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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트리 오브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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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 오브 피스 Trees of Peace 2022. 06.10.

- 견디려는 자들의 합은 시대의 악을 이긴다. 네 여인의 뭉침이 세상의 검은 힘을 뚫는다.

 

 

대표 포스터 영화 홈에서 가져옴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인디 영화

 

감독 아란나 브라운(Alanna Brown)

아닉 역의 엘리아네 우무하예르(Eliane Umuhire)

자넷 역의 카마인 빙와(Charmaine Bingwa)

페이튼 역의 엘라 캐넌(Ella Cannon)

무테시 역의 볼라 콜레오쇼(Bola Koleosho)

프랑수아 역의 통가이 아놀드 크리사(Tongayi Chrisa) 등 출연

 

수상내역

2021 36회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파나비전 스피릿 독립영화상, ADL 스탠드업상)

 

영화 홈에서 가져옴

 

아프리카 르완다. 아프리카 동부 중앙 지역의 작은 내륙국가. 944월부터 7월까지 100일간 자행된 집단학살 사건. 강대국이 심어놓은 르완다 내전의 원인은 종족 싸움이었다. 르완다에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살고 있었다. 그냥 이웃이었다. 앞집 뒷집이었다. 그들 중 후투족이 앞집 아저씨를 향해 총알을 발사하고 옆집 아주머니를 짓밟고 짓이겼다. 후투족은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을 100만 명 이상 살해하였다. 현대 집단학살사에 기록적인 보고 내용을 가진 사건이다. 이 내전의 독기는 독일에서 뿌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내전의 씨앗은 벨기에가 심어 키웠다.

 

당시 이 참극을 피해 구석지로 모여든 이들, 약자들 중에는 수많은 여성이 있었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이라는 것은, 전쟁은, 특히 내전은  노약자와 여자를 짓밟는다. 감독은 이런 여성들을 보고 작품 제작에 돌입했단다. 어느 한 곳에 숨어든 네 명의 여성. 그녀들은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지녔다. 각자 생의 시작이었던 고국이 달랐다. 끔찍한 내전의 와중에 어떻게든 각 개인의 몸을 보존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해야 했다. 이때 넷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신은 부여한다. 그곳에서 영원히 스러지지 않을 자매애가 탄생한다. 그녀들은 서로의 팔과 몸과 영혼을 얽어매어 하나의 틀과 하나의 무늬로 혼합한다. 커다란 힘을 만들어내고 굳건한 덩이를 키워낸다. 어떤 권력이나 쇳덩이의 공격일지라도 무찌를 수 있는 힘이 마침내 다져진다. 물론,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라지만 실화와는 거리가 멀었으면 싶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취했던 역사 공부에서 발견한 내용이 있다. 르완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롤 모델로 삼아 현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즉 최근에는 또 열심히 살아간다고 한다. 끔찍한 전쟁과 내전의 상황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을 친단다. 반기문이 유엔 총장 재직 당시 큰 관심으로 살폈던 국가이기도 하단다. 청렴결백을 주장하면서 쓰레기 없는 국가를 선언한 르완다 대통령은 누구였더라. 부디 좀 잘 살아냈으면!

 

르완다는 독일의 식민지였다. 복잡한 왕국들의 모음 중 피그미족이 주된 민족이었다. 지금은 반투족의 이민으로 흡수되었다. 1800년대 후반 독일 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이곳을 식민지화하였다. 야금야금 온 영토를 흡수하였다. 독일은 당시 아직 제대로 된 제국은 못 되었다. 그들의 식민통치 방법은 한 나라의 두 민족을 싸움 붙이는 것이었다. 식민지화한 땅에 증오라는 힘을 키워낸다. 이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짓게 했다. 세계대전에서의 독일 패전 이후 르완다는 벨기에군에게 넘겨진다. 벨기에는 식민제국을 운영했던 강대국들의 못된 짓만 제대로 배웠다. 벨기에는 거칠었다. 르완다에 아무런 경계 없이 살아내던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싸움을 붙였다. 소수의 투치족이 후투족을 짓밟게 했다.

 

잠시 뒷걸음을 쳐보자. 반투족은 던전앤파이터에 등장하는 부족 연합체이자 냉속성 몬스터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투어족'이란 '반투어를 쓰는 제 민족'을 뜻한다. '반투계(민족)'라는 표현이 더 분명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언어라고 일컬어지는 스와힐리어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대 민족인 줄루어의 사용자를 모두 포함한다. 지형적으로는 북위 5도 이하의 아프리카 남부, 곧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가장 많은 민족군이다.

