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죄를 사하여 주소서!
- 녀석들은 자식을 낳기 위한 준비를 어디에서 하고 있을까?
종일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제와 다르다. 살풀이하듯 제법 힘이 거칠다. 안고 있는 냄새도 다르다. 붉은 대추 걸쭉하게 우려낸 따듯한 차가 생각나게 한다. 몇 유리 창문을 닫았다. 진회색 수분을 가득 안고 있는 하늘을 보니 며칠 전 내 집 한구석을 빌려주라고 덤벼들던 녀석들이 떠오른다.
그곳을 확인한다. 사납게 여러 물건이 뒤섞여 있다. 거실 에어컨 실외기 자리이다. 안방에 설치한 에어컨으로 충분하여 거실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장소를 비워뒀다. 그곳은 마치 오물 창고라도 되는 양 난리다. 요란 법석이다. 나뭇가지들, 세탁소용 옷걸이들, 우산, 화분 걸이 등 날카로운 여러 물건을 단 한 가지의 규칙도 전제하지 않은 채 쑤셔 박아 뒀다. 주로 날카로운 것들이다. 누구 손님이라도 와서 이곳을 들여다보게 되면 나는 꼭 긴 이야기를 펼쳐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사스’와 ‘메르스’로 이어진 전염병은 인간사를 시끄럽게 했다. 질병의 원인은 늘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궁리 끝에 내놓은 원인은 동물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지목된 것은 조류였다. ‘청결’이 중요시되었다. 평소 청소하는 것을 월중행사로 살아가는 나도 ‘사스’와 ‘메르스’ 후 한동안 주중 행사 정도로 애써 변화를 시도하였다. 직업상 목 관리가 중요한 나는 특히 호흡기를 보호해야 해서 전염병이 올 때마다 질색을 한 채 꽁꽁 목을 싸매고 다녔던 기억도 떠오른다.
오늘 같은 날이었던 것도 같다. 몇 년 전이었을까. 그들의 ‘귀향’ 본능을 확인할 수 있으니 일이 벌어진 것은 아마 5년 안이었던 것 같다. 에어컨 실외기 쪽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솔직히 아파트의 뷰니, 뭐니 하지만 평소 베란다에 나와서 차분하게 바깥을 내다볼 시간이 여의치 않다. 제아무리 베란다 가득 화초를 키운다지만 주중에 베란다에 나와 차분히 이것저것 들러 볼 여유도 찾기 어렵다.
제대로 찾아든 것이다. 녀석들은 ‘이 부부는 틀림없이 우리가 숨어들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야’라고 사전 답사를 철저히 했을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가까이 가 보니 바닥 구석에 비둘기 한 녀석이 똘망똘망 두 눈동자를 굴리면서 앉아 있었다. 너무 놀라 ‘아아악~’ 소리를 질러대면서 방법 창을 두들겼으나 꼼짝하지 않았다. 뒤늦게 돌아온 ‘또 한 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내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이미 알을 낳아 있는 거야. 제 새끼 품고 있는데 나가라고 하면 되겠어? 올해는 저기서 새끼 낳아서 키우라고 좀 봐줘.” 이후 수컷 비둘기는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어찌하여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이들의 날갯짓이며 울음을 듣지 못했을까. 괴이한 일이었다. 이후 녀석들은 두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이 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조용히 그들의 살림을 인정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날 수 있게 되자 녀석들은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괘씸한 녀석들. 버린 밥으로 잉어를 낚듯 아무 밑천 들이지 않고 새끼 둘을 키워 날아갔군. 동안, 벙어리 예장(신부가 신랑으로부터 받는 혼인 편지) 받은 듯 즐거웠겠구나.
바로 청소했어야 하는데 주중이라서 못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태풍이 바로 왔다. 오늘보다 한참 지난 날이었을 것이다. 아마 9월이었지. 비바람 속에 실려 실내로 들어오는 바람에는 비둘기 가족이 남긴 오물의 휘발성 냄새로 견딜 수가 없었다. 텁텁한 여름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에 촘촘하게 습기에 합류한 날짐승의 살냄새가 징그러웠다. 태풍은 너무 강해서 실외기 공간에 얼굴을 들이밀고 몸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조류인풀루엔자’, ‘아프리카 돼지 열병’ 등이 떠올랐다. 당장 치우지 않으면 내 온몸이 불덩이가 될 것 같았다. 바른 숨소리를 되찾기 위해 엄청난 열량이 필요하여 결국엔 병원으로 내달려야 할 것 같았다. 태풍 속에 시작한 청소를 두 시간은 넘게 했을 것이다. 새끼 둘을 앉혀두고 온갖 음식들을 가져와 먹이던 비둘기들의 정성에 탄복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어미 비둘기를 처음 발견했던 날 악다구니로 몰아붙여 바깥으로 날려 보내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요리해서 부지런히 내 앞에 대령하기는 즐겨 하나 청소는 아예 나 몰라라 하는 ‘또 한 사람’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이후 해마다 이 비둘기 부부는 때가 되면 꼭꼭 우리 집에 와 세를 내달라 한다. 내게 무료 임시 서식처를 강요한다. 신비스러운 일, 고상한 행위, 더없이 고귀한 일을 저지를 테니 기꺼이 양보해달라고 조른다. 당신네 몸 직접 붙여 사는 곳도 아니고 드넓은 곳 한 귀퉁이 좀 내달라는 것이 그리 어렵냐며 협박을 한다. 예닐곱 날을 왔을 것이다. 꺼이꺼이 구슬프게도 울어대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왔다. ‘채재쟁챙 채재쟁챙’, 방충 문을 두들겨 날려 보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는 날카로운 머리 부분이 세워지게 하여 장 우산을 두 개나 더 꽂았다. ‘여전히 ’ 코로나19‘의 철이란다. 다른 곳으로 가 보렴. 미안하다’를 내놓으며 나는 용서를 빌었다. 사실 나는 그 후 두 번이나 녀석들이 낳은 알을 훔쳐 와서 버렸다. 물론 며칠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고 ‘무언의 제’를 지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영화 '리미트리스'의 '브래들리 쿠퍼'를 그렸다. 이 앞 내용으로 올렸다. 다음에는 정면 모습을 그려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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