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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37초 37セカン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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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초  37セカンズ

- 그녀는 이미 숭고한 삶을 살고 있었다.

- 스포, 제법 있음

 

 

영화 홈 대표 포스터

 

2019년

드라마

일본

제69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관객상

 

감독 히카리

출연 카야마 케노, 칸노 미스즈, 다이토 슌스케, 와타나베 마키코, 이타야 유카 등

 

넷플릭스 영화를 내사랑 덕분에 잘 보고 있다. '지니 tv' 영화 중 무료 영화와 2천 원대 이하 유료 영화 중 평점 5점 만점에 3.7점 이상의 영화는 거의 다 본 듯하다. 사기? 아니다. 요 가까이 몇 년을 나는 살기 위해 무지 많은 영화를 봤다. 살기 위해? 그래, 그렇다. 왜? 어떻게? 이에 대해서는 찬찬히 풀어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니 tv 영화 검색에 지쳐 올여름은 넷플릭스이다. 한데 넷플릭스에 뜬 영화들도 이미 지니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 일단 남은 올해는 넷플릭스 신작들을 달리기로 했다. 

'37초'라. 영화 제목 37초를 읽고 대표 화면을 보니 주인공이 '여 장애인'이다. 얼굴은 평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빤한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가뜩이나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어가면서 사는 요즈음, 상투적인 장애인 관련 영화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넘길까 하는데 '베를린 영화제 블라블라'가 읽어진다. 베를린이라면 봐야지. 보자. 뭔가 있으리라. 오랜만에 본 일본 영화. 화면 첫 대면부터 일본 영화라는 것이 철저하게 느껴졌던 영화. 아, 보길 잘했다. 내가 이미 본 일본 영화들의 성향과는 달랐다. 

 

장애인 주인공의 영화.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상식적으로 말해보자. 동정과 연민과 극복과 지극 정성의 보살핌 끝에 피어난 꽃과 같은 결말. 착취와 무시와 배격과 처참함.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장면이 최하단의 극까지 하강했다가 순간 그럴싸한 일이 진행되어 최첨단의 극으로 치닫게 하여 인간 심사를 울리는 영화. 아주 빤한 스토리. 시놉시스를 읽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내용들이 떠올라서 뺑뺑 돌려졌다. 그렇고 그런 장애인 영화려니. 혹은 최고의 재미없는 소재라 할 수 있는 교육적인 의도가 숨어 있을까.

 

배우가 실제 장애인인 것을 보니 혹시 다큐멘터리인가? 스포 없이 보기를 전제로 영화 시청을 하는 내게 첫 대면 시의 이 영화의 화면은 한계를 지니지 않은 무한 상상을 할 수 있어 우선 다행이었다. 베를린 영화제 출품작이라니, 베를린에서 호평을 받았으니 더욱 경계를 벗어난 상상 및 추측 가능했다. 베를린 영화제의 특성상 뜻하지 않은 반전이 있는, 신선한 영화이려니 싶어 열심히 한밤중 달려드는 수면의 신을 물리치고 봤다.

 

만화가(삽화가?) '유마'는 뇌성마비 장애인. 그녀는 '을'의 위치에서 유명 만화가의 조수 노릇으로 살아가는 23세 처녀. 그녀 어머니의 희생으로 생을 살아왔고 현재 그다지 혼란스럽지 않은 일상을 이어간다. 그런 그녀가 '갑'의 위치에서 새살 떠느라 바쁜 유명 만화가의 등쌀에 질려 자기 작품 세계를 펼쳐야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다. 혼자 힘으로.

 

 

유마. 그녀는 방년 23세의 꽃다운 나이. 마음껏 자기 생각을 펼치는 삶을 살기를!

 

그녀가 첫 대면하게 된 만화 기획사(그냥 회사라고 치자. '붐'인가 '줌'인가 하는 이름의 기획사인데~)는 성인 만화 기획사. 그곳에서 그녀의 작품을 대면한 편집장 '후지모토'는 진짜 '색'이 담긴 내용의 만화가 필요하다고 조언을 하는데. 

'당신, 당신이 경험한 색의 세계를 전제로 해야 제대로 된 성인 만화가 나온다고. 경험하고 와. 맛을 보고 오라고.'

 

그녀, 유마가 진솔한 색의 세계에서 연륜을 쌓기 위해 거침없이 길을 나선다. 이쯤에서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녀가 부디 온전한 색의 세계에 건강하게 입수하기를 바랐다. 완전한 경험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뇌성마비의 질병을 지녔을지언정 인간이지 않은가. 스물셋, 꽃다운 나이, 아름다운 청춘이지 않은가. 당연한 것. 그녀, 후지모토가 고마웠다.

 

그녀의 경험 쌓기가 가능하기를 기원했지만 사실 무서웠다. 유마의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과 똑같은 걱정을 나도 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은 보통 세상이 아닌데, 더군다나 저 연약한 몸으로 어찌하나?'