 

1994년 내전이 시작된다. 후투족은 벨기에군이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투치족이 미웠다. 사람살이라는 것이 그렇다. 평소 믿었던 이에게서 당하는 학대는 분노에 분노를 더한 혐오를 생성시킨다. 학살, 대학살이 이어진다. 후투족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다. 후투족은 분간 없이 서로 돕고 살았던 옛 기억을 짓밟는다. 이에 수많은 젊은이가 높은 세금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간다로 이주하고 내전은 끔찍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염라대왕이 제 할아비라도 어쩔 수 없었다. 르완다는 그만, 무거운, 오직 상대 민족을 죽이기 위해 생을 연명해야 하는 무거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계속되었다. 내전이 시작될 무렵, 이름하여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네 국가를 만들었을 때 서구 제국들의 음흉한 음모를 까발리고 그에 맞는 '민족 대단결'을 좀 내세워서 움직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 프랑수아와 아내 아닛. 그들이야말로 참 사람이 아닐까. 영화 홈에서 가져옴

 

 

남편 프랑수아는 아내 아닛의 부엌 식품 저장고에 내전으로부터 도망온 아닛을 포함한 네 명의 여성을 숨긴다. 부부는 후투족이기는 하나 온건파였다. 남편 프랑수아는 난민으로부터 약자들을 구조하는 일을 해내고 있었다. 아닛과 함께 있는 세 여성. 수녀 자넷, 투치족 피해자 무테시, 자원봉사자 페이텐.

 

식품 저장고는 단 하나의 입구를 갖고 있다. 입구는 밖에서 잠기는 구조이다. 안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다. 두 손바닥 크기의 창문도 하나 있다. 온전한 사람은 통과할 수 없는 크기이다. 반지하처럼 창문은 바깥 지면에 맞닿아 있다. 남편 프랑수아가 넷을 위한 식량을 가끔 입구로 전달해 준다. 물론 식량은 먹기에 충분치 않다. 그리고 프랑수아는 절망적인 소식들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바깥에 있다.

 

소녀 무테시. 그야말로 소녀인데. 영화 홈에서 가져옴

 

 

임신한 투치족 이웃이 성당의 성가대 소속이었던 소년에게 강간당하고 목이 잘린다. 참담한 상황을 통해 목격한 인간 지옥이다. 한편 작은 창문은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기도 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식수도 확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작은 창문 밖 세상은 그녀들이 알고 있던 르완다가 이미 아니었다.

 

여자 넷이 서로 다른 배경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녀 넷의 갈등이 진행된다. 당연하다. 여자들이 넷이나 된다. 부뚜막의 접시는 당연히 깨져야 마땅한 숫자이다. 잠긴 생활은 넷을 어쩔 수 없는 잦은 갈등들의 소용돌

이 속에 빠지게 한다. 투치족 학살 피해자 무테시와 후투족 온건파 아닛과의 다툼이 있다. 혹독한 세상에 뛰어들었으나 비참한 현실 앞에서 기어코 자기의 신념과 과거에 의문을 갖게 되는 수녀 자넷. 거의 발악 지경에 이른다. 신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신은 인간을 맹목에 빠지게 한다. 하여 맹목이 뒤틀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인간은 자기 생을 저주한다. 그리고 바라고 바라던 죽음 앞에서 이내 살아보고 싶은 간절함을 느끼는 페이턴.

 

해결은? 페이턴은 책 Susan Elijah Kern의 <Seed of Love, Trees of Peace>을 갖고 있었다. 10년 동안 영어를 읽지 못했던 아닛에게 글을 가르친다. 넷이서 돌아가면서 책을 낭독한다. 두렵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 한 방법이다. 고지식한 사견이지만 어떤 곳이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책과 글과 문장과 낱말이 인간 세상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아우른다.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내가 이만큼 살아내는 것도 '글자' 덕분이다. 

 

 

마음이 참 아름다운 남자 프랑수아의 아내 아닛. 그녀 또한 성녀이다. 영화 홈에서 가져옴

 

 

 

살고자 하는 발버둥은 극에 다다를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영화 홈에서 가져옴

 

투치족 피해자 무테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종종 삼촌으로부터 강간당했다. 주변에서도 모두 알았다. 모두들 이를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인간 일반인의 모습, 그 진면목이다. 그녀는 늘 탈출을 꿈꿔왔다. 글도 독학으로 깨우친다. 어떻게든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려 했지만 하필 그녀가 서 있는 공간은 후투족이 학살을 시작했을 때의 장소. 그녀는 자기 어머니의 손을 놓고 말았다. 결국 그녀 혼자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프랑수아를 통해 식품 저장고로 오게 된 것.

 

수녀 자넷. 신도 저버린 인간 세상을 누가 구제할까.

 

수녀 자넷, 신부였던 아버지. 어릴 적 어머니를 짓밟던 아버지의 잔인한 행동.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잘못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아버지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 채 생을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가리키는 생의 방향을 따라 독실한 수녀가 되었다. 신의 세상에 가새표를 긋고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고 보니 현실은 참담했다. 

 

 

 

후투족 온건파 아닛, 남편 프랑수아와 함께 후투족이 아닌 민족들일지라도 동등하게 대한다. 그녀의 꿋꿋한 자아를 친구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외톨이였다. 다 자라서도 친구가 없는 것 같다. 혼돈의 상황 속에서 그녀는 무려 네 번의 유산을 한다. 부디 지금 임신 중의 아이가 제대로 태어나 그녀 삶의 든든한 원동력일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무사히 세상의 빛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

 

미국인 자원봉사자 페이턴. 그녀는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 자기 실수로 인한 차량 사고가 발생하였다. 동생이 죽었다. 가족들은 그녀를 악마화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죽고 싶어 하나  쉽사리 목숨을 끊을 수 없다. 그녀는 과거를 떨쳐내고 싶었다. 하여 그녀가 와 있는 곳이 르완다. 그녀는 자원봉사자라는 팻말을 이마에 붙이고 있다.

