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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간극을 오가면서 아침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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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을 오가면서 아침을 보냈다. 무엇과 무엇의 틈? 

 

 

간극으로 검색했는데 왜 이 사진이 나왔을까.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하긴 간극이 보이기도 한다.

 

아침, 느작지근한 움직임이었다. 무려 10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끊임없이 나를 향한 또 다른 내가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어서 일어나렴. 어서 일어나. 너, 늘 생각하고 있잖아. 살날이 살아버린 날보다 훨씬 적다고. 남은 시간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가자고. 어서 몸 빨딱 일으켜 세워서 움직이렴.'

살날과 살아버린 날의 계산은 내가 살고 싶은 햇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나는 늘 칠십 앞뒤까지만 살자고 해 왔다. 물론 현재 생각도 그렇다. 하나 그것이 내 맘대로 되던가. 지인 의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이렇게 몸이 늘 껄쩍찌근할까. 좀 가벼운 몸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왜 이렇게 걸리는 것이 많을까. 소화기관의 불량으로 먹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 먹고. 슬프다, 슬퍼. 아마 빨리 갈 것 같아, 그렇지? "

듣는 이의 해석은 오래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걱정하지 마셔요. 뭐, 특별한 사고 없으면 백 살 이상 거뜬히 살 것입니다. 앞으로는 의료 기술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우짜든지 스스로 걷고 생의 움직임을 스스로 생각한 대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몸을 가꾸세요. 열심히 운동하시라고요. 집에만 있지 마시고 운동하세요. 책이며, 영화며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다 잊혀요. 아무 소용없어요. 그렇다고 의미 없기야 하겠습니까만 우선 운동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끔찍하다고 툴툴거렸지만 현재 가까이 살아계시는 분을 보니 실감 난다. 일백 세에도 의식 총총, 유머까지 온전히 발사하신다.

 

내 온전한 자아의 통사정, '어서 일어나 움직이라'는 외침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면서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보자고 애써 신경 썼다. 근데 무얼 봤더라. 어디, 내,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가 눈 감음과 눈 뜸을 반복하면서 시청하였던 인스타그램과 '네'로 시작되는 플랫폼을 통해서 읽은 기사들을 도열시켜 보자.

 

1. 인스타그램으로 새로 올라온 미술 관련 작업과 내가 팔로잉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을 살폈다. 부러움 잔뜩 싣고 시청하였다. 나를 일도 모르는 물리학자 김상옥 교수님 편에서는 그분 사무실에 걸린 그림에 껌뻑 기가 죽었다. 어서 돈을 좀 벌어야지. 아껴 써야지. 갖고 싶은 그림들을 날름 살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2. 아이와 남자가 나눈 카톡 대화를 읽고 아이의 미래를 잠깐 생각했다. 전문직이어서 다행히 일자리 걱정은 없으나 혼기가 다가오니 집이 걱정이다. 내 집, 이 커다란(?) 집을 아이에게 통째로 안겨주고 싶은데, '국가'라는 곳에서 내세운 세금이 문제이다. 물론 자기 능력으로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라는데.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관망하고 있는, 현재 서울 아파트값 반등에 대한 글을 나름대로 잘 파악하셔서 써 놓은 한 블로거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그는 임대업자이다. 돈 많은. 투자를 벼르고 있는. 내가 걱정하고 있는 방향과는 상극이다. 한데, 아직 살 때가 아니란다. 그이의 생각이 정답은 아니지만 받아들이려니 하면서도 여러 가지로 마음 복잡하다. 군에 있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더군다나 요즈음 결혼 풍속은 남자는 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니 참 머리 무겁다. 모든 이들이 다 그러겠냐마는. 풍토가 그렇다니 참.

 

 

폴 세잔의 그림.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3. 화가 폴 세잔 관련 글을 읽었다. 한국경제에 연재되는 성수영 기자님의 글이다. 기자명을 일부러 밝힌다. 늘 내 질척거리는 생을 상큼하게 갈아 끼울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또 강의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고맙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내 안에서 너무 깊은 잠을 자는 중의 내용이기에 이를 일깨워줘서 반갑다.

 

4. 거대 권력을 사는 이(이 씨)의 자녀 학교폭력 관련 기사들을 읽었다. 별 관심은 없지만 어쨌든 읽었다. 무념이다. 더 쓰면, 써서는 안 될 낱말들이 튀어나올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지읒과 리을을 초성으로 하는 욕설을 퍼붓고 싶다.

 

그리고 별 깽깽이 같은 기사 몇을 읽었겠다. 아마. 느리게 움직인 오늘 아침이 살짝 부끄럽다. 다만 자식 생각 을 했다는 것과, 좋아하는 그림 생각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자. 

 


발리우드. 참 오랜만이다. 제대로 발리우드를 체감하였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넷플릭스에서 영화 둘을 시청했다. '아호, 나의 아들'과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아호, 나의 아들'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자식 둔 부모의 아픈 삶을 그린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는 발리우드.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에 저항하는 두 인물을 내세운, 현실을 초월한 듯한 영화인데 세 시간이 넘은 방영 시간이 전혀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멋진 영화였다. 영화 평론 식의 비평을 거부하고 싶은 영화. 올해 육 개월 가까이 사는 동안 쌓인 화를 모두 날려 보낼 수 있는 통쾌한 영화였다. 

 


지금은 오후 열 시 이십 분. 자정까지 남은, 약 두 시간은 책을 좀 읽으련다. 카피라이터 정철 선생님이 쓰신 '의미 깊은 한 글자'에 관한 글이다. 반은 읽었다. 아껴가면서 읽고 싶었다. 새록새록 입력되는 언어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삼키면서 읽고 싶은 글이다. 글을 읽으면서 줄곧, 참 영리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작가인들 그렇지 아니하냐 마는, 늘 우리 가까이 있는 한 글자의 낱말들을 데려와서 풀어내는, 의미의 연결고리가 사랑스럽고 곱다. 옆에 두고 수시 꺼내서 읽고 싶은 책이다. 한편 나도 글을 써서 책을 좀 내고 싶다는 무지막지한(?) 생각을 하게도 한다.

 

오늘 하루도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잘 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간극. 어렵고 어감이 쓰다. 괜히 사용했나 싶다.

 

자, 새로운 주일의 시작을 위해서 밤을 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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