 붙잡아라. 기어코 해내겠다는 악다구니를 가지라. 악을 쓰라, 발버둥을 치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내리라는 강다짐을 열어 보라. 어떤 일이 있어도 너 살 듯 나 살겠으니 우리 죽어라 죽어라 버티면서 살아내자는 것일 거다.

 

오늘도 일터 제1의 출근자였다. 또한 맨 마지막에 가까운 퇴근길이었다. 억울했다. 왜 내가 지닌 능력은 이런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렇듯 고달프기만 하는가. 어쩌자고 내가 가진 능력은 이리도 짧고 가늘어서 맨날 뒤처지는가. 나보다 훨씬 먼저 퇴근한 자들의 현장을 알지 못하기에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훌륭하게 보내는 하루 생활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분명 제 때 출근해서 제때 퇴근을 한다. 그들이 내놓은 일의 결과물 또한 내가 내놓은 것과 같다. 나는 그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을 그들은 퍼뜩퍼뜩 날개를 날고 새들이 날아오르듯 재빨리 해낸다. 무엇의 차이일까. 

 

분통이 터졌다. 나는 왜 삶의 순환고리를 꽉 부여잡지 못하여 이렇듯 저 아래 가라앉아 있는가. 완전한 어둠의 검은 숲속 길을 걷듯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으면서 내 한미한 능력 부족을 한탄했다.

'왜 이렇게밖에 살지를 못하냐.'

나는 나를 떠난 제3 자가 되어 나를 객관적으로 평해보고자 많은 시도를 해 왔다. 하나 마나이다. 그것이 그것이나. 뭐, 특별한 이유를 덮어 씌울 요령도 없다. 노력은 했다. 그러나 그만 그만하고 말더라. 결국에는 나고 또 나이고 나이더라니.

'이 긴 세월을 살아왔는데도 나는 왜 이렇게 업무 처리에 능숙하지 못한 것인가. 디지털의 침범 때문인가. 당연히 최상의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일터 공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할 듯싶은데 여전히 저 아래 골짜기에 내 몸이 뉘어져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접신 붙어오듯 그렇게 내게 고요히 와서 바짝 짐을 부리는 묘령의 신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만 대접신의 기에 눌려 아등바등인가. 죽어도 좋을 이유가 없다면 살아야 할 필요가 없는 '우리'의 자리가 나에게도 해당이 될까. 자정 다 되어가는 시각 오늘 뒤늦은 시각에 블로그 일기를 올리고서 컴퓨터를 닫자 했는데 한 글자 일기를 위한 구절을 만들기 전에 이 글귀가 나는 붙잡는다. 책 혹은 영화에서 왔다가 잠시 내 캘리그라피 위에 머물렀다가 내게 꼭 안긴 문장. 일단은 십칠 세 소녀 시절처럼 아직 이렇게, 귀하다 싶은 문장 한 줄 꼭 부여잡고 나를 하소연할 수 있는 서정과 서사를 내가 안고 있다는 데에 다행이라 여기자.

 

희망이 있다는 거다. 새삼 이런 문장에 꽂히는 나 자신이 새롭게 느껴진다. 나에게도 더 굳건하게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부터 일백이라는 숫자를 가로로 펼쳐놓고서 한가운데 기준으로, 정확한 너비를 둘로 나눈 동강이 중, 그중 한쪽은 벌써 살고 말았다. 반으로 자른 다음 0과는 영 멀어지고 백 쪽으로 차츰 가까워지고 있는 나를 의식하면서 대부분 욕심을 접었다. 아니 접었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런 글귀에 붙잡혀 며칠 컴퓨터 앞에 놓고 두고서 차마 버리지 못한 채 읽고 또 읽고 있었다니. 해석하느라 바빴다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래, 한편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생의 정리편'을 기웃거리면서 가까스로 살아낸다고 여기던 삶 속에서 죽어도 못 죽어, 너 아니 우리 아니면 못 살아 식의 문장에 집착하다니. 욕심이라는 것이라고는 패대기치고 싶지 않다. 사람이라는 것이 참 징그럽기도 하다지만 아직 삶에 꿋꿋이 매달리고 있다는 산 결과일 수도 있으니 기뻐하자. 오늘과 내일과 모레를 또 푹 쉬고서 어느 날에는 꼭 가장 먼저 퇴근하는 최첨단의 여자가 되어보자. 어서 진짜 밤을 맞고 싶다. 내일 아침에는 마구 자고 싶다는 풋풋한(?) 욕심까지 드니. 이것 참 진정 다시 살고 싶다는 것인가.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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