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털이라도 함께 있어야 추위를 견뎌내겠지요.
나에게 반절 자유가 주어지는 시간이 있었다. 몸이 어떤 공간, 그곳에 배치되었어야 했다. 내 온몸 곳곳, 모세혈관과 신경세포가 파이팅을 외쳤다. 아, 신나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나만을 위한 시간. 일터 꽉 찬 하루에도 그나마 가끔씩 주어지는, 하던 일을 어차피 포기해야 하는 시각이었다. 다만 이분의 일의 자유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나를 기쁨으로 흠뻑 젖게 했다. 반 자유의 시간. 이런 시간이 나에게는 가끔 가능하다. 몸이 매어있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할 수 있는 시간.
휴대폰을 멀리하려고 애를 쓴다. 오늘, 이 같은 시간, 반자유의 시간에는, 반이 얽매어져 있는 나의 시간, 나머지 반의 자유는 철저하게 조정하여 생활하고자 한다.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의도가 있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해내고자 노력한다. 그렇게라도, 그런 시간이라도 꽉 붙잡지 못하면 나의 일상은, 나를 위해서는 영점의 낮을 살아야 한다. 나의 나태, 타성이 된 나의 게으름에 성수를 부어서라도 부디 반자유의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알차게 지내자.
해당 공간의 구석지, 오른쪽 귀퉁이에 앉아 간단한 서류 정리 두 품을 우선 처리하였다. 다음 일로 어떤 것이 좋을까 하며 고개를 돌려 오른쪽 하늘을 쳐다보니, 공간 밖으로 머리 부분과 허리 부분까지를 보여줄 수 있는 초록의 나무들이 있었다. 초록 유의 담이 약간 이지러진 것까지 보여주는 것에서 멈췄다. 어떤 보호 구역임을 표시하는 안내판이 내가 볼 수 있는 하늘의 4분의 1 정도를 점령하는 너비로 세워져 있기도 했다.
건물들의 윗부분, 꼬마 빌딩들의 상체 몇, 내가 볼 수 있는 하늘의 반이 가려졌다. 하늘은 지금의 나와 똑같은 신세이다. 온전히 볼 수 없다. 별을 보고 달을 보기 위해서는 집을 나와야 할 때도 있다. 상당한 거리를 걸어 나와야 정확한 달의 존재 인식이 가능하고 반짝이는 별의 실체가 확인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사랑하는 달을 퇴근시간이면 확인하려고 노력하곤 한다. 하여 새벽녘에 깨어나 일부러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이상 분명 그믐의 달은 눈에 담을 수 없다. 불면을 사는 나, 조금만 부지런을 떨어도 그믐달을 볼 수 있을 텐데 토끼의 완전체를 확인할 수 없는 달은 늘 서글프다. 보름 아닌 달들은 토끼도 살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가 내 젊음의 어느 날, 대학 건물의 눈 벌판을 걸으면서 확인했던 토끼의 방아 찧기이기를 확인한 후 보름이 아닌 달들은 늘 서글프다. 그러나 그깟 것, 아무렇지도 한다. 달은 달이면 된다.
언젠가 지인이 한밤중에 전화로 하던 말이 떠오른다.
"많이 보세요. 무엇이든지 많이 봐요. 특히 하늘을 많이 보세요. 나는 밤하늘의 별들과 달을 보면 인생사 화가 풀려요.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경험도 했지요."
지인이래야 워낙 사람 만나는 것 꺼리는 내게 지인은 다른 이들의 방송 친구 정도였다. 마치 나를 꿰뚫는 듯 살아내는 요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무척 줄었다. 바쁘다는 핑계는 답사 이후 성실하게 행하면서 사그라질 것이다. 잠깐씩이라고 기지개 켜듯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것이 하늘인데 왜 이렇게 보는 것에 인색해졌을까.
반절의 여유가 가능한 시간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서 내 삶을 되돌아본다. 그이는 하늘을 쳐다봄과 동시에 어떤 마술을 부렸길래 들끓던 화가 녹아내렸을까. 내게는 왜 그런 마법을 부릴 힘도 없을까. 하나마나한, 무의미마저 생성될 수 없는 생각 끝에 떠오른 달의 시간이 있다.
대학원 시절이었다. 논문을 써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전공도 하지 않은 주제에 어찌어찌 벼락공부를 해서 원하던 과의 대학원 입학이 가능했다. 내가 다닌 대학원이라는 것이 내가 쓰려고 하는 논지의 글을 써내면 되는 곳이었다. 비슷한 공부를 했지만 그 분야의 전문적인 공부를 해낸 것은 아니어서 무지막지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루 두세 시간을 자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나는 젊은 객기를 발산하노라 대학의 눈동산 안 벤치에 앉아있었다. 나는 눈의 내려앉은 으뜸빛들을 확인하고자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달은 영원히 그곳에 그 모습으로, 그 크기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쳐줄 밝기로 자기 자리를 고정시켜가고 있었다. 새로운 주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곳 보름달 속에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었다네. 나는 겁이 날 만큼 쌓이고 또 쌓이는 눈밭 한가운데에 앉아 마냥 달 속 토끼 부부를 감상하였다. 무서움이며, 추위도 모두 잊었다. 한참 항의와 기대와 관계 회복과 아니 늦지 않았으니 돌아오라는 언어를 퍼부으면서 하늘을 향한 부족함을 하소연했을 것이다.
나는 그만 위험을 알리는 경비 할아버지의 벌컥 화내시는 목소리에 기가 죽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일어났다. 나는 두 다리가 얼어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였다. 부리나케 대학 여직원 둘을 함께 불러왔고,
"괜찮아요. 달은 늘 그런 걸요. 달은 제 명에 살아나지를 못할 겁니다. 제가 인식하고 있었지요. "
빼빼 마른 쪽의 여직원(혹 사서였을까?)이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저, 금방 방아 찧는 토끼네를 봤어요. 진짜로요."
"글쎄요, 달도 추울 텐데 달은 누구 있어 이제나 저제나 알몸으로 나서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 달도 그렇지요? 그런 달에 토끼라도 있어야지요. 오늘 같은 추위에는 토끼 털이라도 있어야 달도 덜 춥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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