다행히 우리들의 예상과 달리 그곳 세계는 차라리 더 투명했고 유마는 자기 희망대로 색의 세계에 몸을 눕힌다. 그러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유마의 소원과는 달리 움직이는 유마의 몸. 그래서 지체 장애인이지 않은가. 그녀는 말을 듣지 않은 몸을 지닌 관계로 경험의 문을 연 채 멈춰야 했지만 다행이다. 그녀 어머니의 우려와는 달리 그곳 색의 세상에 그녀 곁에 다가왔다가 마침내 그녀의 사람들이 되어주는 고마운 이들이 있었으니까.정의를, 참을, 고요를, 깨끗함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뭉갤 수 있는 참 건강을 사는 이들이었으니까. 

 

유마에게는 소중한 엽서가 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보냈을 것이 확실한 것. 한 소녀와 한 남자가 자유로운 생을 살아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의 삽화가 그려진 엽서. 비밀에 부쳐진 아버지의 생을 찾는 데에도 색의 세계에서 만난 이가 동행한다. 물론 조금 억지스럽기는 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현실은 절대로 그렇게 진행되지 않은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동행해주는 총각이 그녀 유마의 길을 동행하게 되는 이유가 조금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만은 나의 괜한 꼬투리 잡기이리라. 바닥까지 드러내 주기를 원하는 괘씸한 시청자의 고집이리라. 생략이 필요할 때 부리는 괜한 기우일까. 일본 영화 특유의 비대한 확대가 느껴진 것은 내가 너무 예리한 것이 원인일까.

 

엽서가 출발한 땅은 찾았으나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대신 아버지가 홀로 키운 유마의 혈연이 있었다. 유마는 씩씩하다. 색을 찾기 위해 나섰던 곳에서 만난 사내가 유마와의 동행을 이어간다. 혈연을 만나고 혈연과 화해한다. 마침내 유마는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한다. 다음은 그녀 유마가 가출하면서 어머니에게 쏟은 포악질이다.

"나를 애 취급하지 마세요. 나도 혼자 할 수 있는데 당신이 기회를 빼앗아가 버려요. 나 때문에 당신 생을 희생한 척하지 마세요. 사실 당신 혼자되는 것이 무서워서 나를 붙잡고 있었잖아요. 그래, 아빠가 집을 나갔겠지요."

그녀가 아버지를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난 자기 생의 비밀은? 그녀 유마가 어머니의 손길을 뿌리치고 찾아나선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실제 장애인을 오디션으로 뽑아서 만든 영화. 신예 감독이라는데. 미국에서 본격적인 영화 공부를 하고 고국에 돌아와서 만든 첫 작품이라는데 오디션으로 뽑은 장애인 배우가 우선 이목을 끌었다. 이 영화 최고의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자기 모습을 그대로 스토리로 접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어떤 꾸밈이 불필요한 상태로 감독은 스토리만 배우에게 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의 진행이 자연스러웠다. 주인공 '유마'로 분한 뇌성마비 상태의 배우 '카야마 케노'의 연기는 어머니 쿄코역의 '칸노 미스즈'의 견고한 연기로 더욱 빛났다. 그 외 여러 기성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신인 '카야마 케노'의 풋풋함을 더욱 생생하게 돋보이게 했다.

 

 

유마는 눈빛이 참 곱다. 말도 참 맑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도 참 이쁘다.  영화 스틸컷을 가져옴

 

아,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제목 챙기는 것을 잊었다. 제목을 통한 영화의 흐름 맞추기를 하지 않았다. 유마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나서 또 한 자기 혈육을 만난 다음에야 제목이 떠올랐다. 자유로운 삶. 유마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녀는 23세의 순수 처녀이지 않은가. 그녀가 말한다.

'37초.'

유마의 생을 확정지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유마에게 오지 않았더라면 유마는 그토록 갈구하는 자기 생을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을. 그러나 유마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희망 없는 절규를 짧게 끊는다. 그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다. 온전한 신체를 지닌, 즉 나같은 이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진 삶을 살고 있었다. 

'우주에서 보면 인간이란, 즉 인생이란 찰나의 사건에 불과하겠지요. 내 인생은 우주인의 여름방학 숙제 같다고나 할까.'

유마가 아버지를 찾고, 어머니를 '자기희생'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유를 찾고자 추진한 가출 준비의 기간에 술에 젖은 채 자본의 불빛 찬란한 도심을 내다보면서 하는 생각이다. '37초'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확인하기를. 

 

'창랑(넓고 큰 바다의 푸른 물결)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인간 세상의 조화이다. 이 조화를 장애인도 같이 살게 해야한다. 함께 갓끈을 벗어 씻고 함게 발을 씻고 함께 웃고, 울어주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들에게도 참 자유로 살게 해야 한다. 단지, 37초 차이라지 않은가.

 

영화 시청 시작 시각이 자정을 넘어선 이후였다. 유튜버 '자취남'이 자꾸 올라와서 나를 붙잡는 통에 오늘 밤 영화 시청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스르르 무너지던 찰나였다. 그냥 잘까 했는데 세 잔째 마신 커피가 밤 생활을 무난하게 견디게 해 주었다. 커피에 감사한다. 

'토요일 한양에 가기 전에 오늘 밤은 일부러 지새우는 밤을 좀 만들어보자'로 출발한 십칠 세 사춘기의 마음을 지닐 수 있었던 내 철없는 심사에 감사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면서도 아날로그 일기까지 쓰고 잤다. 숭고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밤이 참 행복했다. 모두, 오늘 여기,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 꼭 이 영화, '37초'를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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