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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코스모스 - 임윤환의 피아노 소리에 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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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임윤환의 피아노 연주가 계속되고 있었다.

 

 

 

오호, 오늘, 좋은 날이 되려나 보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시작된 잠이 아침 7시 40분에 끝났다. 물론 6시 알람에도 눈을 떠서 해제한 후 다시 잠들었다. 정식으로 잠 깨기 단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피아노 연주가 들렸다. 라흐마니노프였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임윤환이다.

'왜 임윤환?'

아마 어젯밤에는 '수면 명상 음악' 이전에 임윤환을 듣자 했는데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오늘이 기대된다. 이 아름다운 음악이 나의 오늘을 열어주지 않았는가.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서 가져옴

 

 

 

 

어제 컴퓨터를 만지지 않는 대신 영화 시청, 여러 유튜브 강의를 시청하였다. 어느 강사의 말이 떠오른다. '긍정적'이라는 낱말의 원뜻은 무조건 예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다지 주의 깊게 들은 내용이 아니라서 구체적인 내용은 더 없으나 어쨌든 막무가내 '오, 예'를 하라는 것이 아닌 듯싶어 반가운 내용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라 여겨진다. 왜 이 생각이 났을까. 

 

오늘 오전에는 경제 강의 몇을 들었다. 도무지 제목만 있고 주제를 알 수 없는 내용에 질려 유튜브를 끝내려고 했더니 내가 키운 '알고리즘'이 유튜브 닫기를 막았다. 며칠 전 다 늙어 인문학 강의(물론 유튜브)를 듣고 있다는 언니의 전화가 있었다. 효자 아들과 효녀 딸을 둔 덕분에 언제 떠날지 모를 세계 여행 준비를 위해 세계 곳곳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말 끝에 눈물 그렁그렁할 듯싶은 목소리로 내게 던진 문장이 '미안하다'였다. 이른 결혼으로 혼자 벌이로 살림이 궁했던 때, 직업 전선에 뛰어들자 하고 나선 곳이 '웅진출판사'였단다. 그리고 내가 첫 손님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사 줘서 고맙다."

 

내가 샀던 것은 비디오테이프와 책이었다. 그 이름도 거창한 <코스모스 COSMOS>. 저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것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함께였다. 신입 직장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다. 언니는 책이라면 환장하는 내게 가뿐하게 책을 사게 했으나 그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나 보다. 사실 나는 두 물건을 참 알차게 사용했다. 

 

우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신세계였다. 당시 브리태니커만큼 세세하게 세상 만물을 안내해주는 백과사전이 없었을 때다. 내게 고급 도서였던 그것은 내 아이에게도 대단한 물건이었다. 세상 물상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학습터였다. 볼펜이며 연필을 꺼내어 아무렇게나 찍찍 그어가며 동물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이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제 맘대로 거둔 물건이어서 쉽게 생각되었나 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탐구 보고서를 작성할 때 또한 열심히 사용했더랬다. '열심히', '보고서', 굉장한 프로젝트가  떠오를 텐데 그것이 아니다. 그냥 숙제 정도의 보고서에 사진이 필요했는지 이 책의 부분 부분을 오려붙여 제출했다고 했다. 그냥 웃고 넘어갔다. 제 어미 쥐꼬리 월급을 받으면서 살 적에, 콩고물 묻은 떡 한 개 먹는 것도 조심스러울 때 큰돈 지출하고 산 물건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학문'에 뜻이 깊어 제멋대로 낙서해댄 책이고 보니 너무 해져 구매하느라 들어간 돈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비디오테이프 <코스모스 COSMOS>. 요 녀석은 아마 열대여섯 개쯤, 아니면 스무 개가 넘었던가. 비디오테이프들과 두꺼운 책자 한 권이 모여 한 세트를 구성한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칼 세이건'의 저작이 그때 당장 내 눈길을 잡아끌지 못했다. 나는 그야말로 문과 태생이었고 문과 소녀로 성장하였고 여전히 문과 여자이다. 두고두고 쟁여놓았다. 자고로 책은 한 권 한 권 사서 따박따박 읽어내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사는 내게 스물네 권의 백과사전도 무리인데 큰 덩치의 비디오테이프까지 구매했으니 제법 힘들었으리라. 일단 내가 먼저 사줘야 계속해서 팔지 않을까 싶어 구매했던 듯싶다. 

 

그때에도 책이며 비디오테이프며 음악 테이프들을 아끼지 않고 사고 보고 들었지만 유독 <코스모스>는 정이 가지 않았다. 함께 들어있던 책자도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물건들, 보고 있자니 들어간 돈이 떠오르고 내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날, 그러니까 비디오테이프의 시절이 가고 DVD며 CD 세상이 도래하자 널브러진 채 나뒹구는 비디오테이프와 음악 테이프들을 버려야만 했다. 음악 테이프 몇과 아이 어릴 적 수십 번 봤던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 몇을 기념 삼아 두자고 다시 집어 들었는데 이녀석, <코스모스>는 기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었다. 푼돈 받고 근무하던 시절 거금을 들여 산 것인데 단 한번도 안 보고 버리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옛 말에 일곱 번 재고 난 후 천을 째라 하지 않았던가. 덥석 산 것도 문제지만 버리고 나서 후회할 것을 생각하니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커다란 바위 안 듯 다시 안아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직 건재하고 있는 기계(비디오테이프를 넣어서 보는 기계 이름이 뭐였던가?) 를 가동하여 대작 <코스모스>를 시청하였다. 단번에 한 세트를 모두 봤다. 

 

와우! 나는 그만 <코스모스>에 쏙 빨려들고 말았다. 우주의 탄생, 은하계, 먼지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하는 과정, 상상의 비행선을 타고 여행하는 우주, 태양의 삶과 죽음 등. 작가는 유람하고 있는 우주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얼마나 비좁은 골짜기인지 떠오르게 했다. 하루하루, 꺼이꺼이 살아가는 내 삶은 얼마나 초라한가. 내 속 짚어 남의 말 한다고 나는 동안 내 좁은 이기심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내 생활은 늘 눈앞에 당장 벌어지는 일에만 급급한 채 살아왔다. 아, 이 거대한 지구가 '한 점'에 불과할 때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나는 티끌도 되지 못하겠구나. 지구 저 너머 여러 행성에 사는 생명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칼 세이건'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내 삶은 비굴한가. 옹졸하기 그지 없어 쥐고 펼 줄도 모르는 내 삶은 무엇인가. 두꺼비 콩대에 올라 세상 넓다 하고 살아온 내 삶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여러 생각으로 한동안 끙끙댔던 기억이 있다. 이후 나는 '칼 세이건'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유작이 된 영화 <콘택트 CONTACT>를 아마 다섯 번 넘게 봤을 것이다. 여자 주인공 '앨리 애로위'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도 존경한다. '응답하라 외계인'을 외치던 그녀. 그녀의 생은 그냥 영화배우가 아니다. 꼿꼿하게 정립된 그녀의 자아 정체성이 짙은 삶이 참 좋다.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있었던 책자 <코스모스>도 읽었다. '칼 세이건' 서거 10주기를 기념하여 출판된 양장판 <코스모스>도 사서 읽었다.

 

아침에 다시 유튜브를 켜서 들은 강의는 <코스모스> 관련 강의였다.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이럴 때 나는 생각한다. '좀 더 많은 돈을 좀 벌자. 우주 여행을 가게 될 수 있어. 혹시 알아. 내가 책 <코스모스>를 읽을 때 적어두었던 외계인과의 첫 만남에서 나눌 인사말을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잖아.' 당시 써두었던 일기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적어둔 인사말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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