 

둘은 자고 있고 또 둘은?

 

네 여자는 르완다 애국전선(Rwandan Patriotic Front; RPF)과 아닛의 남편인 프랑수아가 오기 전까지 식량 저장고의 81일을 보낸다. 그들이 문을 까고 나온 방식은 통조림 오프너로 따는 것이었다. 81일이라는 감금의 시간, 그들은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장내 인간 순환 방식의 수면을 취한다. 바나나 한 개로 식량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네 여자는 마침내 현실 속 죽음의 도래를 가차없이 걷어낸다. 이해와 동정과 배려로 이겨낸다. 전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위해, 곧 자기 자신을 위해 진정한 자매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인간들의 승리.

 

 

몇 평일까. 줄곧 영화의 주 무대였던 식량 저장고. 한계선을 제대로 지니고 있는 제한된 공간. 작으나마 소중한 공간으로 영화의 스토리를 온전하게 이끌어가는 올곧은 면적이다. 약자의 현실을 제대로 내보이면서 그 안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개개인의 갈등과 통합, 배려, 양보, 정화 그리고 조화로 나아가는 등의 아름다운 결과의 변화를 엔딩으로 펼친다. 어떻게든지 살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현 르완다의 변화된 모습으로 시청자를 안심시킨다. 다행이다. 네 여자들이 지닌 각자의 고통을 일그러뜨렸다 되살리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긴장감 또한 엄청나다.

 

르완다는 독일과 벨기에로 이어지면서 촘촘히 내전의 기운을 키워가고 있었다. 순전히 타의에 의한. 그러나 결국 자의가 되고만 슬픈 역사. 선진 강대국이 저지른 일이라 여겨지지만 결국은 모두 자기네들 탓이라는 것이 커다란 불행이다. 식민지주의를 지향하던 서구 유럽 세력이 뿌린 씨앗을 현명하게 거둬내지 못한 것이다. 

 

독일의 식민통치는 완숙한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채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인들에게 계승되었다. 독일이 남긴 건축물들은 르완다의 부유층들을 위한 신식 학교가 되었다. 계급 나누기가 시작되었다. 부유층들에게 권력의 힘을 가르치는 방식이 된 것이다. 내전의 원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독일 제국 패전은 아프리카의 르완다를 벨기에에 양도하는 방식이 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이었다. 고름이 살 되랴. 독일 제국 무렵의 르완다에 자리 잡은 악귀는 벨기에의 힘을 부풀린다. 

 

벨기에는 무서웠다.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거칠었다. 제국주의의 선배 국가들로부터 배운 힘을 거칠게 내뱉는다. 르완다의 소수 집단인 투치족의 상류층들과 후투족을 분열시킨다. 그들의 내부를 곪게 한다. 그 둘을 아웅다웅 아귀다툼하게 한다. 강제 노동 정책들과 무거운 세금 걷기가 투치족 상류층에 의해 실시된다. 후투족은 분노한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았다.(현 벨기에의 풍요는 모두 선무당 시절에 아프리카의 식민지들로부터 갈궈낸 결과이다.)

 

1945년 연합국들이 승전국이 되자 대부분이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고 벨기에도 이에 해당되었다. 기다리던 독립. 종전 후 유엔의 신탁 통치령이 되었다. (여전히 벨기에는 관청 역할을 했다). 개혁으로 인해 1959년 무타라 3세 샤를이 암살되었고, 마지막 니이기냐 왕가와 키게리 5세가 달아나게 되었다. 이제 후투족에게 남은 것은 독립뿐이었다. 1962년에 이르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1962년 7월 1일에 이르면 벨기에로부터 독립을 승인받게 되었다.

 

마침내 1990년, 우간다에 숨어있었던 RPF가 르완다에 침입했다. 이에 르완다 정부 고관(대부분 후투족)은 비밀스럽게 '인테라하므웨(Interahamwe)'라고 불린 비공식 무장 단체들을 조직해서 젊은이들을 훈련시켰다. 대중매체를 통한 반(反) 투치족 선전도 진행하였다. 후투족을 투치족 혹은 온건파 후투족에 예속시키려는 르완다애국전선(RPF)에 대한 항전도 이어졌다. 정전 협정도 진행되었지만 그들 사이의 전투는 멈추지 않았다. 유엔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였다. 

 

르완다 내전 당시 후투족의 투치족 학살 만행은 2006년 르완다의 호텔 지배인이 피난민들을 살린 이야기인 영화 《호텔 르완다》로 잘 알 수 있다. 나는 잘 봤다. 시원찮은 귀신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벨기에에 의해 시작된 내전은 한참을 세계의 뉴스 시간을 온통 도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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