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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순간이라는 낱말을 실감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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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낱말을 실감하는 아침에 서서.

 

사람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겠지. 어떤 사람도 없다라고 적혀 있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안방에서 느끼는 기온이 아직 초여름이었다. 반 팔 상의를 입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바깥바람에 의한 체감 온도라면 분명 긴 팔의 얇은 천을 입어야 한다. 나는 냉혈인이다. 냉혈인. 오랜만에 불러와 본 낱말이다. 어릴 적, 아직 젊음으로 푸른 핏덩이 내 몸 안에서 송송거린다고 느끼던 시절, 지금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나는 세상을 냉혹하게 바라보곤 했다. 하여, 늘 서슬 퍼런 칼날 지닌 듯한 뜻을 담은 나의 언어에 나의 주변인들은 내게 '냉혈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내가 먼저 나를 지칭하던 언어인 듯도 싶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 말이라도 붙잡고 싶을 때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동글동글, 대충 살아가는 데에 잘 길들어진 나의 입에서 뜻밖에 푹 내 눈앞에 나선 나의 언어 '냉혈인'에게 씁쓸한 미소를 던지면서 지난 4일을 누렸던 자유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이렇듯 '세월 유수'보다 더 강도 높은 빠른 세월의 의미 지닌 낱말을 찾아 헤매던 적이 있었던가. 새삼 눈 깜짝할 새 날아가버린 듯한 4일간의 연휴에 허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젯밤 아날로그 일기를  쓰면서 돌아본 4일을 나는 영화 네 편을 보고 유튜브 강의 스무 편쯤을 시청했다. 베란다의 화분 몇을 달래주고 모든 화분에, 아니 물이라 하면 혀를 내두르는 몇 잎 두꺼운 식물들, 다육류만 빼고, 물을 주느라고 반나절을 다 보냈다. 그 반나절 유튜브 청강을 함께 했다. '시'의 감각은 생략되었다. 그래서인지 유튜브 강의는 듣는 순간 '와'하고 '어'할 뿐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다. 뭐, 어떤 일인들, 내 경험 속의 것들이 긴 기억의 회로 속에 들어오기나 하나 싶지만 늘 아쉽다. 바로 잊히는 강의의 내용들. 

 

 

스타크래프트의 이 녀석도 공허를 알까. 픽사베이에는 '공허'의 연결 사진으로 왜 이 사진이 검색되는 것일까.

 

이 모든 현상들은 세월 흐름의 속도에 반비례로 나아간다. 재빨리 세월 갈수록 내 기억력은 후퇴한다. 사실은 그도 아니다 느릿한 걸음으로나마 내 뇌리 안에 남아있음 얼마나 좋으랴. 순간 사라진다. 세월 흐름보다 더한 가속도로 내 모든 언행, 지식 취하기 등의 내용은 꼬꾸라진다. 채 짧은 기억의 생명력이라도 얻질 못한다. 바로 사라진다. 

 

아마 기억력의 쇠퇴 때문에 '세월 유수'를 더 강하게 실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아니한가. 젊은 시절에는 마구 뛰어놀아도, 전혀 생산성을 갖추지 않은 일로 시간을 다 허비하고도, 세월, 그 흐름의 허망함은 그리 크게 느끼지 않는다. 한데 몇 해 전부터 급격하게 하루 접히면 공허함을 많이 느낀다. 기화 가능한 열도 없는 가운데 휘발해 버린 하루의 끝, 자정에 이르면 사는 것이 망막해진다. 모아 나흘을 그리하고 나니 쨍쨍한 여름 햇살인데도 먼 산만 아득하다.

 

 

이 사진을 만나기 위해 내가 넣은 검색어는 '공허'였다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해 놓은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내 영육은 세월 흐름이 만든 라인 위에 띄워져서 심장의 호흡도 채 정돈하지 못한 채 무의미한 뜀박질의 하루이다. 마음만 급해진다. 서두를수록 육신은 박박 기어야만 제 궤도에 가까스로 승선할 수 있다. 승선 이후 발견된 결함이 더 큰 문제이다. 옛 같지 않다. 저곳을 향해서 가는 내 생은 직선으로, 재빠른 길을 만들어 쑥쑥 날아간다. 자연은 자꾸 곡선으로, 구불구불 가라는데 되지 않는다.

 

내 영육을 주무르는 조물주의 심보가 괘씸하다. 나는 자꾸만 도량 좁은 사람으로 거듭 축소된다. 쫄보가 된다. 세월 흐름을 깨닫는 시각 이면 곧 그 허망함 끝에 도드라지는 나의 모습은 '날 샌 올빼미신세가 됨을 실감한다. 낮에는 앞을 못 보므로,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 돌아다니는 올빼미처럼, 나의 낮은 늙어가느라고 바빠서 나 혼자 외롭고 쓸쓸하고 밤은 불면으로 어둠의 공간에 치대느라 나 혼자 서럽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와 너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아무도 없다. 고독하다. 하루하루 날 더해갈수록 의지할 데 없는 신세가 되어감을 철저하게 느낀다. 물론 진즉에 외로움에는 면역이 된 나의 생이다. 거듭 다행이다.

 

가끔 ‘따라지 목숨’, 즉 어디 의지할 데도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는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 사는 것 당연한 현실이지만 벌써 안타까운 것은 또 내 욕심일까. 어서 더 잘 살고 싶은~. 그래. 일어서자. 내 아날로그 공책에 매일 기록되는 기도의 내용 증 이런 문장이 있다.

‘읽고 쓰고 공부하고, 그리고~’ 멍한 상태로 머물러 있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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